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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고, 알파고,한국 과학 그리고 개척

[대덕단상]서양의 DNA 대담한 도전·팀웍·글로벌 협력
한국도 이제는 개척할 때…생태계 구축도 병행돼야
올 2월 11일과 3월 9일 한 달 사이에 인류 과학사에 큰 이정표 두 개가 세워졌다. 2월 11일은 중력파 발견. 3월 9일은 인공지능의 인간에 대한 한판승.

인간 세상에 대한 일들을 기록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두 사건을 현장에서 지켜보게 됐다. 두 주역인 가브리엘라 곤잘레스 루이지애나 주립대 교수와 데미스 하사비스 딥 마인드 대표를 만나며 어떻게 해서 이런 거대한 일들이 이뤄지게 됐는가를 유추해 보게 됐다.

라이고는 40년에 걸쳐 행해진 프로젝트이다.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에 의해 제기된 가설을 실재하는 현상으로 증명하는 일은 간단치가 않았다. 길이 4km거리의 튜브에서 원자보다 작은 입자 하나를 채로 걸러내야 하는 것과 같은 극초정밀 작업이다. 지진이나 대규모 폭발 등 다른 잡음을 제거하며 우주에서 들려오는 충격파만을 잡아내야 하는 극미세의 영역이고, 지리한 작업이었다.

알파고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앨런 튜링에 의해 인공지능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숱한 시도가 있었지만 큰 진척이 없어 포기하고, 포기하며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런 가운데 심화 학습이란 알고리즘으로 도전해 성과를 냈다.

라이고와 알파고는 우주와 인간의 뇌란 전혀 다른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성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난제에 대한 도전이다. 불가능이라고, 안된다고 포기한 영역에서 한 세대가 넘는 지리한 여정을 한 발 한 발 꾸준히 옮기며 성과를 만들어 냈다. 어렵다고 손들지 않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그 성과가 가져 올 과실도 클 것이라는 확신 아래 획득한 결과이다. 기대에 걸맞게 그 전리품은 인류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하나는 시스템이다. 발상은 개인이 했는지 모르지만 행동은 시스템이 했다. 혼자가 아니라 팀이 했고, 적절한 역할 분담으로 각자가 자기 몫을 하면 시스템이 작동해 결과가 나오도록 했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지휘자가 있으면서 각 파트가 하모니를 이루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 협력이다. 라이고는 미국 내 루이지애나와 워싱턴주에 있는 두 대의 중력파 검출기에서 얻은 데이터를 영국 독일의 지오(GEO600)협력단, 유럽의 비르고(VIRGO)협력단과 공동작업하며 이룬 성과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일정부분 기여했다.

알파고는 딥 마인드가 있는 영국 런던과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검증 지역으로 이세돌 9단이란 인물이 있는 한국 서울이 선정돼 우리도 참여와 관찰을 할 수 있었다. 라이고와 알파고 두 팀에는 국경이란 의미가 없고, 전지구 차원에서의 프로젝트 전개가 상식으로 여겨지는 듯 하다.

안된다는 난제에 도전하고, 개인이 아니라 팀이란 시스템이 가동되며, 국제 협력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어디서인가 이미 본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과 비슷하지 않는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신항로를 개척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혼자가 아닌 팀으로 원정단을 꾸리고, 필요한 자원을 국제적 협력으로 해결하고, 지리한 항해 끝에 원하던 대륙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 결과는 후손들을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서양과 동양, 동양 가운데서도 한국과의 차이가 가운데 하나가 개척이란 DNA이다. 서양은 역사적 경험칙에 의해 개척은 전대미문의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빅 프로젝트라는 것이 DNA에 새겨져 있다. 바이킹이, 로마를 정복한 게르만이, 미국과 호주에 진출한 앵글로 색슨 등등 많은 사례가 있다. 그에 비해 동북아 3국에서도 특히 한국은 개척이란 역사적 경험이 미미하다. 

광개토대왕이 만주 일대를 석권한 바 있다고 하나 1600년 전의 일로 기억에서 흐릿하다. 비교적 최근이 약 600년 전인 조선 세종때 함경도의 4군 6진 개척이다. 면적은 함경도의 절반 정도이다. 우리에게는 개척이 갖다주는 전리품의 기억이 없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곳을 개척하는 것에 대한 흥분이 없다. 새로운 연구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세계 지배는 개척의 결과물이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는 신항로 개척을 통해 포르투갈을 유럽의 변방 빈국에서 중심 강국으로 탈바꿈시킨다.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은 콜롬부스에 투자해 남미에서 막대한 부를 스페인으로 가져온다. 또 하나의 성공적 개척의 결과가 제임스 쿡의 호주 개척이다. 모두 세 번의 세계 일주 가운데 첫 번째 항해에서 1770년 4월 호주를 발견하게 된다. 

