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금동화 KIST 연구위원, 출처:과학과 기술 3월호

◆ 제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인류의 지적 능력은 사회와 경제를 발전시켜 문명을 세워왔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과학과 기술이었다. 과학기술의 축적은 정치·사회·문화 활동을 더 나은 단계로 안내하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제, 21세기 문명의 화두는 "제4차 산업혁명(또는 인더스트리 4.0)"이다.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 포럼)은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정보화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바이오산업, 물리학 등의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형태의 기술혁명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고 보다 지능적인 사회로의 진화"라고 요약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3D 프린팅, 자율주행 자동차, 사물인터넷, 바이오 기술, 핀테크 등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 주요 기술들이다. WEF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사물들끼리 서로 소통하며 제어하는 환경에서는 "사회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이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이 구현할 고도의 자동화와 초연결 사회에서 융·복합을 통한 산업 발전은 인류의 지식과 문화 자본, 삶의 방식, 정치·사회 제도와 주도세력 등 사회기반 전반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WEF는 "미래고용보고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으로 AI의 보편화로 향후 5년간 선진국과 신흥시장을 포함한 15개국에서 총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 낼 일자리가 200만개 정도라는 예측이 적중한다면,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 우리나라 성장판이 닫히고 있는가?

전 세계적 변화 징조가 뚜렷함에도 우리 경제와 나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들은 심각하고, 극복해야 할 난관 또한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은 20년 전에 선진국 클럽(OECD 회원국)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선진도상국'에 머물러 있다. 물질적 풍요를 제외한 복지와 행복 체감도, 문화 향유와 도덕성 등 인문적 수준은 국제적 규범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성공으로 2차 산업혁명의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고, 디지털 정보화로 신산업이 태동되는 시기에 발 빠른 행보로 ICT 인프라를 구축하여 3차 산업혁명의 대열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지속된 역동성은 떨어지고, 새로운 성장산업을 키우지 못하여 국제적 경쟁력이 흔들리는 조짐이 보인다.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이 버팀목이 되고 있으나, 지난 4년간 유지되었던 총 무역규모 1조 달러 행진이 멈추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한우리의 경제 잠재성장률이 3% 미만의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한국은행의 최근 전망이다. 국내 대표기업들조차 지속적인 기술혁신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과 수익성이 정체되었다. 국가적으로는 새로운 로봇, 바이오 등 신성장산업의 싹을 못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복지확대, 경제민주화와 같은 사회적 논란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적 혁신성과 유연성이 떨어져 국가 전반적으로 고비용·저생산성 구조가 널리 퍼져있다. 사회발달 과정에서 당연한 소멸과 생성, 진입과 퇴출이 지연되어 노쇠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정치적 혼란과 투쟁, 빈부의 격차와 세대간 갈등, 이념 갈등과 분열, 도덕적 해이와 문화정신의 퇴락이 정도를 넘어 우리의 버팀목인 경제기반까지 짓누르고 있다는 걱정도 든다.

◆ 국가혁신에 과학기술계도 나서야 한다.

세계적인 경제회복 지연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모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21세기 문명으로 발돋움하려는 흐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경제를 비롯한 국가 운영의 모든 정책과 제도에서 건전성과 활력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정치와 관료제도, 산업구조와 기술개발 활동, 기업과 노동 생태계, 교육과 가정생활 전반에 걸친 국가혁신체제(NIS, National Innovation System)시스템을 바꾸는 논의를 공론화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설 정도로 빠른 경제성장과 정치적 발전을 이루었으나, 성장과 역동성의 저하 내지 침체 상태에 들어간 듯하다. 이제부터는 경제적 정치적 발전을 공고히 하되 인간적 사회 이상의 구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사적 과제이다. 혁명적 격동의 거친 다음에는 합리적인 개혁을 지속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 나아가려면 사회에 일정한 수준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기술과 과학이고 또 사회의 도덕적 자본이 필요하다." 
참고: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중앙 SUNDAY(2016. 1. 31.) 기고에서 요약

