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장비 후진국···50년 과기역사 사상누각 된다

[연구장비 국산화 ①]자체개발 R&D 없고 규제·심의만 집중
외산 장비 구입 더 쉬운 풍토···50억원 이상 중대형 연구장비 국산 비율 2.5%
NFEC 역할, 연구장비 관리와 심의···장비 연구개발 사업단 지난해 발족
원천기술 연구개발(R&D)은 순수과학, 기초과학, 분석과학 등 기반연구에서 비롯된다. 기반연구의 핵심은 과학과 공학의 조합이다. 연구와 연구인프라의 균형된 성장이 가능할때 과학강국의 성장기반도 지속적으로 활성화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세계 1위, 연구비 규모 세계 5위 수준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 결과 우수한 연구성과들이 산업에 적용되며 개발도상국들의 R&D 롤 모델이 되고있다. 하지만 응용 중심의 연구개발로 기반연구에 소홀하며 지속가능한 과학강국의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연구인프라인 연구장비 분야는 과학입국 50년간 대부분 외산 연구장비를 들여와 연구장비 후진국으로 전락한 상태다.

본지는 지난해 '업그레이드 사이언스 코리아-뉴 패러다임 뉴 사이언스'에 이어 올해는 연구 핵심 인프라인 '연구장비 국산화'를 주제로 기획특집을 시작한다. 1부는  ①연구장비 후진국···50년 과기역사 사상누각 된다 ②이미 연구장비 식민국!···연구결과 다 넘기고 좀비 장비 태반  ③고가연구장비 운영·지원 인력 양성 '제로(zero)' ④연구장비 개발? 평가 D로 돌아와 등 국내 연구장비 도입부터 운영과 관리, 연구개발 실태를 진단하고 2부 미국과 독일, 일본과 중국 등 해외 과학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한국 과학계가 나가야 할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편지>
 
#1 과학자에서 장비 개발 연구로 진로를 바꾼 B 박사. 우리나라 상황? 과학만 있고 기술은 없다. 지난 50년간 연구장비 개발은 커녕 관리 기관도 제대로 없었다. 빨리 성과를 내야하는 과학기술 정책에 외국산 구입해 쓰고 새로운 과제 수주하면 있는거 두고 새로운 장비 구입하고. 장비를 개발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2 국산 연구장비는 표준화가 안된 경우가 많아 신뢰성을 인정하지 않는 관료를 설득해 국산장비로 구입하기에는 연구자의 역량이 너무 작다. 사실 연구과제 기간이 짧아 그럴 시간도 없다. 이미 신뢰성을 인정받는 외국산 장비를 두고 어떤 연구자가 모험을 하겠나.

기초가 부실하면 어떻게 될까.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번듯한 외관을 자랑해도 기반이 약하면 붕괴 위험성은 언제든 찾아온다.

그럼 과학기술의 기초는 무엇일까. 우선 연구인력과 연구장비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인력의 실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 유능한 인재들이 국내외 연구현장 곳곳에서 성과를 거두며 빛을 발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의 역할로 5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경제성장을 이루며 과학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연구개발의 핵심 인프라인 연구장비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부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연구기관과 대학, 기업의 연구시설과 장비분야 지출 규모는 2013년 5조5562억원, 2014년 5조6900억원 규모. 전체 연구개발비(2013년 59조3009억원, 2014년 63조7341억원)의 9%가 장비 구입에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연구현장 장비의 70%이상이 외산장비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NFEC의 2014년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2005~2014년) 정부연구개발예산 중 3000만원 이상 50억원 이하의 연구장비예산으로 5조9000억원이 투입됐다. 이중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외국산 장비가 67.3%(3조9000억원)로 3만1000점에 이른다. 10년전인 2005년 74.4%에 비해서는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50억원이 넘는 핵심연구장비의 국산구축 비율은 찾아보기 어렵다. NFEC 자료에 의하면 2005년부터 2015년 3월까지 50억원 이상 규모의  주요 20대 장비 중 국산구축 금액은 294억33만원으로 전체 1조1571억7100만원 중 2.5% 수준이다. 고가의 장비일수록 외산장비가 대부분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독일, 일본 등 과학기술 선진국은 연구개발에 따라 연구장비 개발도 박차를 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산업분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안 우리는 연구장비 후진국으로 벌어지는 기술격차를 지켜만 보고 있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자칫 대한민국이 연구장비 식민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 42년간 모두가 방치한 연구인프라 '연구장비'

KIST 설립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과학입국은 과학과 경제가 접목되며 응용 중심의 연구개발이 주를 이뤘다. 연구비가 부족한 초기에는 장비를 직접 수입해 역조립하며 기술력을 확보하던 시절도 있었다.

