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I-세상을 바꾸는 분석과학⑫] 기존 기술보다 정화성능 10배 높여···재활용도 20회 가능

분석과학(Analytical Science)은 과학기술의 토양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분석과학은 분석기술(Analytical Technology)과 분석장비(Analytical Equipment)에 관한 연구를 총칭하는 분야입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견인하고, 세계적인 연구 경쟁력을 확보하며, 국가 경제성장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 과학기술의 척도로 평가되는 노벨상 수상의 토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덕넷은 분석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정부출연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과 함께 분석과학 연구분야와 성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바다. 인류는 땅에서 뿐만 아니라 바다를 통해서도 생존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과 식량을 얻는다. 이러한 바다를 해양 오염으로부터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오염의 예방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기름'을 물로부터 걷어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하 KBSI) 이하진 박사팀과 한밭대학교 최원산 교수는 물과 기름을 분리하는 나노캡슐을 개발해 오염된 바다를 깨끗한 바다로 바꾸는 가능성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 증가하는 교역, 빈번한 사고… 바다는 아파요

지난 2014년 1월 31일. 설날 아침이었던 당시 전남 여수 산업단지 GS칼텍스 원유부두에서 대규모 원유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싱가포르 선적 16만 4,169톤급 유조선 W호가 부두에 접근하던 중 육상에 연결된 송유관 세 개를 건드리면서 대량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 것이다.
 
이날 사고로 인근 해안마을에는 누출된 기름띠가 바다 표면을 잔뜩 덮었고, 한려해상국립공원까지 기름이 흘러드는 2차 피해가 우려됐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해양오염사고로 인한 기름유출량은 2011년 369㎘에서 2012년 419㎘, 2013년 635㎘로 증가했으며, 2014년에는 2,001㎘로 약 세 배 이상 유출량이 증가했다. 

2014년 기름 유출량이 갑자기 높아진 이유는 그 해에 유독 100㎘이상의 기름이 유출된 대형사고가 많이 일어난 탓. 2014년에만 100㎘ 이상의 대형 유출사고가 5건에 달했고, 사고선박도 대부분 유조선과 화물선이었다. 

                        <2014년 대형 해양오염 사고 발생 현황>  

사고일시 위치 사고선박 유출물질 유출량
2014.01.31 전남 여수(원유 부두) 유조선 원유, 나프타 899㎘
2014.02.15 부산 태종대 남방 해역 화물선 벙커C유 237㎘
2014.04.04 여수 거문도 남동방 해역 화물선 벙커C유 등 151㎘
2014.04.16 진도군 병풍도 북동방 해역 여객선 벙커C유 등 214㎘
2014.12.28 부산 태종대 남서방 해역 화물선 벙커C유 335㎘
2015.01.11 울산 본항 4번 부두 화물선 질산·황산 혼합물 198㎘
2015.03.10 제주 서귀포 남동방 해역 화물선 벙커C유 등 118㎘
                       
이처럼 갈수록 증가하는 해양오염 유출사고는 2차 피해를 통해 사고 이후까지 환경오염을 가속화 시킨다. 이미 유출된 기름을 걷어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은 연구자들이 힘을 쏟는 이유기도 하다.

◆ 물과 기름의 분리···기존보다 10배 높은 성능

해수에 유출된 오염수 및 기름 등의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유출된 기름을 다시 걷어내는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물과 기름은 원래 분리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만 서로 분리돼 떠있는 것과 분리된 기름을 걷어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기름만 선택적으로 흡수해 걸러내면 되지만 기존 흡착제는 물까지 함께 흡수하다보니 효율면에서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하진 박사팀이 개발한 ‘실리카 마이셀’ 나노캡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물과 기름의 분리 용량을 기존에 개발된 기술보다 10배 이상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닌 최대 20회까지 재활용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가 산학연으로부터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에 널리 퍼져있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물질의 '친수성'과 '소수성'이 한 표면에 양립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친수성(Hydrophilic)'이란 이름 그대로 물과 강한 친화력을 가지며 물에 용해되는 성질을 의미하고, '소수성(Hydrophobic)'은 물분자와 결합하기 어려운 성질을 의미한다. 때문에 물과 만나도 합쳐지지 않고 겉돌며 분리된다. 

이하진 박사와 최원산 교수는 기존의 이론을 깨고 '친수성과 소수성 물질이 한 표면에 공존할 수 있다' 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으며, 이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연구팀은 친수성 코어와 양쪽성(친수성·초소수성) 쉘 구조를 갖는 '실리카 마이셀'에 촉매제를 탑재했다. 오염된 물과 기름 혼합액이 촉매제가 탑재된 실리카 마이셀을 통과함으로써 물과 기름의 분리가 용이해지고, 탑재된 촉매제에 의하여 물과 기름 속에 포함된 오염물질을 쉽게 정화할 수 있도록 했다. '실리카 마이셀'은 실리카 입자와 고분자 전해질의 수소결합에 의해 합성된 친수성 실리카캡슐 표면에 소수성 화학처리를 함으로써 제작했다. 

친수성 코어, 양쪽성(친수성/초소수성) 쉘 구조의 실리카 마이셀. <사진제공=KBSI>
친수성 코어, 양쪽성(친수성/초소수성) 쉘 구조의 실리카 마이셀. <사진제공=KBSI>
'친수성'과 '소수성'이 함께 공존하게 함으로써 이하진 박사팀은 물과 기름을 '떼어내는' 작업 뿐 아니라, 물 혹은 기름 안에 들어있는 독성 유기물을 정화시켜주는 기능도 구현할 수 있었다. 만약 '소수성' 만 있었다면 이러한 '정화'기능 구현에 여러 한계가 작용했을 것이다.

오염수 분리 뿐 아니라 분리된 물과 기름을 정화해 주는 역할까지 가능한 기술. 지금까지의 기술이 해수면 위 기름을 선택적으로 흡착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하진 박사팀의 연구는 기름의 선택적 흡착뿐만 아니라 기름 혹은 물속에 들어있는 중금속 및 독성 유기물까지 정화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하진 박사와 최원산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별도의 공정이라 생각한 오염수 정화까지 한 번에 가능한 높은 효율의 다기능성 소재로 환경과 과학을 위해 일조할 기술로 기대 받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국제 교역으로 인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해양오염사고. 이하진 박사팀의 연구를 통해 현대 과학 기술이 환경오염 사고를 조금이나마 해결해줄 수 있다는 앞날을 내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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