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상공회의소, '제182차 대전경제포럼 세미나' 개최
임상일 대전대 교수 "대전 기업인, 악조건 속에서도 창업가 정신 살려"

66%.. 대전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 결과, 대전 기업을 모른다고 응답한 지역 대학생들의 비율이다. 대전시민의 삶의 만족도는 높지만, 경제여건에 대한 만족도는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한다. 그 이유는 제조업, 생산기반, 대표기업 수 등의 기업 환경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다수의 대전지역 대학생은 타지역으로 이탈 현상을 보이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전지역 기업사의 뿌리를 찾고, 대전지역의 정체성을 찾고자 상공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전상공회의소(회장 박희원)는 18일 오전 7시 유성 리베라호텔 4층 제니스홀에서 약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82차 대전경제포럼 세미나'를 개최했다.

대전상공회의소는 '대전기업 성장사'를 주제로 대전경제포럼 세미나를 개최했다.<사진=백승민 기자>
대전상공회의소는 '대전기업 성장사'를 주제로 대전경제포럼 세미나를 개최했다.<사진=백승민 기자>

◆ 대전 기업 "일제 강점기, 해방직후 정부정책 지원 소외 등 어려움 딛고 성장"

임상일 대전대 교수는 이날 '대전 지역기업의 형성과 성장과정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임 교수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 대전의 역사와 기업인, 현대 기업 승계까지의 과정 등에 대해 소개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해방 전의 대전은 기형적인 도시로, 전국에서도 일본색이 짙었다. "일본서 이틀 동안 배를 타고 강경을 거쳐 대전에 왔는데 다시 일본에 온 것 같다"라는 표현처럼 대전은 일본인에 의해 설계·계획된 도시였다. 

대전의 첫 시작은 지난 1904년 태전정거장을 신설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188명의 일본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태생적 환경은 조선인의 기업역량을 성장시키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지역 유지 김갑순은 지대형 자본가로서 대전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으며, 군시 제사공장은 착취의 대명사였다.

그런 가운데 쓰지 긴노스게와 그의 아들 만다로가 설립하고, 경영한 후지쥬 장유가 지역기업가 육성에 큰 역할을 했다.

창업주 쓰지 긴노스게는 일본 5대 상인 중 하나인 오미 상인의 정신이 깃든 일본 시가현 출신이다. 그가 창업한 후지쥬 장유는 근면노력, 근검절약, 견실한 경영 등 오미상인의 정신이 깃든 곳이었다. 쓰지 긴노스게에 이어 쓰지 만다로는 우수한 젊은이 6명을 높이 평가하고 적극 기용했다. 진미식품의 창업주 송희백, 손중만 등이 그 예다. 이들은 해방 직후 각각 진미식품과 남선기공을 창업한 1세대 기업가로 성장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기를 빼면 실제 대전 기업의 역사는 70년. 임 교수에 따르면 대전 기업사는 부족한 인프라와 자원배분 등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역사다. 

해방 후 대전은 한국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됐다. 이후, 정부의 산업육성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순수 대전기업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범 대전지역기업으로 눈을 돌려도 동아건설, 한국화약, 효성 정도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배분 때문으로 조사됐다.

대전은 인재 양성도 상대적으로 뒤쳐졌다. 부산상고가 1895년 개교한 반면 대전상고가 개교한 것은 1954년으로 반세기나 늦었다.

이러한 불리함 속에서도 대전기업들은 창업가 정신을 발휘해 성장을 거듭했다. 독립운동지원과 교육 보국을 실천한 동아연필, 일제강점기에서 어렵게 배운 1세대 기업인의 기술을 승계한 진미식품·남선기공·대륙화학,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성심당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임 교수는 "대전 인구가 전체 인구의 3%를 차지하지만 아직까지 제조업 GRDP의 전국비중은 1.3%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발전한 대전 기업들의 정신을 살려 더 발전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대전 상공인이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해방 후 대전 지역기업의 성장 흐름도.<사진=강민구 기자>
해방 후 대전 지역기업의 성장 흐름도.<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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