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미래 나노급 반도체·대면적 디스플레이 산업 대비 핵심 원천기술 확보
윤주영 박사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재 산업’ 분야 주도권 지킬 것"

"기초원천기술을 확보하는 연구에는 꽤 많은 기간과 노력이 소요됩니다. 산업체나 민간 기업에서 원천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죠. 지금 당장이 아닌, 멀리 10년 후를 내다보는 원천기술 확보, '우리가 해보자' 싶었습니다."

윤주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진공기술센터 박사의 말에는 유독 긴 호흡이 묻어난다.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대만 등 주요 기술 선진국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최근 미래 소재 분야에 대해 중국이 천문학적 투자를 잇달아 선언한 가운데, 곧 '중국발 위기'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래 신소재 개발을 위한 가장 편리한 방법은 조건 최적화를 통한 공정 개발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연구자들이 온도, 압력, 성분 등 제조인자들을 적절히 조절해가며 공정 최적화를 이뤄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윤주영 센터장은 기존 방식을 거부했다.

윤 박사는 "최적화 공정 개발 방식으로는 기존 소재의 성능을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물질의 창조형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 박사가 조건 최적화 방식 대신 선택한 것은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 모사다. 진공이라는 초청정 공간, 플라즈마라는 고에너지 기체 형태, 무중력 상태의 극한 환경으로 이뤄진 우주의 특성을 구현한 장치들을 만들어 낸다면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른 신물질을 만들 수 있다. 미래 나노급 반도체 및 대면적 디스플레이 산업을 대비한 핵심 원천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  '세계 최초' 저압 플라즈마 증착장비 상용화 앞둬…"장비 국산화에 기여"

우주환경기반 신기술융합연구단의 연구 성과는 '진공장비의 국산화'에 큰 기여를 할 전망이다.<사진=조은정 기자>
우주환경기반 신기술융합연구단의 연구 성과는 '진공장비의 국산화'에 큰 기여를 할 전망이다.<사진=조은정 기자>
표준연 진공기술센터는 지난 2011년 미래창조과학부 신기술융합형 성장동력사업본부 산하 우주환경기반 신기술융합연구단을 창단한 이후 부산대학교, 포항공과대학교, 참엔지니어링과 협업을 진행해 왔다. 초대 사업단장은 신용현 전 표준연 원장이 맡았으며, 후임으로 윤주영 박사가 맡고 있다.

윤주영 박사는 '저압 플라즈마 증착장비' 개발을 신기술융합연구단의 가시적인 성과로 꼽았다. 미래 반도체는 초박막 미세공정이 갈수록 중요한데, 저압 플라즈마 증착장비 기술은 이러한 미세한 공정을 만족하면서도 양산성도 우수한 새로운 공정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참엔지니어링과의 공동연구로 얻은 이러한 결과로 장비 한 대당 20억 정도로 추정, 연 400억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했다. 윤 박사는 "현재 국내 대기업과 독일의 프라운호퍼 등에서 기술 양산 테스트를 예정 중"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부품 신뢰성 평가플랫폼을 구축하여, 우리나라 관련 중소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아무리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우리나라 중소기업 제품들이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같은 대기업에 납품하기는 매우 어렵다.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산 제품의 품질과 신뢰성을 정확히 평가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국산화 및 수입대체가 증가할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반도체 수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오염 파티클(particle)인데 반도체 구조가 미세해질수록 아무리 작은 오염물질이라도 수율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커진다. 특히 생산현장에서 반도체 공정 중 소자와 소자 사이에 내려앉는 오염 파티클 때문에 발생하는 불량으로 인한 손실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이러한 파티클 센서를 개발하여 기술이전을 완료,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윤 박사는 "우리나라 반도체 공정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박막 위에 쌓이는 파티클로 인한 불량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없었다"며 "손실액은 고스란히 기업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사업단이 개발한 기술은 반도체 공정 외에도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유기발광다이오드) 증착장비기술에도 적용됐다. 실시간 파티클 센서를 비롯, 가스공급관 표면처리 기술과 플라즈마 장비부품 신뢰성 평가시스템은 OLED 증착장비에도 사용가능한 공통 기술. 이는 한 중소기업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OLED기술은 기존 LCD 기술보다 활용과 기술면에서 매우 우월하다고 평가받는 기술로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단이 해당 원천기술들의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장비의 국산화는 물론, 경제 성장 견인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 표준연과 중소기업, '진공'으로 패밀리

윤주영 박사 연구실 벽 한 쪽은 연구 일정들과 표창창들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윤주영 박사 연구실 벽 한 쪽은 연구 일정들과 표창창들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어떤 좋은 그림이라도 깨끗하지 못한 도화지 위에 그린다면 좋은 그림이 될 수 가 없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에서의 진공기술도 이렇게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대로된 진공기술 기반없이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기술도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반도체에서 필요한 원천기술은 무엇인지, 개선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답을 '진공'에서 얻으려 합니다."

윤 박사에 따르면 진공기술센터의 연구 관점은 모두 '진공'으로 통한다. 반도체 관련 연구를 수행하든지, 에너지나 소재 관련 연구를 수행하든지 그 베이스는 항상 '진공'이다.

그는 "진공 기술을 통해, 뿌리를 연구하는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진공을 이용하는곳은 많지만 진공을 베이스로 연구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 우물만 파기힘든 국내 연구풍토에서  20년 넘게 진공만을 연구해 온 진공기술센터는 국내외 독보적인 연구 조직이라 할 만하다.

진공기술센터에 기술 노하우를 전수받으려 하는 국내 중소기업들도 줄을 잇는다. 진공기술센터는 관련 분야 중소기업들의 기술애로를 해결하고 대기업 및 연구원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지난 2006년 '반도체공정진단연구회'를 만들었다. 연구회는 매년 반도체 공정진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하고 있는 중소기업 수만 해도 50여 개. 진공기술센터와 산·학·연 연계를 통한 기술교류회는 진공 산업 관련 기업들의 기술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상호 신뢰와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해 국가적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이바지 하고 있다.

윤주영 박사는 한 달에 두 번 꼴로 중소기업을 방문한다.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련 기업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진공기술 확립뿐 아니라 그의 적극적인 산업체 지원의 공을 인정받아 2016년 미래부장관 표창(중소기업 지원부분)을 받기도 했다.

최종 목표를 묻자 윤 센터장은 "반도체 산업 대비 원천기술 확보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이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며 "기초원천기술 확보가 아닌,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산업 원천기술, 특히 진공에 관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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