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 영화 '귀향(鬼鄕)'과 대덕 연구단지

식민지와 위안부 참극 원인은 과학 기술력 부재
과학기술에는 인재가 중요…우리는 조선을 벗어났나

영화 '귀향'을 보셨나요? 잘 아는 과학자분의 추천으로 보게 됐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꼭 봐야한다는 추천사와 함께.

보고 나서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네 역사의 살이 갈라져 피나고 아픈 상처를 민낯으로 접하고, 거기에 소금까지 더해져 더욱 아리고 쓰리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절제된 감정 표현이 있고, 원혼을 풀어주는 대목도 있어 한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대덕단지에 사는 사람으로 그 영화를 보며 좀 다른 감회와 각오도 더욱 다지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 과학기술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고,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네 아픈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 가운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우리가 일본과 관련해 흔히 갖는 부정적 감정의 하나는 지탄과 분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감정이 좀 비틀어지게 표현되며 비아냥거림으로도 표현되고요. 아마 감정을 제대로 소화할 계기를 제대로 갖지 못했고, 아직 일본을 이길 물리적, 정신적 힘을 못 가져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차분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흥분과 분노를 마음속에 다지고 다져 더 이상의 비극은 없도록 힘을 키우고, 우리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만행에 흥분하기에 앞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왜 당했을까? 일본은 무엇을 갖고 있었고, 우리는 무엇이 없었기에 그렇게 무참하게 유린당했을까? 14살 소녀를 허망하게 빼앗긴 부모 심정은 어떻고, 전혀 모르는 곳에 가서 공포 속에서 물리적 폭력과 성폭력을 당해야 하는 우리네 누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누이의 비극은 우리의 비극인데 왜 그런 처참한 지경에 왜 우리는 처했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되나요? 근대 과학이 나오면서 인간이 그동안 가져왔던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힘인 인력(人力)과, 짐승을 가축으로 개량해 썼던 축력(畜力)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기계력이 인류에게 새로운 힘으로 주어집니다.

근대 초기인 1860,70년대에 일본은 그 기계력을 가졌고, 우리는 그것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 비극의 출발점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1868년에 하고, 우리를 강제 개항시킨 1876년 즈음에 우리도 서양 문물을 접하고 소화할 계기가 있었으나 우리가 못했습니다.

당시 집권층인 고종을 비롯해 양반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기에 급급했고, 민중들은 막연한 두려움과 외세에 대한 거부감으로 변화를 내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개 있고, 재능 있는 인재들은 추풍낙엽처럼 버려졌습니다. 인재들을 가볍게 여겼고, 나라를 이끌 재목들이 사라지면서 국권은 외세에 농락당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식민지가 됐고, 식민지 사람들에게는 인권이란 없고, 무지막지한 폭력에 맨몸으로 노출됩니다. 그것이 남자에게는 징용, 여자에게는 위안부란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죠.

과학자들은 이런 영화를 보고 흥분하면서 동시에 각오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는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않겠다, 후손들에게 이런 상처를 입히지 않겠다고.

이유는 과학기술이란 것이 나라를 지키는 근본이고, 과학기술자들은 그것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것은 그 사명감과 역할에 비하면 비중이 작다고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극을 딛고 이제 글로벌 플레이어로 나가야 하는 21세기의 지금 나라를 지키고, 더 나아가 인류에 기여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열정이 과학자들에게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일이 있습니다.

최근 대덕에서는 연구비와 관련된 투서로 정말 유능한 한 과학자가 스스로 세상과 하직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주검을 대하는 과학계 자세를 보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은 19세기와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중요한데 과연 우리는 사람을 얼마나 가치 있게 대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죠.

