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벤치마킹의 함정, 한국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글: 김은선 KISTI 중소기업혁신본부 책임연구원
중소기업은 국가산업의 허리와 같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성장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 혁신'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을 위한 김은선 박사의  기고 시리즈를 연재한다. 순서는 1.세렌디피티, 우연성의 기술기회를 극대화하자. 2.벤치마킹의 함정,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 3."실패해야 성공한다" 실패에 따른 리스크는 정부가 담보해야 4.사회적 자본과 4차 산업혁명 5.한국형 기술사업화 생태계 구축 6.기술사업화, 무빙타겟을 고려한 평가지표의 발굴이 시급하다. 7.혁신의 의미, 革新인가, 赫新인가? 등의 순이다.[편집자 주]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정책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벤치마킹은 어느 특정분야에서 우수한 상대를 표적으로 삼아 성과차이를 비교하고, 그들의 뛰어난 운영 과정을 배우면서 부단히 자기혁신을 추구하는 기법이다. 국내에서도 북미나 유럽 등의 기술사업화 기관과 그들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려는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지금도 새로운 모델을 만들라치면, 해외에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없다면 새로운 모델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질문이 쏟아지곤 한다. 그러나 선진형 모델을 참고하는 수준을 넘어 모방하는 수준으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 사회, 문화적 풍토가 다른 국가의 모델이 국내환경에 적합할지도 의문일뿐더러, 말로는 혁신을 외치나, 모방된 프로그램은 평균의 틀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 벤치마킹이 의미했던 것은 토목분야에서 높낮이를 측정하기 위한 지지대를 세우거나 활용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제록스가 당시 경쟁사였던 캐논의 경영기법을 조사, 분석에 활용하면서 경영분야에 벤치마킹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벤치마킹의 목적은 타 기관의 강점과 약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한다는 것이지만 오늘날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대세를 따르려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겠지만, 과연 실패 없는 혁신이 가능하고, 창조적인 것을 생산할 수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3년 이피아테크의 대표는 인터뷰에서 "세계 유일한 것 혹은 세계 최초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혁신이다.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이 만드는 제품은 당연히 이전에 존재한적이 없는 제품으로 기업은 새로운 방법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새로운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지원이 필요할 때는 해외에 유사한 기술이나 제품이 있는지, 해외의 성공사례가 있는지 물어본다. 우리에게 혁신을 외치면서, 남들을 쫒아가라는 역설을 펼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현재의 지원체제도 훌륭하고, 많은 중소기업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의 선점자(First mover)가 되기 위해서는 평균의 시각에 기반한 모델이 작동하기가 어렵다.

경험에 의하면, 실제 벤치마킹을 경영기법으로 활용하는 중소기업 CEO들 가운데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규모가 백배 이상 되는 해외 유수의 기업을 벤치마킹 하겠다고 한 경우가 종종 있다. 언뜻 매출규모의 차이를 고려하면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벤치마킹의 목적이 유사분야에서 수조원 매출을 올리고 있는 리딩기업의 성장경로를 보면서, 어떻게 기업을 키우고, 위기에 대처했는지 전략적 방향성을 보려는 것이지, 그들의 성장경로를 따라 유사제품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면 쉽게 수긍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 영역에서 이머징 기술을 토대로 시장의 판도를 바꾸던지, 신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사전 분석작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마틴 프란스만(Martin Fransman)은 The Market and Beyond: Cooperation and Competition in Information Technology라는 그의 저서에서 1980년대 일본이 어떻게 IT분야의 강자로 떠올랐는지에 대해 일본이 국가와 기업이 결합된 형태의 관민협조형으로, 전후 모방형 기술개발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주도하에 민간부문의 연구개발능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석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한 데는 전례 없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였다. 여기서 우리만의 방식은 대한민국에서 기업이 성장한 역사, 비즈니스 생태계, 상호작용하는 방식, 관계, 신뢰, 특유의 기술기반 등을 고려한 정책과 전략이다.

혁신의 과정은 복잡하다. 기업은 국가, 지역, 제도 및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주변의 혁신주체들과 부단히 상호작용을 통해 그들만의 유일한 자원(resource)을 구축하고 고유한 역사를 갖게 된다. 수많은 중소기업 가운데 유사한 업종에 종사하는 기업은 있어도 기업의 자원이나 성장경로가 같은 기업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CEO의 뛰어난 역량이 핵심성공요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중간관리자를 철저히 믿고 인간적 신뢰를 우선한 CEO와,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스스로 하면서 카리스마적인 리더쉽으로 사업을 영위한 CEO의 역량이 기업의 성장에 미친 영향은 다를 것이다. 당연히, 이들 기업이 혁신과정에 겪는 애로사항도, 필요로 하는 자원을 다를 수 밖에 없다.

최근 들어, 저마다 다른 개별기업의 니즈에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전시의 '생생기업 해커톤 캠프'는 그간의 일회성 지원을 넘어 장기간 다양한 기관들과 전문가 집단이 모여 개별기업의 복잡다단한 애로를 해결해주는 독창적인 사업화 모델이다.

향후 이러한 프로그램이 정치적인 레토릭으로 남지 않고 기업의 목마른 니즈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관과 기업의 경계를 넘어선 수평적 협력과 기업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김은선 박사는?

김은선 박사는 중소기업 기술혁신 전문가다. KISTI 중소기업혁신본부 사업기회분석실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대·중소기업의 기업컨설팅을 수행해왔다.

김 박사는 2009년 과학산업화 팀장, 2010년 기술사업화정보 실장을 연임했었다. 아울러 당시 3000여명 남짓하던 과학기술정보협의회를 1만 2000명 수준으로 활성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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