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균 고려대 교수, 주체성·불확실성 회피 등 한국인 특성 강조
15일 ETRI 융합연구센터서 상상력포럼D 개최

허태균 고려대 교수가 15일 상상력포럼D를 찾아 '대한민국을 만든 한국인'의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허태균 고려대 교수가 15일 상상력포럼D를 찾아 '대한민국을 만든 한국인'의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대한민국은 중2병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자아 형성 과정인 사춘기 때 많은 혼란을 겪으며 일탈 행위를 일삼죠. 현재 한국 사회가 혼란과 갈등에 빠진 이유도 사춘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누구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국가 차원의 자아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한국 사회가 성장동력 기반이 흔들리고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는 '사면초가' 상황에 빠지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사회심리학 분야의 대표 학자 허태균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민낯을 파헤쳤다.

15일 오후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융합기술연구생산센터. 상상력포럼D 연사로 나선 허태균 교수가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성장 활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허태균 교수는 "한국은 압축성장 신화를 이룰 만큼 숨 가쁘게 달려왔다. 육체는 성장했지만, 정신·자아는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 사춘기와 같다"며 강의의 포문을 열었다.

허 교수는 한국 사회가 사춘기임을 시기적으로 설명했다. 고려는 457년, 조선은 518년간 유지됐다. 국가의 수명을 500년을 기준으로 친다면, 한국은 해방 이후 71년 현재 나이를 환산하면 약 13, 14세 정도다. 딱 사춘기 나이다. 

허 교수는 "청소년들이 사춘기를 겪고 나면 정신적 자아를 찾아 인간의 완전체로 더욱 성숙해진다"라며 "이제 한국은 새로운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자아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상력포럼D를 찾은 참가자들이 허 교수의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상상력포럼D를 찾은 참가자들이 허 교수의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 "내가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한국인 특성 낱낱이"

허 교수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발전시킨 동력이자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주체성'을 꼽았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이 서양 사람들의 주체성 개념이라면, 한국인의 주체성은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인하고 확대하려는 성향이다. 쉽게 말하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허 교수는 한국의 '한턱 쏜다' 문화를 예로 들었다. 그는 "한턱 쏜다라는 뜻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겠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라며 "한국의 정체성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으려는 주인공 의식"이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가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인 주체성을 설명하며 '한턱 쏜다' 문화를 예시로 들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허 교수가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인 주체성을 설명하며 '한턱 쏜다' 문화를 예시로 들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은 과거 급속 경제발전 시기에서 개념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며 "당시 한국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날마다 발전하려고 노력했다. 무조건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합리적인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압축성장을 성공시킨 기성세대들이 주체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기성세대들이 주체성을 경험해보지 못한 청년들에게 주체성을 주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과거에는 주체성이 한국의 성장동력이 됐다면, 이제는 오히려 세대간 갈등의 배경이 되는 양상이다. 

허 교수는 "한국 사회 세대갈등의 가장 큰 문제는 주체성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주체성이 한국의 압축성장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허 교수는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심정 중심주의'를 꼽았다.

심정 중심주의는 행동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허 교수는 "서양인은 행동과 마음의 일관성에 대한 욕구가 크다"며 "일관성이 깨지는 순간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서양 사회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인들은 마음과 행동이 분리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허 교수는 직장 상사와 후배 직원들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직장 상사 입장에서 일은 잘하는데 마음이 안 가는 후배와 일은 못해도 마음이 가는 후배가 있다면, 후자가 인사평가 등에서 유리한 평가를 받게 되는 사례다.

후배들이 행동과 마음이 분리된 행동을 보인 것에 직장 상사는 심정중심으로 마음이 더 가는 후배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게 된다는 심리학적 해석이다.

허 교수는 "대덕의 지식인들도 우리나라의 수준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고민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사진=김요셉 기자>
허 교수는 "대덕의 지식인들도 우리나라의 수준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고민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사진=김요셉 기자>
허 교수는 "행동과 마음이 분리될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피곤해질 것"이라며 "개인의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될 때까지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기성세대에는 한 직장에서 40~50년을 동료들과 함께 보내기 때문에 행동과 마음을 동시에 알 수 있었다"며 "하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어진 현재는 동료의 행동과 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더욱이 자신이 조직에서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마음을 숨기고 과장된 행동을 보이게 된다"며 "악순환의 골이 깊어지면서 마음과 행동이 더욱 일치하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허 교수는 한국인의 또 다른 특성으로 '불확실성 회피'를 언급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신봉한다는 특성이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한국 사람들은 동일한 가치가 있어도 무형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다. 불법 음원 다운로드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무형 자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허 교수는 "출연연을 비롯한 대학 등에서도 무형 자산이 인정되지 않는 평가 기준이 나오고 있다"며 "주관적으로 무형자산을 평가한다고 해도 결국 점수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뀐다. 무형자산의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허 교수는 여러가지 한국의 사춘기적 성향과 문제점들에 대해 정리를 하며 "결국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천은 자기 스스로에 달렸다. 남들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한다"며 "대덕의 지식인들도 우리나라 사회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고민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방향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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