과학기술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컸던 시기에는 따라하기만 해도 성과로 인정됐다.  투입대비 성과 효율도 높았다. 연구비도 지속 증가했다. 1990년대말 IMF(국제통화기금)와 2000년대 말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늘었다. 

빠른 성과 중심의 과기정책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관행대로 이미 검증된 외국산 장비 구입을 선호했고 관료 역시 표준화된 장비 구입을 우선 순위로 평가했다. 검증안된 국산 장비를 이용하면 연구를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됐다.

또 과학기술선진국들이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며 퍼스트 무버(First Mover)형 연구개발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적 사고로 기술 베끼기에 머물렀다. 장기적 안목의 과기정책과 연구 인프라의 중요성은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기반없이 올라간 성과에는 한계가 있는 법. 기술 따라하기로 선진국 기술을 바짝 추격하는데는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독자적인 연구성과를 내지 못하며 연구비 투입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정부와 국민들의 불만도 커진다. '연구자들은 연구비 나오면 장비부터 구입한다'는 등 질타도 늘었다. 장비 중복구입과 실제 구입 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유휴장비도 많다는 지적도 크게 증가한다.

연구장비 관련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2006년이다. 이에따라 2008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내에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가 문을 연다. 우리나라가 과학입국을 선언한지 42년만이다. 과학기술입국 40년이 넘도록 연구장비 인프라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NFEC의 역할은 연구장비 개발이 아닌 관리다. 장비등록시스템, 통계자료, 중복 심의 등 이를 통해 연구장비 중복구입을 막고 활용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NFEC의 설립으로 장비의 중복 구입은 어느정도 막았고 활용도는 높였다는 평가다.

그러나 관료 중심의 규제가 늘면서 현장의 연구자들은 장비 구입과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게 사실이다. 기초와 응용연구 구분없이 같은 잣대의 규제를 들이대며 연구자들은 장비 구입과 관리로 필요이상의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현장의 의견이 많다.

◆ 과학입국 50년 되어서야 연구장비개발 사업단 꾸려

더 큰 문제는 외산 연구 장비 구입이 비용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비싼 비용에 우리의 기술력까지도 고스란히 유출되는 것이 사실이다. 첨단 연구장비의 경우 대부분 '선주문 후제작' 형태로 이뤄진다. 장비가 국내로 들어오기까지 족히 3~5년이 걸린다. 

장비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 샘플, 분석법 등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제작국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 

연구장비 개발의 필요성이 연구자, 관료에게 공감을 얻은것은 2015년이다. 과학기술 입국 50년만에 연구장비개발 사업단이 처음으로 꾸려진다. 50년의 공백은 당연한 기술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리학 전공 연구자에서 장비개발 연구자로 진로를 바꾼 A박사는 "연구비에 연구장비 구입도 포함돼 있다. 외국산을 구입해 사용하면 빠르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노하우는 쌓이지 않는다"면서 "연구실에서 직접 장비 업그레이드하며 연구할때 연구 지속성도 가능하고 일본처럼 노벨상도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장비개발하며 오차 경험해야 우리 기술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는다. 경쟁 안되는 것은 어렵지만 수요 많은 것은 우리의 기술로 해야한다"면서 "장비 기업들이 국내가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연구자와 개발자의 소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연구장비 시장 규모는 2012년 기준 235억5000만 달러(27조825억원). 올해는 287억 달러(33조50억원)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연구장비가 단순히 연구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분명한 산업의 한부분으로 간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재 연구장비 시장은 미국, 일본, 독일이 원천기술과 요소기술을 모두 선점하고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분석, 과학, 계측기기까지 포함한 시장 규모는 1627억 달러(187조1050억원)에 이른다. 이들 시장 역시 미국, 독일, 일본, 중국, 영국이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장비 분야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IT, 조선, 원자력, 핵융합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각각의 요소기술만 잘 모아도 연구장비 개발 기술로 활용될 수 있는데 성과에 매몰돼 기본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강점인 연구장비 기술 부분은 연구를 지속해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줄여야 한다. 또 국내가 아닌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도전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다음편에서는 연구현장에서 겪고 있는 연구장비 도입, 운용과 관리 등의 문제, 국내 연구개발과 연구장비 기업 현황에 대해 짚어본다.

<특별 취재팀 = 길애경 기자·박은희 기자·김지영 기자·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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