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산업과 기업의 지속성은 연구개발 통한 신제품과 신기술로 가능"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사진=대덕넷>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사진=대덕넷>
"중국은 한국 조선기업의 임원들이 언제 그만두게 되는지도 알고 있는 것 같다. 현대중공업을 퇴직하니 중국의 연구개발 인력 관계자가 전화를 하더라. 기존보다 3배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매달 전화를 해온다. 그런데 중국은 조선 뿐만 아니라 철강, 전자, 자동차 관련 분야의 인재 스카우트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내 기업이 획일적인 구조조정을 할 경우 각분야 핵심 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될 것은 자명하다."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경고다.

한국 조선산업의 신화를 이끌었던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11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현대중공업 현장에 내려와 있는데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하며 "경기 회복 후 기업의 미래를 이끌 연구개발 인력은 확보해 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내 빅3 조선사가 지난해 해양 플랜트 분야에서 8조원의 적자를 입은 것에 이어 올해 4월 국내 조선조선소들이 선박 수주를 단 한척도 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9일부터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지난해 정년퇴직과 희망퇴직을 통해 1000명 가량의 인력을 줄인바 있다.

민계식 전 회장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기업의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은 할수 있지만 획일적인 구조조정은 오히려 더 큰 위기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중국의 예를 들었다.

1970년대 세계 조선시장을 주도한 것은 일본이었다. 이후 한국이 조선 시장에 본격 뛰어들면서 1980년대 일본은 정부주도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게 된다. 60여개가 넘는 조선기업도 대폭 줄였다. 그결과 일본은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이 20%이하로 떨어지며 지금은 한국, 중국에 밀려난 상태다.

현재 세계 조선시장을 주름잡는 중국은 다른 방식이다. 인력 확보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것. 민 전 회장은 "중국은 조선, 자동차, 전자 등 과학기술분야 인력확보를 위해 관련 전문가들이 국내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현재 국내 기업이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면 경기가 살아났을 때 역할을 할 인재가 없게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2011년 퇴직하니 중국에서 연락이 오더라. 현대중공업에서 받던 연봉의 3배를 제안해 왔는데 거절했다"면서 "그들은 지금도 연구개발 인력 확보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 기업의 영원불멸 요소 연구개발 통한 신제품과 신기술

"사람의 생은 세포가 늘면 자랐다가 세포가 줄면서 노화되고 생을 마감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영원불멸의 생명체가 될수 있다. 기업은 연구개발을 통해 신제품, 신사업이 지속해 나오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할때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민 전 회장은 2년전 본지와의 만남에서도 연구개발(R&D)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국내 기업이 연구개발에 비해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이는 전체적 위기로 올 수 있다"고 지적하며 "혁신은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가능한데 이를 책임질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대우중공업을 거쳐 1990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가 현대중공업에서 가장 먼저 한일은 현대중공업 고유 모델의 디젤엔진 개발. 연구개발을 시작하기까지 회사 중역의 반대가 심했다.

민 전 회장은 결국 연구개발 착수 승인을 받지 못한 채 남은 자재를 얻어가며 일과 후에도 새벽 2~3시까지 연구개발에 몰입, 단기통 발전 엔진 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에서조차 민 전 회장이 개발한 엔진을 사용할 수 없다고 결정한다. 한국산 엔진을 쓰면 선주들이 배를 사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민 전 회장은 "당시 세계 최고였던 독일기업을 찾아갔다. 우리 엔진을 6개월간 써보고 괜찮으면 돈을 달라고 했는데 3개월만에 돈을 다 받았다. 이후 다른회사들도 우리 엔진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지금도 이 제품이 현대중공업의 효자 종목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미 개발된 기술을 사다쓰면 된다고 쉽게 이야기하는데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개발을 하지 않으면 한계가 온다"면서 "연구개발을 위해 누군가 책임지고 역할을 해야하는데 한국 기업에는 그런 책임자가 없다"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민 전 회장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로 10년간 재임시 단 한명의 직원도 내보내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조직은 한명이라도 구조조정을 하게되면 불안감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게된다"면서 "직원들에게 사규를 어기지 않는 한 내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며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편 민계식 전 회장은 서울대 조선항공학과를 나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대학원에서 해양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중공업을 거쳐 1990년 현대중공업으로 옮겨 사장, 부회장, 회장을 역임하며 현대중공업을 세계 최고의 조선기업으로 이끌었다. 그가 보유한 특허만 300여개이며 2011년 은퇴후에는 KAIST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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