과학기술은 흔히 경제의 한 부분(미시경제)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국정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모든 부문에 걸쳐 과학기술의 속성인 지식자산, 근거중심의 토론과 검증 방법, 사실에 입각한 논리성과 합리성에 기반을 둔 의사 결정과 공정한 경쟁, 정책 수행을 위한 우선순위 결정과 자원배분 등이 국가발전을 선도한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에서 생존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과학기술 중심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경제 주체들과 과학기술계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잠재성장률 2%대의 저성장 추세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뉴노멀 문제(저성장, 저물가 및 저금리)를 차근차근 해결하고, 이런 기조 위에서 국가혁신의 화두인 '과학기술중심사회'로 변화를 이끌어 가야한다. 국민복지 향상이라는 21세기 국가비전을 구현하는 국가혁신에 필요하다면, 과학기술계도 정치적인 행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앞으로 반전 카드는 주력산업의 고도화, 신산업 발굴과 공격적인 경영, 신기술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개발 강화가 될 것이다.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는 희망을 찾을 곳은 연구개발 강화를 통한 총요소생산성(노동과 자본을 뺀 생산요소) 제고가 분명하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지적된 것처럼, 노동과 자본은 각각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국내 기업의 투자여력 감소 탓으로 모두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생산성이 낮아지는 주원인으로 지적된 서비스 산업도 단시간에 확대 또는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과학기술 제도와 기술개발 혁신에서 넘어야 할 장벽은 인력 양성, 연구 예산과 산업금융 제도, 국가의 과학기술 종합조정 등에 관련된 각종 법과 제도의 개혁과 맞물려 있다. 즉, 신성장동력의 육성뿐만 아니라 주력산업의 고도화를 위해서도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과학기술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은 없다. 정부도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지난 25년 동안 국가의 연구개발 예산투입이 지속적으로 증대된 것처럼, 괄목할만한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보다 새 틀을 짜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우를 반복적으로 범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좋은 취지의 국정철학으로 과학기술을 교육 또는 정보통신과 통합·운영하여 왔다. 그러나 우선순위에서 교육과 정보통신분야의 긴급한 현안에 밀려 긴 안목으로 봐야 할 과학기술 행정은 정부조직에서 소외되거나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 우선순위가 자주 바뀌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주력산업의 혁신도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과학기술계는 정부와 정치권을 믿고 기다려 왔다.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 후퇴된 데에는 과학기술인의 '점잖음' 탓도 있다. 공부를 많이 한 학자라는 체면, 수월성 중심 과학기술 내부의 치열한 경쟁 환경, 중요하니까 국가가 지원하고 대우해야 한다는 순진함, 기술자의 사회성 결여 또는 연구 밖의 일에 참여가 매도되는 풍토 등을 핑계로 나서서 주장을 펴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금년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투자 효율성이 낮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사실상 동결되는 과정에서도 과학기술계의 공개적인 목소리는 매우 미미했다. 2014년 한국의 총 연구개발 예산 투입액이 미국의 15.8%, 중국의 19.6% 그리고 일본의 45%에 미치지 않으며, 정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OECD 회원국 평균 28%에 못 미치는 최하위(23%)임에도 말이다. 더구나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출연연구소에 임금피크제도가 적용되고 실질적인 임금이 삭감되는 과정에서도 500백만 동료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과학기술인의 정치참여는 좋으면 하고 싫거나 어려우면 안 해도 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이 펼쳐질 고도의 산업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국정의 중심으로 자리를 되찾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주변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사전에 이슈를 발굴하고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합리적인 비전과 실천방안을 적시에 제시하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중심사회'로 더 가깝게 접근해 갈 수 있다. 플라톤의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에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과학기술인들이 나서지 않으면, 과학과 기술을 모르거나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치인에게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맡기는 게 될 것이다. 이 피해는 과학기술에만 미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쓰나미가 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반국민이 입는 해악이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생리상 모든 과학기술인이 정치에 참여하라는 주장은 옳지도 않고 또 실현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500만 과학기술인을 대표하는 과총을 중심으로 핵심 아젠다와 우선순위를 발굴하고, 심층적인 논의로 총체적인 합의를 끌어내 영향력 있는 경로를 찾는 것이 올바른 길이 될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인 개개인은 일반 국민들이 과학기술에 대하여 일정수준의 지식을 지닐 수 있도록 소통 활동에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 문명시대에 우리도 ‘과학기술 중심사회’로 올바르게 나아가는 데 적극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금동화 연구위원은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기획관리단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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