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보면 이 속담은 설날에 먹는 떡국과 연관이 있다. 즉 예전에는 떡국을 끓일 때 반드시 꿩고기를 넣었다고 한다. 맛도 있을 뿐만 아니라 예부터 꿩을 '하늘 닭'이라고 하며 길조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꿩고기는 구하기가 어려워 일반 서민들은 떡국에 꿩고기를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체품으로 싼 버전의 닭고기를 넣고 끓였는데 여기에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부족하지만 대체품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참 많다. 얼마 전 나는 아내와 함께 1박 2일의 무주 여행을 하였다. 그런데 이 여행은 실은 꿩 대신 닭과 같은 것이었다. 이번 5월에 결혼 40주년을 맞아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작지만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해 주려고 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외손녀를 키우고 있어 해외 여행은 어렵기 때문에 아내와 내가 모두 좋아할 여행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가까운 분의 추천과 알선으로 강원도에 있는 곰배령을 2박 3일 다녀오기로 하였던 것이다.

곰배령은 강원도 인제군의 점봉산에 있는 고개로 유네스코 생물권호보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길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미리미리 그곳의 한 유명한 펜션도 예약을 하고 야생화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트레킹을 위한 입산 허가 등록도 마쳐 두었다.

결혼 기념일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내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축하 카드를 주었는데, 그 속에는 예년과는 달리 곰배령으로의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후에 갑자기 내 몸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마치 베터리가 거의 방전된 전기 기기와 같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자리에 누우면 땅 속 깊이 몸이 빠져들어가는 것 같고 이러다 그대로 깨어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의사인 둘째 딸이 수액 주사를 놓아 준 후 며칠간 쉬면서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대전에서 4시간 가까이 걸리는 곰배령까지 운전을 하고 가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약을 취소하고 택한 곳이 가까운 무주였다. 가까우면서도 평소 아내나 외손녀가 좋아하는 곳이어서 다행히 꿩 대신 닭으로 대체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애기나리_5월 중순 평일의 무주 덕유산리조트는 무척 한가하다 못해 좀 썰렁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 한가함이 휴식을 위해서는 좋았다. 첫날 오후에는 리조트 내를 가볍게 산책하면서 숲 속에 핀 야생화들을 구경하였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50 s, ISO400
애기나리_5월 중순 평일의 무주 덕유산리조트는 무척 한가하다 못해 좀 썰렁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 한가함이 휴식을 위해서는 좋았다. 첫날 오후에는 리조트 내를 가볍게 산책하면서 숲 속에 핀 야생화들을 구경하였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50 s, ISO400
5월 중순 평일의 무주 덕유산리조트는 무척 한가하다 못해 좀 썰렁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 한가함이 휴식을 위해서는 좋았다. 첫날 오후에는 리조트 내를 가볍게 산책하면서 숲 속에 핀 야생화들을 구경하였다.

감자난초_다음 날 아침, 첫 날 본 꽃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나는 혼자서 다시 그곳에 갔다. 날이 흐려서 숲 속은 사진을 찍기에는 빛이 조금 부족한 상태였지만 그런대로 꽃들을 사진에 담았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2, 1/50 s, ISO400
감자난초_다음 날 아침, 첫 날 본 꽃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나는 혼자서 다시 그곳에 갔다. 날이 흐려서 숲 속은 사진을 찍기에는 빛이 조금 부족한 상태였지만 그런대로 꽃들을 사진에 담았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2, 1/50 s, ISO400
그리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애기나리와 참꽃마리 그리고 감자난초 등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첫 날 본 꽃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나는 혼자서 다시 그곳에 갔다. 날이 흐려서 숲 속은 사진을 찍기에는 빛이 조금 부족한 상태였지만 그런대로 열심히 꽃들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참꽃마리_그리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애기나리와 참꽃마리 그리고 감자난초 등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400 s, ISO100
참꽃마리_그리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애기나리와 참꽃마리 그리고 감자난초 등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400 s, ISO100
그런데 갑자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왠 일인지 물으니, 전날 함께 산책을 할 때 숲길 입구에 '뱀 주의'라는 팻말을 보았는데 날씨가 흐려 혹시 사진을 찍느라 뱀이 나와도 못 볼 까봐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안개가 흐르는 무주의 아침 풍경_숲길을 빠져 나오자 분홍빛 철쭉과 소나무가 서있는 풀밭 길 위로 이른 아침 안개가 빠르게 흐르고 있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Pentax K-3, 26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f/4.5, 1/50 s, ISO100
안개가 흐르는 무주의 아침 풍경_숲길을 빠져 나오자 분홍빛 철쭉과 소나무가 서있는 풀밭 길 위로 이른 아침 안개가 빠르게 흐르고 있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Pentax K-3, 26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f/4.5, 1/50 s, ISO100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조금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져 오래 지체하지 못하고 숲길을 빠져 나왔다. 숲길을 빠져 나오자 분홍빛 철쭉과 소나무가 서있는 풀밭 길 위로 이른 아침 안개가 빠르게 흐르고 있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아침을 먹은 후 곤돌라로 설천봉까지 올라갔다. 설천봉에 내리니 노란 민들레가 가득 핀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꽃, 그것도 노란 민들레를 무척 좋아하는 외손녀는 너무도 신나서 풀밭을 뛰어다녔다. 아이가 너무 빨리 뛰어 다니는 바람에 사진에 담기가 어려웠다.

