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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권의 라오스걷기]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

루앙프라방 도로 위에는 차보다 오토바이가 많다. 간혹 코끼리도 만날 수 있다. <사진=성철권 제공> 루앙프라방 도로 위에는 차보다 오토바이가 많다. 간혹 코끼리도 만날 수 있다. <사진=성철권 제공>
라오스의 거울


우리에겐 거울이 있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성별과 기호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이웃'이라는 이름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묘사하는 방식은 친구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느 모습 하나 내가 아닌 게 없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물론 조금 볼록하거나 오목할 수는 있겠지. 우리도 마냥 누군가를 위한 선명한 거울은 아닐 테니.

비단 라오스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라오스가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이곳의 거울은 무척이나 선명하고 때론 한없이 깊다. 현지 친구들에게 비친 나는 큰 키가 멋지지만 하얀 피부가 아니라서 잘생기지 않았다. 음악을 좋아해서 낭만적이지만 술을 마시지 않아 남자답지 못하다. 칭찬은 그러려니 하지만 단점도 참 스스럼없이 말해준다. 정말 앞뒤 없이 '훅~~'하고 들어올 때도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자전거가 눈에 띄었나 보다. 한 현지인 친구가 나에게 돈이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먼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러 와서 그래"라고 대신 대답했다. 나중에 만난 또 다른 친구는 오토바이처럼 뒤쪽에 의자가 없어서 같이 다니기 불편하다고 했다. 단골가게 친구는 먼 곳까지 와서 힘들게 자전거 타고 다니느라 애쓴다며 가끔 무료로 자전거를 수리해 주기도 한다.

자전거를 좋아한다. 사실 그게 전부였다. 나에게 자전거는 누군가를 위한 사명감도, 그렇다고 사서 고생의 시작도 아니다. 자전거를 타면 운동이 되고 안전하며 무엇보다 유지비용이 적게 든다. 모두 나를 위한 이유들뿐이다. 하지만 현지 친구들의 눈에 비친 나와 자전거의 모습은 생각보다 많이 달랐고 무척 놀라웠다. 뜻밖의 순간에 마주한 낯선 나의 모습은 늘 많은 생각조각을 남긴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라오스에서 타고다니는 내 자전거. <사진=성철권 제공>라오스에서 타고다니는 내 자전거. <사진=성철권 제공>
라오스 개똥철학

루앙프라방 국제공항 수화물 사무실에 가면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화나 박물관에서 봤던 타자기를 직접 두드리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과거가 그렇듯 라오스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많은 정보를 수기로 보관하고 있다. 그 덕분에 정부기관 관계자와 회의가 있으면 빈손으로 들어가서 양손 무겁게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요한 자료의 복사본 꾸러미들이다.

한국처럼 USB에 담을 수 없는 수기자료들은 복사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회의시간 내 복사자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관련 자료를 전달받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우선 자료를 찾는데 시간이 걸리고 복사 또는 스캔을 하는 것도 분량에 따라 쉽지 않은 일거리다. 여행자로 돌아간 루앙프라방의 밤거리는 느리게 걷기 무척이나 좋은 곳이지만, 일을 하는 낮 시간조차 천천히 흘러가는 라오스를 이해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첫 칼럼에 라오스 사람들은 본인이 잘못을 해도 "버뻰양(라오스 말로 괜찮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었다. 처음엔 그 모습이 참 뻔뻔하고 낯설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나름의 개똥철학이 생긴 것 같다. 얼핏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는 버뻰양이 어쩌면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은 아닐까? 약속된 기한을 훌쩍 넘긴 후 자료를 전해주는 공무원의 첫 인사 버뻰양이 그 동안 졸인 마음을 토닥이는 듯 느껴지는 걸 보면 나도 라오스에 물들어 가는 중인가 보다.

비엔티안의 밤풍경. <사진=성철권 제공>비엔티안의 밤풍경. <사진=성철권 제공>
아름다운 사람

라오스에 도착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통계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현지 젊은 층의 동거비율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비엔티엔이나 루앙프라방, 우리로 말하면 서울이나 부산 정도 되는 도시에는 시골출신 유학파들이 많다. 각자 나름대로 청운의 꿈을 간직한 채 시작한 도시생활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 도시의 비싼 물가와 생활환경 차이에 적응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또한 높은 주거비 부담이 라오스 청년들을 동거라는 선택지로 이끌고 있다.

그렇다면 라오스는 개방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의 모습도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언젠가 퇴근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현지연구원과 마주쳤다. 함께 일하며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인데 먼저 태워줄까 묻더니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태워주기 싫다고 혼자 웃으면서 길을 떠났다. 잠시 당황과 황당 사이를 헤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친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악의 없는 장난이란 것 정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라오스에서 현지인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이성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주로 연인이나 가족, 또는 서로 호감을 가진 사이일 경우에만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농담에 담긴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하루는 대학 내 실습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도보로 10분 내외지만 날씨가 무더운 라오스에서는 조금 더 멀게 느껴지는 거리다. 걷는 중에 옆에서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들렸다. 돌아본 곳에 여학생 한 명이 오토바이와 함께 서 있었다. 실습장으로 가는 길이라며 나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걸었다. 예전에 내가 실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에 오토바이 뒷좌석에 오르려는데 본인이 뒷좌석에 앉고 나에게 운전석을 양보했다. 이성 사이에. 특히 여성이 남성을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하는 것은 더욱 드물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마움을 넘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해진 규칙을 넘어서는 자유도 빛나지만 신념을 지키며 다른 이를 돕는 모습도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이었다.

여학생을 만났던, 실습장으로 가는 길. 무더운 날씨에 걸어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다. <사진=성철권 제공>여학생을 만났던, 실습장으로 가는 길. 무더운 날씨에 걸어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다. <사진=성철권 제공>
고마운 사람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라오스를 더 알아가고 싶다. 오랜 게으름을 뒤로하고 개인연구를 위해 언어장벽과 정보접근성 문제를 도와줄 친구를 알아봤다. 알고 지내던 한 친구가 관심을 표현했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개인사정으로 지금은 도와줄 수 없어서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괜찮은 지인을 소개시켜줄지 나에게 되물었다.

처음부터 서두를 생각은 없었던 터라 친구의 일이 마무리 되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연구주제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친구라면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 함께 라오스의 문제와 해결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던 친구가 마지막에 나의 소망(hope)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자기의 이익은 처음부터 끝까지 뒷전이었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연구주제의 8할은 호기심이었지만 이제는 일종의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나의 관심이 고맙다는 친구에게 너의 마음이 더 고맙다는 말을 돌려주고 싶다. 내 모습을 선명하게 비추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라오스의 이웃들이 있어 고맙다. 라오스가 왜 좋은지 묻는 지인들에게 매번 말없는 미소로 답했었다. 이 글에서 미소에 담긴 나의 대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철권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기획교육팀장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대한민국의 따뜻한 청년입니다. 지난해 초 사회문제와 사회양극화를 착한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사회혁신 컨설팅·인큐베이팅 전문기관 MYSC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적정함(appropriateness)’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작년 9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라오스에 왔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소복이 쌓여가는 만남과 추억 속에 서로를 통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오스 생활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라오스의 사람과 사회, 그리고 과학이야기를 진솔한 글로 담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이 라오스의 목소리와 현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전달하는 좋은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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