호주는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됐고, 1986년 입법·사법 등 모든 면에서도 독립해서도 영연방의 하나로 사실상의 앵글로 색슨족이 지배하는 영토이다. 호주의 면적은 7692평방km로 모국 영국의 242평방km의 약 31배(한반도 면적의 약 34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갖고 있는 지하자원도 무궁무진해 쿡의 후손인 앵글로 색슨족이 몇 백년 먹거리가 마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하다. 자신의 땅의 일부 정도가 아니라 30배가 넘는 땅을 가져오고, 풍부한 자원도 자신들의 것이어서 후손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개척은 가장 보상이 큰 비즈니스의 하나라는 것이 이런 과정을 거쳐 서양인의 DNA에는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개척에는 과학이 빠질 수 없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영토 개척보다도 과학에 의한 새로운 분야 개척이 더욱 큰 부가가치를 갖다주게 됐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나 프리츠 하버 칼 보슈의 암모니아 추출에 의한 비료 제조를 통한 녹색혁명,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루이 파스퇴르의 백신 등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양의 개척사는 민족을 초월해 후세 도전자들에 면면히 이어졌다. 대표적 사례 하나가 실질적인 첫 우주여행자인 소련의 게르만 티토프의 사례. 티토프는 1961년 8월 6일과 7일에 걸쳐 25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지구 둘레를 17번 일주했다. 그가 자신을 태운 우주선인 보스토크 2호에 탑승하며 가슴에 품은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17세기 세계 일주 항해자들의 경로를 그린 지도였다. 

이에 앞서 1960년에는 미 최초 핵 잠수함 트리톤이 84일 간에 걸쳐 완전 잠수한 상태로 세계 일주를 했다. 이때 함장인 에드워드 비치는 잠항 중에 마젤란 전기를 읽었고, 마젤란이 탄 빅토리아 호의 항로를 따라 항해하기도 했고, 마젤란이 죽은 곳에 기착하기도 했다.(참조 세계 일주의 역사 조이스 채플린 지음 이경남 옮김) 

서양인들의 개척은 이제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사이버로 연장되며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스페이스 X와 같은 도전이, 인공지능에 대한 도전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의 개척에 대한 DNA는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조선 500년은 개척과는 거리가 먼 사대와 수구의 시대였다. 우리에게 개척의 DNA는 움트지 않았다. 그러다 6·25 전쟁의 폐허로 사회 시스템이 제로에서 새로 출발해야 하는 단계에서 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우리는 짧은 시기에 오늘의 번영을 갖게 됐다. 하지만 개척의 DNA가 부족한 상태에서 조그만 성취에 만족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동력은 약해졌고, 21세기 들어 다시 이전의 DNA가 발현되며 수구와 내부 지향의 행동을 하게 됐다. 과학계도 세상에 없는 것을 하기 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베끼고 개량하는데 만족했다.

지난 30년간 과학기술 예산이 매년 두 자리수 이상 늘어났음에도 성과가 미미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상에 없는 것을 도전해 만들겠다는 의식이 약한데 기인한 것으로도 보인다.

라이고와 알파고를 보면서 서양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그들 입장에서는 검증된 도전이고, 그 길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까마득해 보여 시도조차 못하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도 여겨진다.

우리도 이제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해야 한다. 길이 없는 곳에 도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팀이 해야하고, 우리끼리가 아니라 글로벌 전개를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 서포터 그룹인 관료들의 전문성과 일반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라이고와 알파고는 살아있는 증거물들이다. 지난하지만 새로운 분야의 개척은 반드시 보상을 갖고 온다고.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에 정통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과학 역사 및 다른 분야와의 연계를 위한 폭 넓은 상식과 국민들에 대한 설득으로 과학 생태계를 활성화시켜 연구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성하는 일 등이 이제는 연구 못잖게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이미 일부 과학자들은 세상에 없는 것에 대한 도전을 해 왔으나 국민적 수용이 되지 않은 바 있다. 라이고와 알파고를 계기로 잠재된 한국 과학자들의 개척이란 DNA가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과학계가 먼저 노력해 국민적 수용성을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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