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연구자 불신과 갈등의 골 해소해야"

인간의 피해의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심리 전문가들은 고통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피해의식은 외부의 과한 욕망과 부당한 대우로부터 남은 감정의 응어리가 무겁게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피해의식에 빠진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감정적으로 대응할 뿐이다.

본지가 최근 보도한 '100만 원 장비 구매도 '규제'…"탁상행정의 진수" 취재 과정을 통해 일선 연구자들의 모습에서 정부에 대한 피해의식이 깊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정부가 출연연별 '장비 구매' 관련 16년도 구입 예정장비 수요조사를 실시한 것 자체를 가지고 출연연 연구자들은 이를 일종의 '규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 원로 과학자는 "연구현장은 수많은 규제들로 감싸여있다"며 "작은 지시와 조치에 연구자들이 '또 다른 정부 규제'로 받아들일 만큼 피해의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제도 추진이 정부의 일방적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되는 관례가 굳어지다 보니, 그로 인한 현장의 피해의식 정도도 더욱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과학계가 뚜렷한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행정체계로 전락하고 있다는 외부의 시선이 짙은 가운데 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정부 규제들로 보고서·평가·서류 등의 행정업무에 발이 묶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소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구과제 수주 경쟁체제로 가뜩이나 연구하기가 힘든 환경에서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규제·감독·통제를 받는 연구자들은 소위 '죽을 맛'이라고 토로한다.

계속되는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피해의식이 쌓이고,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또 다른 오해가 퍼지는 양상이다. 오히려 감정의 응어리로 자리 잡은 피해의식이 작은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이를 확대해석해 연구자가 스스로를 옥죄는 경우도 있다.

연구자들은 정부 규제 호전에 대한 기대는 이미 '포기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연구자들은 "또 다른 규제가 우리의 숨통을 조여올 것"이라는 의식이 뇌리에 강하게 박히며 불안함을 떨칠 수 없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고 한탄한다.

현장에서 연구자의 연구를 진정으로 지원하는 행정체계 개념은 갈수록 잊혀져 가고, 부처 이기주의와 창조경제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연구자들의 마음이 더욱 각박혀져 가는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특히 올해는 과학입국 50년을 맞이해 한국의 과학정책 행정이 새로운 국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과거를 깊이 성찰하고 장래를 예견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연구자의 피해의식을 해소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도 현장을 이해하려는 움직임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정부와 연구자, 더불어 국민과 모두가 중지를 모아 장기적인 한국 과학계 활성화를 위해 근본적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