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렌디피티, 우연성을 사업기회로 이끌려면?

글: 김은선 KISTI 중소기업혁신본부 책임연구원
중소기업은 국가산업의 허리와 같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성장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 혁신'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을 위한 김은선 박사의  기고 시리즈를 연재한다. 순서는 1.세렌디피티, 우연성의 기술기회를 극대화하자. 2.벤치마킹의 함정,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 3."실패해야 성공한다" 실패에 따른 리스크는 정부가 담보해야 4.사회적 자본과 4차 산업혁명 5.한국형 기술사업화 생태계 구축 6.기술사업화, 무빙타겟을 고려한 평가지표의 발굴이 시급하다. 7.혁신의 의미, 革新인가, 赫新인가? 등의 순이다.[편집자 주]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사전적 의미는 완전한 우연 혹은 실패에서 얻은 결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름의 성공을 거둔 국내 중소기업 CEO들도 우연한 행운을 성공요인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케이맥의 이중환 대표도 지난 2012년 인터뷰를 통해 기업의 성공이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는 열개를 시도해서 열개 전부 성공하는 CEO는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측정기술을 개발하여 먹고 사는 기업이 없던 시절에 삶터를 만들게 된 과정에 끊임없는 노력과 우연한 행운이 따라주었다고 했다.

케이맥의 연구개발 역량은 2000년대 초중반 전방산업인 LCD가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되면서 빛을 발하게 되었고, 담벼락을 두고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대기업의 제안으로 바이오 진단기기 협력사업에 참여하면서 사업다각화의 첫발을 디디게 된 과정에도 우연성이 존재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우연이 사업의 기회가 되기까지 수많은 난제들을 극복한 데에는 측정장비 선도기업으로써의 오랜 경험이 빛을 발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적의 약물'인 항생제, 페니실린의 위대한 발견도 우연한 행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28년 스코틀랜드의 생물학자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을 기르던 접시에 자란 푸른곰팡이 주변이 포도상 구균이 녹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많은 몇천개의 곰팡이중에 하필이면 그 곰팡이가 덜컹거리는 창문으로 들어와서 배양접시로 들어간 것도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지만, 플레밍이 휴가를 가 있었기에 곰팡이가 방치되어 있던 배양접시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행운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이후 우연이 상업화되기까지는 수많은 우발적 사건(contingency)들이 있었다. 동물 장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종종 실패했고, 인간에게 투여하기 위한 정제과정에도 중요한 장애물이 존재했다.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우발적 사건들로 인해 위대한 발견의 상용화되기까지 수년간의 동물실험, 임상실험 등의 후속연구가 뒤따랐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음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처럼 실제 연구개발부터 사업화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선형적이지 않으며, 복잡하고도 역동적인 과정을 거친다. 당초 우연한 행운을 만나는 것이 계획되어 있지 않았던 것처럼, 사업화에 이르는 기나긴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물도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예측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디어가 연구개발에 성공하고, 상용화되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몇 퍼센트나 될까? Stevens & Burley는 하나의 사업화를 위해서는 3,000개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으로 말하면 수천 개의 아이디어로부터 오직 한 개의 과¬제만이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인터뷰 내용을 빌리자면 뛰어난 기술력이 사업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므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우려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화는 시장, 기술, 경쟁자, 고객과의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며, 이 과정을 통해서만이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다. 'R&D투자를 통한 사업화 성공률 제고'라는 단순한 공식이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연구개발부터 사업화에 이르는 과정은 꾸준한 시도와 실패를 통한 학습(learning by trial, learning by failure)이 필연적이다. 꾸준한 시도와 실패를 통한 학습이야말로 사업화 전주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발적인 상황(contingency)에 대응할 수 있는 경험의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우연한 행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세렌디피티와 컨틴전시의 정책적 함의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그 어느나라 보다도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다종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2000년대 이후 혁신형 중소기업들은 숫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수요시장이나 수요기업의 작은 변화에도 매출이 요동치기도 하니, 이런 체력으로는 작은 위기도 극복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중소업계는 그간의 지원이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나, 혁신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역동성과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일수록 유일무이한 사업아이템을 보유한 경우가 많은데, 다수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 프로그램들은 기업의 특성과 혁신과정에 수반되는 우발적 사건들과 복잡성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시장중심형 정책체제로의 변환, 동태적인 생태계 구축 등 새로운 방향으로 정책적 담론들이 최근 들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때, 시장중심이라는 용어를 단지 시장요구에 대응한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정책으로 이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기업들이 사업화 과정에 수반되는 컨틴전시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강화와 지속성장을 염두에 둔 유연한 정책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선별하여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들이 경험의 근육을 키워 위기에 대응한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인내심과 일관성을 가지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연한 행운을 성공으로 이끄는 힘은 꾸준히 축적된 역량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결코 단기적인 성과를 재촉하는 환경에서는 축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은선 박사는?

김은선 박사는 중소기업 기술혁신 전문가다. KISTI 중소기업혁신본부 사업기회분석실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대·중소기업의 기업컨설팅을 수행해왔다.

김 박사는 2009년 과학산업화 팀장, 2010년 기술사업화정보 실장을 연임했었다. 아울러 당시 3000여명 남짓하던 과학기술정보협의회를 1만 2000명 수준으로 활성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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