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학자의 제안에 ETRI 교육장서 긴급 공개 세미나 가져
KISTI 등 인근 출연연 약 50여명 참석자 모여 기술과 정책 시사점 논의

인공지능과 인간 지성의 대결의 승자는 누가 될까?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이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첫 대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관련 세미나를 가져 눈길을 끈다.

이번 세미나는 한 과학자가 연구원 내부 독서모임에서 세미나를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손영성 ETRI 박사가 바둑 경기가 대·내외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회원들에게 세미나 개최 필요성을 피력했고 이정원 박사 등 몇몇 과학자들이 이에 호응하면서 긴급세미나를 열게 됐다.  

2일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 본원의 한 교육장. 점심시간을 지나자마자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ETRI 연구진들이 개최한 '알파고의 도전 긴급 공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갑작스럽게 마련된 세미나에도 이날 행사에는 ETRI, KISTI(원장 한선화), ICT 기업, 바둑 동아리 관계자 등 총 50여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알파고의 도전'이 의미하는 기술과 정책의 시사점, 대응 방향 등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알파고의 도전 긴급 세미나' 참석자들의 모습.<사진=허경륜 수습기자>
'알파고의 도전 긴급 세미나' 참석자들의 모습.<사진=허경륜 수습기자>

◆ 인공지능 빠르게 발전…"2~3년 내 인간 이길 수도 있다"

손영성 박사와 이정원 박사는 각각 '알파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 '알파고는 어떤 바둑을 둘까'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손영성 박사는 알파고 사건 계기, 알파고 구성, 관전 포인트 등에 대해 소개했다. 

손 박사는 "알파고는 유럽 챔피언을 4회 차지했던 판 후이(Fan Hui) 2단을 5대 0으로 눌렀으며, 전문가들도 기보를 보면서 인간과 기계의 대국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7년 체스 마스터인 카스파로프와 IBM 딥블루와 대결에서 체스 마스터가 패배한 전례가 있다. 체스가 94개의 판에서 최적화된 솔루션을 찾는 반면, 바둑은 가로·세로 각 19개열에서 발생하는 총 361개에서 시작되는 복잡한 수를 고려해야 하는 구조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알파고는 온라인 KGS 서버에 구축된 5~9단의 바둑기사들의 16만 기보를 바탕으로 3000만의 착점 학습과 100만번 자체 대국, 하루 3만번의 대국을 수행한다. 이러한 딥러닝을 통해 얻어진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실제 대국에서 10~20개의 착수후보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최적의 대응을 통해 경우의 수를 최소화하는 알고리즘으로 구성됐다. 

손 박사는 이번 대국의 관전포인트로 ▲안전함을 추구하는 바둑 기풍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의 공격적인 흔들기에 반응할지 여부 ▲2시간 60초라는 충분한 시간 제공에 따른 알파고의 변화 모습 ▲경기 종반으로 가면서 알파고의 실수가 발생할지 여부 등을 제시했다.

이어 손 박사는 이번 대국의 시사점으로는 구글의 기술 마케팅이 주효하고 있다는 것, 알파고를 기반으로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 접목할 계획이 있다는 것, 약 20여명의 개발팀이 팀별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점을 꼽았다.

손 박사는 "알파고가 시대 변화의 마일스톤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인공지능이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곧 이뤄질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내 연구진들의 신속한 대응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알파고 대국 구조.<슬라이드 캡쳐=강민구 기자>
알파고 대국 구조.<슬라이드 캡쳐=강민구 기자>

손 박사에 이어 발제에 나선 이정원 박사는 알파고의 대국 형태 등에 대해 소개했다.

이정원 박사는 "바둑에는 추리력이 소용없는 단계가 있으며, 직감이 필요할 때가 존재 한다"면서 "바둑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시나리오 구상을 통한 정확한 수읽기, 상대방의 심리 싸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이번 대국의 관전 포인트로 ▲패싸움, 사석작전 등과 관련한 알파고의 대응 ▲알파고의 기풍 ▲불계패 선언 등 알파고의 예의범절 유무 등을 꼽았다.

인공지능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알파고가 집단지성의 바둑을 추구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이 박사는 "알파고가 학습을 통해 기력이 계속 향상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지성이 2~3년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알파고는 집단지성의 바둑을 추구하면서 상대의 태도에 따라 전략을 다르게 사용할 정도로 발전된 모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판 후이 2단과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의 묘수를 뒀던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참석자들, 시사점과 대응 방향 논의 시간 가져

발제에 이어 참석자들은 각자의 느낀 점을 공유하고, 대응 방향에 대해 모색했다. 특히, ETRI 등 국내에서의 대응과 관련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상규 본부장은 "원내 차원에서도 엑소브레인(ExoBrain)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알파고의 도전이 이슈화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물류, 로봇 등 많은 응용분야 중에서 적합한 사업 분야를 찾고, 이것이 초래할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직 박사는 "알파고가 기술적으로 13개 레이어 쌓고 피드백을 계속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하기 때문에 큰 기술적 발전은 없다고 본다"면서 "인공지능개발이 인류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것이며,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손영성 박사는 "알파고가 16만 기보를 분석하는 것처럼 딥러닝은 데이터 확보가 관건"이라면서 "구글이 이번 사례를 통해 인공지능 응용방향에 대한 예시를 던졌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의료·자율주행자동차·드론 등 다양한 분야로 파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함진호 박사는 "회계, 의사진단 등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IBM 왓슨(Watson)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범용 엔진 등의 체계 개발, 오랜 기간의 훈련, 데이터 확보 등이 관건이며, 인간과 인공지능을 협력 모델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참석자들은 "ETRI 연구진들이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 전략과 노하우를 이세돌 9단에 전달했으면 한다", "딥러닝 학습과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 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리며, 오는 9일을 시작으로 10일, 12일, 13일, 15일까지 총 5회 진행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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