설천봉_설천봉은 갑자기 안개가 가득히 몰려오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비를 뿌리기도 하면서 변화 무쌍한 산 위의 날씨를 보여주었다. Sony ILCE-6000, 16 mm with E 16-70mm F4 ZA OSS, F/10, 1/100 s, ISO100
설천봉_설천봉은 갑자기 안개가 가득히 몰려오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비를 뿌리기도 하면서 변화 무쌍한 산 위의 날씨를 보여주었다. Sony ILCE-6000, 16 mm with E 16-70mm F4 ZA OSS, F/10, 1/100 s, ISO100
그런데 갑자기 안개가 가득히 몰려오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비를 뿌리기도 하면서 변화 무쌍한 산 위의 날씨를 보여주었다. 아내와 외손녀는 휴게소에 머물러 있기로 하고 나만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가면서 길가의 야생화들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아직 덕유산은 이른 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야생화는 종류가 많지는 않았다.

개별꽃_아직 덕유산은 이른 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야생화는 종류가 많지는 않았다. 현호색과 개별꽃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간간히 보랏빛의 벌깨덩굴이 눈에 띄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200 s, ISO100
개별꽃_아직 덕유산은 이른 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야생화는 종류가 많지는 않았다. 현호색과 개별꽃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간간히 보랏빛의 벌깨덩굴이 눈에 띄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200 s, ISO100
현호색과 개별꽃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간간히 보랏빛의 벌깨덩굴이 눈에 띄었다. 조금 더 올라 가니 나도바람꽃 몇 송이가 보여 반가웠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꿩의바람꽃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고 흰 꽃잎을 다물고 서 있는 한 송이를 발견한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바람꽃_조금 더 올라 가니 나도바람꽃 몇 송이가 보여 반가웠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꿩의바람꽃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고 흰 꽃잎을 다물고 서 있는 한 송이를 발견한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 mm F2.8 WR, F/4.5, 1/200 s, ISO100
나도바람꽃_조금 더 올라 가니 나도바람꽃 몇 송이가 보여 반가웠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꿩의바람꽃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고 흰 꽃잎을 다물고 서 있는 한 송이를 발견한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 mm F2.8 WR, F/4.5, 1/200 s, ISO100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정상까지 가지는 못하고 적당한 지점에서 되돌아 내려왔다. 곰배령의 꽃길을 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기는 하였지만,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무주로의 여행을 큰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무리하지 않고 여행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어 이 경우엔 어쩌면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보다 나은 닭'이 되지 않았을까 하면서 자위해 보았다.

헬렌 켈러의 말이 생각난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렇게 '꿩 대신 닭'으로도 감사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긍정적 태도가 필요하리라.

보랏빛 5월의 향기_이제 5월의 하순. 숲에는 흰 으아리가 피어나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라벤더의 보랏빛 향기가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록이 아름다운 초여름 문턱에 서 있는 계절이다. 무더위와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맑고 아름다운 5월의 신록 속에 깊이 몸을 담그고 싶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 mm F2.8 WR, F/3.5, 1/400 s, ISO100
보랏빛 5월의 향기_이제 5월의 하순. 숲에는 흰 으아리가 피어나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라벤더의 보랏빛 향기가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록이 아름다운 초여름 문턱에 서 있는 계절이다. 무더위와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맑고 아름다운 5월의 신록 속에 깊이 몸을 담그고 싶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 mm F2.8 WR, F/3.5, 1/400 s, ISO100
이제 5월의 하순. 숲에는 흰 으아리가 피어나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라벤더의 보랏빛 향기가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록이 아름다운 초여름 문턱에 서 있는 계절이다. 무더위와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맑고 아름다운 5월의 신록 속에 깊이 몸을 담그고 싶다.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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