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유럽 한인 과학기술자들의 생각
글: 김도원 박사

지난 13일 파리 테러 참사이후 애도기간을 가졌던 프랑스는 5일간의 애도기간을 마치고 18일(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불빛으로 에펠탑을 장식했다.<사진= 대덕넷 자료>
지난 13일 파리 테러 참사이후 애도기간을 가졌던 프랑스는 5일간의 애도기간을 마치고 18일(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불빛으로 에펠탑을 장식했다.<사진= 대덕넷 자료>
지난 13일은 유럽 각지의 에너지 환경분야 한인전문가들과 오스트리아 전문가들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모여 한-유럽 에너지 포럼을 개최한 날이었다.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협력'이라는 주제 아래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유익하고 활발한 토론으로 행사가 이뤄졌다. 행사가 끝난 후, 못다 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마친 후 호텔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로비에 놓인 TV에서 충격적이고 참혹한 파리의 테러 소식을 접했다. 하필 그날은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우리들에게 유럽은 각별한 곳이다. 우리들의 가족과 친구와 직장 동료들이 흩어져 살고 있고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터전이다. 또한 한인과학기술자연합회, 한국학교 등 다양한 한인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 각지의 한인들과 연결되어 있어 우리 한인들에게 유럽은 그 어디든 가까운 이웃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번 행사에 파리에서 온 우리 포럼 회원은 없었지만, 가까이 지내는 한인 과학기술계 동료들이나 한국학교 선생님들이 파리에 많이 계시기 때문에 파리는 특히 친근하다. 더욱이 지난 5월 우리 포럼은 바로 파리에서 행사를 개최했었기에 남일 같지 않았다.

파리 사태 보도를 보는 순간 모두들 충격에 빠졌다. 우리가 성공적인 행사를 자축하고 오랜만의 만남을 서로 반가워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을 때 파리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참혹한 희생을 당했다 생각하니 황망할 뿐이었다.

지난 1월에 이어 올해에만 벌써 두 번째 테러다. 파리에 살고 있는 지인들에게 각기 서둘러 안부인사를 묻는 한편 다시 모여 이 참담한 사태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다음날 유럽에너지환경한인전문가포럼 총회는 파리 테러로 희생된 분들에 대한 깊은 애도의 묵념으로 시작되었고 행사 후에도 착잡함 속에서 유럽 각지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비엔나 공항은 중무장한 경비병력이 배치되어 삼엄했다.

이번 참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각기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나는 이번 참사의 배경을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즉 ▲역사적 맥락 ▲세계화의 맥락 ▲지속가능성의 맥락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유럽과 미국 등 서방세계와 이슬람 중동세계간의 갈등은 십자군 전쟁 이래 누적된 오랜 역사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부터 이어진 서방의 식민지 정책과 일방적 패권주의, 특히 과거 수십 년간 중동의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미국의 무리한 무력 개입과 유럽의 동참은 중동의 민초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강요해 왔고, 이슬람 사회는 내분과 내전에 휩싸이면서 살상이 난무하고 난민을 양산하게 되었다.

종교적 갈등이라기 보다는 서방의 패권주의에 내몰린 경제적, 정치적 갈등이 그 본질이며 이에 대한 절망감이 종교적으로 이념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는 다르나 아프리카도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은 이 참사는 질곡의 현대사 속에 쌓여진 이슬람 사회의 한이 왜곡된 형태로 분출된 것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세계화는 초국적 기업의 출현과 국가간 빈부격차의 확대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 문화 등 각 분야에서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 대응도 세계적 차원이며, 한 지역의 재난도 전 세계로 영향을 미친다. 세계의 빈부격차는 확대되는 반면 아랍의 봄이 창출되는 등 각 분야에서 세계가 공유하는 영역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테러 역시 세계화의 길을 가는 듯 하다. 이슬람 세계와의 갈등은 전 지구적 위협으로 등장했고, 이슬람 내부 갈등과 분쟁으로 양산된 수많은 난민들은 과거에 비해 더 용이해진 여건에 의해 세계 각국으로 이동 중이나 이는 테러범들의 이동에 악용될 수도 있다.