이 분은 이른바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단의 단장입니다. 이 사업은 한국 과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구글에 검색해 보면 관련 자료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를 링크시킵니다.
(http://www.kps.or.kr/storage/webzine_uploadfiles/1460_article.pdf)

이 사업단 단장에 선정될 정도면 대한민국 과학자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대한민국 과학계 1%도 아닌 0.0001%에 해당한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 분의 장례 전후로 보여준 과학계 자세를 보면 이 나라는 과연 인재를 얼마나 중히 여기는가 하는데 큰 의문을 들게 만듭니다. 최고 과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는 본인의 고뇌는 말할 것도 없고 연구관행이나, 제도 등에 있어 살펴보아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소는 물론 발인으로 마지막 가는 날에도 소속 기관이나 연구회, 미래부 등 과학 관련한 공식 기구들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발인식도 가족과 몇몇 관계자가 되는대로 치렀고, 영정은 생전의 연구실도 들르지 못했습니다. 이후 사망 원인이 된 감사나 연구비 관행 등에 대해 조사를 한다는 이야기 등도 일체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한 개인의 죽음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수한 과학자는 보호 대상일까요, 아님 제척 대상일까요?
수많은 연구 업적을 갖고 있고, 장래에도 중요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일반 국민은 그렇다 쳐도 적어도 과학계의 리더들은 이상 상황임을 감지하고 대책을 세우고 추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요?
과학기술의 힘이 있어야 우리의 생존이 담보될 수 있고, 그 과학기술에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수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차원이 다른 성과를 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우수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자신을 챙겨준다는 안심감이 있어야 연구에 몰입하고, 그런 나라에 연구로 보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우수해도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이 보호해주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이 감당해야하고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모두가 등 돌리는 현실에서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할까요? 또 우리가 필요해 세계 최고 인재를 모셔 와야 하는데 그런 인재가 이런 상황을 알면 올까요?

과학관련 공식 조직들의 침묵도 안타깝지만 주변 과학자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도 아쉽습니다. 동료 과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음에도 너무나 차분합니다. 연구 생태계가 무너지고, 자신들의 그런 처지에 놓일 수 있음에도 흥분하지 않고 일상을 영위해 갑니다.

연구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사안이 침소봉대되며 연구자가 파렴치범으로 간주되는 현실에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듯합니다. 동료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 죽음의 행진이 앞으로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냉정하게 연구실에서만 있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의견을 모으고, 해결책을 제안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연구 환경을 옥죄는 관료 등 외부 세력에게 저항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귀향'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 역사가 되었는지를 알려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흔히 전쟁범죄와 관련해 독일과 일본을 비교합니다. 독일은 사과하고, 일본은 사과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이면을 보며 우리가 좀 더 고민해야 합니다. 독일의 상대인 유대인과, 일본의 상대라 할 한국인과의 차이도 숙고해야 합니다.

유대인은 나치당원이라면 지구 끝까지 추적해 처벌했습니다. 거기에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홀로코스트를 알리는 영화를 버전을 달리하며 계속 만들고 전 세계인들에게 전쟁범죄를 알립니다.

한국인은 식민지배의 원점인 일본 전범 처벌에는 유대인에 비하면 한창 거리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반일단체도 국내용이지 정작 일본의 전쟁 원점에 대한 접근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나마 귀향이란 작품이 나오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비극의 참상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잘못한 부분을 보완하고, 향상 책을 찾아내야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알려줍니다. '귀향'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한다고. 나라의 힘은 과학기술에서 비롯됩니다. 과학기술은 우수한 사람들이 자율성을 갖고 몰입할 수 있어야 성과가 나옵니다. 우수한 사람들이 몰입하려면 그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 모 박사의 자살은 대한민국 과학계의 민낯입니다. '귀향'을 보고 가슴 아프고 흥분한다면, 세상을 등진 결정을 하게 된 정봉현 박사를 보고도 흥분해야 합니다. 왜요? 인재가 없이는 과학기술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을 제대로 배우면 미래는 우리가 주인이 됩니다. 하지만 배우지 못하면 과오는 되풀이 되며 다시 노예가 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대덕은 과연 어떤 상황인가요? 한국 과학계는 어떤가요? 현명한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19세기 근대시기의 대처 소홀과 인재(人材) 경시가 20세기 위안부란 참극을 가져왔습니다. 인재를 1회용 소모품으로 대하는 듯한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이 아닐까요? 국가 최고 과학자급의 인재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21세기 대한민국은 19세기와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요? 우리의 22세기는 평안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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