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연, 3일 美 KBR과 공동연구계약 체결…원천기술 불모지서 기술 수출국으로 도약
융합연구단 통해 차세대 공정·촉매 기술 플랫폼 개발에도 박차

한국은 석유화학촉매·공정 기술을 외산에 의존해 왔다. 주요 공정에 대한 투자가 1조 이상의 주요 설비 투자가 필요할 정도로 대형 산업으로 꼽히는 산업인데, 대표적인 기술 수입 산업으로 분류돼 왔다.

그런 가운데 국내 연구자가 13년 동안의 연구를 기반으로 세계적 기업과 상용화 위한 공동연구계약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또한, 차세대 플랫폼 개발에도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화학연구원(원장 이규호)은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왔던 석유화학 촉매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후속 상용화 연구를 위해 세계적 엔지니어링 기업인 미국 KBR(Kellogg, Brown & Root)사와 3일 오전 10시 본원에서 공동연구계약을 체결했다.

박용기 화학연 박사팀이 개발한 공동연구 대상 기술인 '촉매이용 나프타 분해공정 기술'은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나프타를 분해함으로써 섬유, 포장지, 산업용 부품 등에 사용되는 기초 화학원료를 생산하는 공정이다.

화학연은 협력연구를 통해 향후 3년간 총 11억 5천만원의 연구비와 개발 성공시 매출액 일정 부분을 KBR사로부터 기술료 형식으로 받게 된다.

이규호 화학연 원장은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과의 순수 민간 협력연구를 통해 국내 석유화학산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연은 3일 미국 KBR 사와 공동연구계약을 체결했다.<사진=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화학연은 3일 미국 KBR 사와 공동연구계약을 체결했다.<사진=한국화학연구원 제공>

◆ 13년간 연구 한우물…융합연구단 통해 3세대 촉매공정 연구에도 박차

이번 협약을 이끈 박용기 화학연 박사는 현재 화학공정융합연구단장으로 촉매를 이용해 기초 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대규모 플랜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박 단장이 석유화학 촉매공정 기술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 연구원 소속의 과제 책임자가 대학으로 떠나면서 새로운 책임자를 찾게 됐고, 이 분야에 박 단장이 지원해 최종 선정되면서 연구에 대한 인연을 맺게 됐다. 첫해 시작한 연구결과가 좋게 평가 받았고, 국내 대기업과 KBR이 합류하면서 연구에 속도가 붙었다.

세계적 엔지니어링 회사인 KBR은 성숙기에 접어든 기존 열분해 공정을 촉매 분해 공정으로의 대체를 통한 기존 올레핀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보를 모색하면서 협력하게 됐다. 

1세대 공정기술과 촉매기술개발은 국내 대기업, KBR, 화학연이 진행해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후, 박 단장팀은 지난 2012년부터 독자적으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 2세대 촉매공정기술 개발까지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2세대 촉매기술개발을 위해 KBR이 다시 협력을 제안해 왔다.  화학연 입장에서는 개발한 2세대 촉매기술의 검증이 필요했던 상황. KBR 측이 공동연구계약을 제안함에 따라 검증·상용화 과정에서연구비를 받고, 개발 성공시 기술료를 받게 되는 등 파트너로 인정받게 됐다.

2세대 촉매는 기존 촉매 성능에서 분해 능력이 20~30% 증가했다. 올레핀 수율이 증가하고, 신속한 반응속도, 축소된 장치 등을 통한 투자비가 감소된다는 장점이 있다.   

박 단장은 현재 3세대 공정기술 개발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융합연구단을 통해 차세대 촉매 소재 개발 뿐만 아니라 공정기술 자립화까지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KBR측이 관심을 보여 파트너십 기회 부여 정도로만 이야기가 진행됐다.

융합연구단에서는 기존 나프타 크래킹에서 가스, 석탄 원료로 석유 등과 융합 등 차세대 원료 개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단순히 촉매 뿐만 아니라 공정까지도 화학연이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석유화학공정.<자료=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석유화학공정.<자료=한국화학연구원 제공>

◆ 박 단장 "중소·중견기업들이 진출할 플랫폼 조성하는 것이 꿈"

처음에는 교과서를 통해 배웠을 정도로 부족했던 연구를 현재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성과 입증과 선제적 대응이 꼽힌다. 

박 단장은 "현재까지 연구 한우물을 파면서 단계별로 넘어갈 때마다 성과를 입증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주효했다"며 "연구는 돈을 벌기 위해서나 힘들어서 중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면서 후속과제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박 단장은 2012년 과제 종료 이후에도 내부적인 역량을 결집해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박 단장은 "기존 원료가 다양해지고 있는가운데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원료가 별로 없다. 개발된 기술을 활용해 촉매를 사용하면 원료가 좋지 않아도 원하는 제품(올레핀)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서 "이번에 개발한 것은 이미 검증됐으며, 촉매 성능을 더 개선해 기술 우위성이 증가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약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특히 촉매 보증 문제를 합의하는데만 1년이 소요됐다.

통상적으로는 촉매개발회사들이 보증한다. 보증해야 제품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진입장벽도 높다. 예를 들어, 1조원 규모 공장 짓는데 200~300억 원의 촉매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위험부담에 따른 보증이 요구된다.  

박 단장은 "연구원에서 보증을 설 수 없기 때문에 KBR과 긴 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KBR이 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중국과 말레이시아에 건설중인 공장에 화학연이 개발하는 2세대 촉매공정기술이 검증·활용될 전망이다.  

박 단장은 현재 융합연구단의 수장으로 앞으로의 연구 계획에도 고심하고 있다. 출범 1년째를 맞으면서 내·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해 Peer Review를 받고 있으며, 의사소통 과정을 사상 최초로 전문 관리기관 담당자를 배치·상주해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 책임권자가 보통 모든 것을 결정해서 수행하는 것과는 달리,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객관화 작업과 피드백 작업을 거치고 있다. 

박 단장은 "연구만 하다보니 의사소통 방법론이 많이 부족하다"면서 "의사소통을 전문가와 함께 하면서 성과관리, 목표설정, 진도관리, 사업화 등 수행하고 있다.장이라서 혼자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에게 위임해 다양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단장의 꿈은 공정소재 전문기업을 육성하는 것.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진출할 환경을 만들어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생각에 그는 KBR 측의 기술 매각 제안도 뿌리쳤다.

박 단장은 "기술료를 받는 것보다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술 검증이 까다로운 촉매·공정 기술 검증 과정에서 파트너십을 통해 위험부담을 낮추고, 중소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앞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KBR과의 공동연구개발을 통해 국내 기술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시에 확보하고, 연구결과의 조기 상용화 뿐만 아니라 융합연구단을 잘 이끌어 국가 석유화학산업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박용기 화학공정융합연구단장.<사진=강민구 기자>
박용기 화학공정융합연구단장.<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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