세계화를 주도했고 역사적으로 이슬람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던 서방세계가 이제는 그 참혹한 후폭풍을 경험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파리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파리 다음은 로마나 런던이라는 풍문도 나돌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그 어디도 예외라는 보장은 없을 듯 하다.

지속 가능성은 통상 경제적 성장, 환경적 안전 그리고 사회적 안정성을 중심 축으로 한다. 이 중에서 사회적 안정성이 중요한 이유는 빈부격차, 성차별, 지역간 혹은 세대간의 갈등 등 다양한 계층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면, 소외되고 억압받아 그 한이 누적된 이들은 마침내 이를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분출함으로써 그 사회를 지속 가능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 사회일수록 상생의 문화가 강조되고 발전되고 있다.

이번 참사도 결국은 이슬람 세계의 소외와 내몰림이 초래한 결과라 보인다. 지구 한편에 내몰려 있던 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무고한 많은 시민을 희생시키는 무모함을 선택했다.

그런데 만약 이번 테러의 주체가 IS에서 파견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생조직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세계 각지에서 소외된 이들이 자생적인 지하조직을 만들어 IS에 동조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는 세계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각지에서 자생된 그룹이 테러라는 극단으로 그 소외감을 표출할 경우 이를 방지하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사가 발생하던 날 밤 모인 우리 일행은 이 사태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그 방법은 단연코 잘못되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독립투쟁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유럽에서 많은 희생이 났으니 세계가 크게 떠들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더 큰 참사가 발생하거나 수십, 수백 배 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잃고 고통스러운 떠돌이 생활을 해도 세계가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적 행위는 용납할 수 없지만 이슬람 사회의 한은 세계가 이해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이 현대사 속에 누적된 중동의 한인 만큼 그 해결 대안도 세우기 어려운 듯 하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복잡하게 얽히고 갈라져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이슬람 사회가 IS와 테러에 반대하고 있고, 이로 인한 그들 내부의 갈등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지만, 이들에게 누적된 한이 존재한다는 점은 공통적일 것이다.

한편 갈등의 현장을 탈출하여 나온 이슬람 난민들은 이번 참사로 인하여 세계 각지에서 따뜻하게 받아 들여지기 더 어렵게 되었다. 참사 이후 서방세계는 군사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하나, 단기적인 대응은 되더라도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유럽의 많은 사람들도 어두운 역사와 이슬람 사회의 한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그들의 한을 어떻게 달래고 어떤 근본적인 치유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과학기술자로서 우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이르면 더욱 그 답이 막연하다. 그 본질적 원인을 고려할 때 정치경제적이고 외교적인 대안이 더 직접적인 해결방안임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같이 유럽에 있는 과학기술자들이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비록 직접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더라도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작은 역할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 참사가 일어난 날 우리 포럼이 논의했던 주제는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에너지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이었다. 사회와 시장이 요구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반 기술들이 발전되기 어렵다는 의견과 과학기술자들이 기술적 해법을 실현하여 보여 줌으로써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한걸음씩 가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어느 것이 먼저라 하기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과학기술자들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기술에 더 집중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참사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당장의 테러를 막기 위한 고도의 첨단무기 개발 보다는 소외된 이들의 삶이 나아지고 스스로 일어나 세계와 화합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적 대안을 제공해 줌으로써 소외된 이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눈물을 닦아 주는 근본적인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 유럽의 많은 한인과학기술자들은 I-DREAM (Inclusive Development Research Association for Mankind) 이라는 자선기구를 만들어 아프리카 등 후발국들에게 필요한 적정기술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 오고 있다. 후발국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이들이 삶을 개선하는데 후원자가 되어 준다면 이러한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은 더 많은 참사를 예방하고 세계를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기대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은 지속 가능한 사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국 사회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을 숨김없이 직시하고 있는지, 소외되고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반영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 사회 한 구석에는 한과 응어리가 자라나고 있는지 과학자를 포함해 모두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김도원 박사는

영국에서 산업생태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아프리카 생태산업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유럽에너지환경한인전문가포럼 (K4EF) 대표, EKC(Europe-Korea Conference) 프로그램위원, I-DREAM 등에 참여하며 유럽 한인 과학기술자들의 교류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