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대담③]박희재 산자부 R&D 전략기획단장
"출연연·대학연구소, 목표없는 R&D 벗어나 현장을 봐야"
"작지만 강한 핵심기술 있으면, 중국 골리앗 두렵지않다"

박희재 단장은 국가 생존역량으로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동향에 바로 변할 수 있으면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중소기업과 기술역량을 가진 출연연, 이공계 대학을 연결시켜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히든챔피언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김요셉 기자>
박희재 단장은 국가 생존역량으로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동향에 바로 변할 수 있으면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중소기업과 기술역량을 가진 출연연, 이공계 대학을 연결시켜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히든챔피언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김요셉 기자>

"크고 작은 위기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혁신적으로 적응하며 대처할 있는 '생존역량'을 가졌느냐다. 우리에게 다윗의 돌팔매처럼 작지만 강한 필살기(과학기술)가 필요하다. 시장 동향에 바로 변할 수 있는 작은 기업과 기술역량을 가진 출연연, 이공계 대학을 연결시키면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다. 두렵지 않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성장률 하락에 국내 주력산업 불황까지 겹쳐 한국경제가 위기설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장(서울대 공과대 기계공학과 교수, 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은 우리가 살 길을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대학교수로서 창업 기반을 다지고, IMF 위기 속에서 제자들과 디스플레이장비회사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창업해 코스닥에 상장시킨 인물. 작지만 강한 '필살기'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실제 성공사례를 세상에 선보인 장본인이다.

올해로 R&D 전략기획단장 취임 4년차를 맞는 그는 국내·외 산업현장과 연구소를 오가며 얻은 국가의 근본적 생존대안에 대한 철학과 노하우를 정부 R&D기획수립안에 반영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연구중심 R&D에서 벗어나 효과적 기술 사업화에 방점을 둔 생태계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박 단장은 대학과 연구소가 진짜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개발을 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 사업화를 시키는 '히든챔피언(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각 분야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기업)'을 육성해나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연신 "핵심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들은 시장의 오르내림과 관계없이 튼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우리에겐 풍부한 리소스와 인재가 있다.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국가적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소기업+R&D 역량+현장 민첩성으로 '히든챔피언' 키워내야

히든챔피언은 하루 이틀안에 육성하기 어렵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히든챔피언 필요성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모멘텀을 만들 계획이다.<사진=김요셉 기자>
히든챔피언은 하루 이틀안에 육성하기 어렵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히든챔피언 필요성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모멘텀을 만들 계획이다.<사진=김요셉 기자>
박 단장은 중소기업을 히든챔피언으로 키우기 위해 출연연과 이공계 공과대학의 역할과 연계를 강조했다. 물론 산학연을 연계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기업가정신으로 무장된 중소기업 ▲목표의식을 가진 출연연과 대학의 R&D 역량강화 ▲생생한 시장과 현장의 민첩성을 가진 기업과 연구소 업그레이드 등을 활성화하면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박 단장은 인터뷰 내내 '현장'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그는 "차별화된 핵심역량을 가진 기술력은 현장과 밀접한 관계에서 비롯된다"며 "기업과 연구소가 현장 밀착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단장는 "단순히 밤을 새며 연구하는 것보다 시장·고객과의 끊임없는 소통에서 필요한 기술을 찾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연구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금까지 우리(출연연 대학 등)는 안전한 R&D를 추구해 왔다. 목표 없는, 연구를 위한 R&D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박 단장은 작지만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기업들과 오랫동안 기술역량을 축적한 대학·출연연을 연계시켜 시너지를 만들어줌으로써 선순환 구조가 생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대학과 출연연이 개발해 기업에 매칭하고, 정부는 매칭 펀드를 주고, 기업은 무기를 만들었으니 세계시장에 나가고 스핀오프를 하는 등 자연스러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년간 산자부 R&D전략기획단장 활동을 통해 박 단장은 국가과학기술심의위원회 산하에 공과대학혁신특별위원회를 신설, 대학평가기준을 논문 중심에서 기업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했다. 출연연의 기업지원 관련 R&D는 기업으로부터 30%, 정부가 70% 지원하는 형태로 개선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대학과 출연연에서 나온 성과가 기업으로 이어져 히든챔피언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매칭 프로젝트를 만들고, 국내·외 성공사례를 발굴해 위기돌파를 위한 희망 공감대를 형성할 계획이다.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방향만 정한 단계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히든챔피언 육성이 어렵더라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박 단장의 복안이다. 박 단장은 희망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모멘텀(momentum)을 만들 계획이다. 그는 "성공스토리를 발굴하고 R&D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창업으로' 진검승부…'핵심역량'있으면 중국도 두렵지 않다

