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양자측정센터, 철통보안 '양자암호통신' 실용화 시대 연다

"적이 어떻게 공격해올지 알아야 적의 침입을 방어하죠." 정연욱 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연구 열정이 묻어나왔다.<사진=조은정 기자>
"적이 어떻게 공격해올지 알아야 적의 침입을 방어하죠." 정연욱 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연구 열정이 묻어나왔다.<사진=조은정 기자>
"엄밀히 말하면 초전도 큐비트(qubit) 기반 기술은 정보를 '훔치는 쪽'에 가깝습니다. '창'과 '방패'가 있다면 우리 연구진은 두 연구 모두 진행하고 있습니다. 적의 공격 방법을 알아야 내 것을 지킬 수 있잖아요? 우리 연구과제에 '훔치는' 연구가 포함돼 있는 이유기도 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딱 맞는 과학기술자 그룹이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직무대행 박현민) 양자측정센터의 정연욱 박사 연구팀이다.

양자암호통신 연구자들로 구성된 이 센터는 창과 방패와 같은 공격과 방어 연구 개념을 동시에 갖고 지피지기 백전백승 정신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 표준연 양자정보연구팀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양자(量子, 퀀텀)가 가진 성질을 이용해 해커의 접근이 불가능한 암호 통신을 개발하고 있다. 양자정보 연구팀은 표준연 내의 양자측정센터, 시간센터, 광도센터의 세 개 센터가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연구진을 구성하였다.

현재 인터넷 뱅킹 등에 쓰이는 암호체계는 RSA(공개키 암호화방식) 방식이다. 현재는 보안이 거의 완벽한 '암호키'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아 해커의 침입을 차단한다. 금융거래 시 흔히 사용하는 공인인증서가 바로 이 RSA 암호체계를 쓴다.

하지만 양자컴퓨터 앞에서는 무용지물. 암호의 해독에 있어서는 슈퍼컴퓨터보다 속도에서 월등히 앞선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백만년을 계산해야 알아낼 수 있는 암호를 수 분 이내에 풀어낼 수 있다.

정연욱 박사는 "양자컴퓨터가 탄생하는 순간 RSA 암호체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양자컴퓨터로도 해독할 수 없는 암호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에 따르면 양자 보안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보완이 완벽한 통신 라인을 깔아 해커의 침입을 막는 '원천 봉쇄' 형. 그리고 양자컴퓨터로도 깰 수 없는 암호를 만들어 내는 것이 두 번째 양자 보안 방법, 양자암호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양자암호통신은 광자(光子)를 이용한다. 전송에 필요한 레이저 빛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개별 단위인 광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담아 보낸다. 그레고아 리보디(Gregoire Ribordy) 스위스 IDQ 최고경영자는 양자암호통신을 비눗방울에 비유했다. 예를 들면 보안이 필요한 정보가 적힌 종이를 비눗방울에 담아 보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해커가 정보를 가로채려면 중간에 비눗방울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비눗방울 터진 흔적이 남아 해커의 침입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정연욱 박사의 연구팀은 10년 가까이 초전도 큐비트 기반기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 2007년부터 초전도 큐비트 과제를 시작, 2011년 초전도 방식의 양자측정용 큐비트 제작 기반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모든 요소기술을 표준연 자체기술로 3년이라는 단기간 내에 확보해 낸 쾌거다. 큐비트는 외부의 온도와 잡음 신호 등 환경영향에 따라 양자정보를 쉽게 잃어버리는데, 1000분의 7 K(켈빈, 절대온도)의 극초저온과 고주파 환경에서 큐비트를 작동시켜 매우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큐비트(Qubit·Quantum Bit)는 양자컴퓨터 기술의 기본이자 핵심 단위다. 기존 컴퓨터 비트의 상태는 0 아니면 1인데,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과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을 사용하는 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는 는 0 과 1 두 개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0과 1이 겹쳐진 상태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큐비트(qubit)다. 큐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정보처리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큐비트를 많이 만들어 컴퓨터의 계산 속도를 끌어올리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정 박사는 "큐비트 개발이 양자컴퓨터 기술의 핵심이긴 하지만, 쓸모 있는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느냐는 '얼마나 좋은 정보를 가진 큐비트를 안정감 있게 만드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양자상태를 이용해 정보를 조작하는 하드웨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표준연은 지난해 말 양자암호 알고리즘과 보안체계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을 연구하는 대학 및 타 출연연과 연합하여 '멀티-플랫폼 큐비트 양자정보 암호통신기술' 융합연구를 시작했다. '양자암호통신' 실용화에 한 발짝 나아가게 된 것이다.