"대학교수가 교내창업하면서 맨땅에 헤딩한 이유? 공부하면서 공학은 시장과 떨어지는 순간 공학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지 시기에 기술이 없어 업신여김을 당했던 우리나라의 한, 기술에 대한 절박함...현장에서 공부하며 기술경쟁력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공학교수이자 벤처기업 대표인 그가 현장과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지도교수의 가르침이 컸다. 맨체스터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 스승에게 '왜 이 논문을 써야했는지'를 설명하는 곤욕의 시간을 겪은 적이 있었다. 몇 개의 논문을 썼느냐 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던 산업에 대한 기여에 대한 '이유'와 '확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박 교수는 제조업 R&D에서 명확한 기반기술이 없으면 핵심기술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느꼈다.

KIST에 위치한 최형섭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는 박 단장.<사진=김요셉 기자>
KIST에 위치한 최형섭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는 박 단장.<사진=김요셉 기자>
"이게 공학이구나. 공학의 정신은 현장과 기업, 시장과 떨어지는 순간 공학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서 학업할 당시 지도교수에게는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시절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업신여겨졌던 설움을 들었다. 기술 필요성의 절박함, 기술경쟁력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할 기회가 됐다.

그러나 그가 본 중소기업 현실은 달랐다. 학교에서 기술개발한 성과를 통해 산학협력 과정에 투입된 그는 중소기업 기술이 정말 영세하고 열악할 뿐 아니라 기술개발 성공의 절박함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현장의 중심에 기술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1997년 한국경제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기술부족으로 수입대체를 하지 못하고 수출이 부족해 외화가 바닥이 나버린 상황에 1달러라도 수출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시급했다.

"IMF 당시 서울공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특허와 관련 논문을 많이 썼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느꼈다. 내가 대한민국 엘리트 공학자라면 기술개발을 통해 현장에서 진검승부를 하는 것이 역할이라 생각했다. 수입대체를 못했기에 어려워진 한국경제에서 1달러라도 벌고 수출할 수 있는 기술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창업을 결심했다."

박 단장은 한국경제외환위기에 교내 벤처를 창업했다. 그는 벤처창업과 공대 교수로 활동하며 기술경쟁력이 곧 우리의 생존역량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다.<사진=에스엔유프리시젼 홈페이지>
박 단장은 한국경제외환위기에 교내 벤처를 창업했다. 그는 벤처창업과 공대 교수로 활동하며 기술경쟁력이 곧 우리의 생존역량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다.<사진=에스엔유프리시젼 홈페이지>
박 단장이 1998년 2월 제자들과 함께 창업한 에스엔유프리시젼은 1999년 말 감격적인 스웨덴 첫 수출을 계기로 2004년 세계 초정밀 측정 장비 시장의 70%를 공급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며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덕에 수출대금은 100% 외화라 봐도 무관하다.

물론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당시 대학교수가 창업을 한다는 인식이 없었던 터라 대학교수는 창업 후 대표를 할 수 없었고 대학에 사업장을 만들 수도 없었다. 사업자등록증, 공장등록도 마찬가지, 규제부터 풀어야했다.

얼마나 고민했던지 술 취한 밤 A4용지 3장에 규제개혁안을 담아 관련기관에 팩스를 보내는 등 웃지 못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가 제안한 내용이 벤처기업특별촉진법의 한 조항으로 들어가기까지 1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박 단장은 창업의 이유인 기술수출과 기술보급 미션을 잊지 않기 위해 에스엔유프리시전의 첫 수출대금 1달러를 통장에서 출금해 액자에 걸어놓았다.

창업 후에도 쉬운 일은 하나 없었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핵심역량이 있다면 중국같은 골리앗도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산자부 R&D 기획단장을 맡으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매뉴얼까지 없는 상황이 두렵기도 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에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시행착오와 고비가 있었지만 해보지 않은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이유는 시장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핵심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혁신적으로 적응 하며 대처할 수 있는 '생존역량'을 가졌느냐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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