◆ '양자암호기술 확보' 전 세계 각축전

최근 양자정보기술은 '꿈의 보안기술'로 통하며 미래핵심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2020년 양자기술 글로벌 시장 규모가 5조5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래 먹거리'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 유럽 등 양자 기술 주요 선진국들은 세계 시장서의 선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 발표 후 연간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지원키로 했다. 유럽연합(EU)은 2006년부터 양자 기술 연구에 연간 525억원씩 쏟아 붓고 있다.
캐나다는 주요 대학에 양자정보통신학과를 개설, 2000년부터 지금까지 80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구글의 1000억원 투자, IBM 3조원 투자 계획 발표 등 민간에서도 양자기술에 대한 ‘통 큰 투자’가 활발하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2020년 양자정보통신 글로벌 선도국가 진입' 비전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1119억 원의 투자를 약속, 양자기술 개발에 힘을 실었다. 철통보안 '양자암호통신' 실용화 시대가 성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 후발주자라 조바심?···“NO! 양자정보기술은 표준연이 잘 할 수밖에"

정연욱 박사팀은 앞으로 초전도 큐비트 제작 제어기술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사진=조은정 기자>
정연욱 박사팀은 앞으로 초전도 큐비트 제작 제어기술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사진=조은정 기자>
우리나라와 양자 보안 기술 선진국 간에는 '투자'의 규모, 관련 연구 '기간'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양자컴퓨터 관련 연구가 시작된 것은 불과 수 년 전이다. 명백한 양자암호통신 후발주자에 속한다"고 평했다.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은 보이지 않는다. 정 박사는 오히려 "후발주자로서 장점도 많다. 기술 선진국들의 실패 사례를 분석해 우리 연구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웃음을 지었다.

"양자정보기술은 원래 표준연이 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진 정 박사의 답에 힘이 느껴졌다.

정 박사에 따르면 현재 가장 유망한 양자 연구에는 원자, 초전도, 광자 등 세 가지 분야가 있는데 예를 들어 원자를 이용한 양자 정보 기술은 원자시계를 만드는 기술에서 파생된 기술이다. 201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소속 와인랜드(Wineland) 박사는 원자시계 연구를 확장하여 양자정보기술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은 정확한 측정 능력이 양자정보기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

또 초전도 큐비트는 고주파 측정 장비를 이용한 초전도 큐비트 기술은 조셉슨 전압표준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표준 기술의 끝은 결국 광자'라 할 정도로 광자는 표준 기술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해당 기술 모두 표준 기술 과학자들에겐 일이십년 이상 젊음을 바쳐 연구해온 전공 분야다.

양자정보통신 원천기술은 각 나라의 표준 기술에서 확장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박사는 "양자 정보를 몰표로 하는 연구주제가 기술 선진국에 비해 개발 시기가 뒤처졌을 뿐, 기술의 수준 자체 격차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박사는 "양자정보기술 선발 주자들의 사례를 연구하며 깜깜한 동굴을 지났다. 양자정보기술은 거의 표준 측정기술에서 확장한 것"이라며 "100% 확실한 길은 아니지만, 이제 슬슬 길이 보이기 시작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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