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비밀 찾아 '땅 속으로 들어간 과학자들'

국내 첫 '중성미자 검출기' 구축 스토리…10년간 측정, 24시간 3교대 연구
장비 개발부터 환경단체 설득까지 '물리학자들 손으로'
"중성미자망원경 구축해 땅 속에서 별 중심부 들여다볼 것"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원자력발전소 인근 봉대산. 입구로부터 270미터까지 이어지는 터널 끝에 국내 리노연구진이 활동 중인 '중성미자 검출시설 연구실'이 있다. <사진=김수봉 교수팀>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원자력발전소 인근 봉대산. 입구로부터 270미터까지 이어지는 터널 끝에 국내 리노연구진이 활동 중인 '중성미자 검출시설 연구실'이 있다. <사진=김수봉 교수팀>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원자력발전소 인근 봉대산. 입구로부터 270미터까지 이어지는 터널 끝 '중성미자 검출시설 연구실'이 있다. 휴대폰도 제대로 터지지 않을 정도로 깊숙하다. 어두컴컴한 땅 속에서 국내 리노(RENO,원자로 중성미자 변환 실험) 연구진이 진행 중인 연구는 '우주의 비밀을 찾는 것'이다.
 
리노 연구진은 경북대, 경상대, 광주과기연, 동신대, 서영대, 성균관대, 서울대, 세종대, 전남대 등 40여명의 연구진으로 구성돼 있다.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우주 연구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를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땅 속이 제격이다. 중성미자는 우주로부터, 또 원자력발전소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이 방출되는데 지상에서 중성미자를 관측할 경우 우주에서 함께 날아오는 우주선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한빛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두 대의 지하 검출장비로 매일 24시간 3교대로 쉼 없이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리노 연구진의 책임자 김수봉 서울대 교수는 "실제 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초음파로 촬영하듯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땅 속이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연구실, 밖을 나와도 식사 한 끼 제대로 해결할 곳도 없는 곳에서 과학자들이 고군분투한 지도 이미 10여년이 지났다. 안식년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며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뛰어다니는 김수봉 교수를 만났다.
 
◆ 경쟁국 대비 반토막 예산…그럼에도 물리학자들 적극 나서다
 
리노 연구진의 중성미자 검출기.<사진=김수봉 교수팀>리노 연구진의 중성미자 검출기.<사진=김수봉 교수팀>

"원자력시설을 구축하려다보니 연구시설 마련을 위해 군청과 기업부지활용 허가, 시민단체의 이해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도 경쟁국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리노 연구진은 2005년 국내 실험연구 수행가능성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첫 중성미자 검출기를 구축했다. 이 검출기에는 하루 1000여개 정도의 중성미자가 감지된다.
 
태양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가 우리 손톱 위를 초당 700억 개씩 지나가고,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가 매초 1조의 10억 배나 배출돼 빛의 속도로 우주 끝으로 퍼져나는데 비해 적은 숫자처럼 느껴지지만 '유령입자'라는 별명답게 질량이 작고 물질과 상호작용이 거의 없어 중성미자를 측정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중성미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 보다 어려웠던 것은 시설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10여년 전만해도 입자실험 연구에 필요한 가속기와 대형검출기 시설이 전무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소립자를 연구하기 위한 적합한 가속기가 없어 방학만 되면 해외시설을 사용해 국제공동연구를 주로 했다"고 회상했다. 김 박사가 연구에 필요한 가속기의 수준은 유럽의 CERN 가속기인데, 약 10조원의 예산이 투입돼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내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를 이용해 중성미자 변환확률을 측정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원자로를 가속기 대신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중성미자 변환은 1998년 발견된 후 가장 약한 변환확률만 측정되지 않고 있었다.
 
전국 원자력발전소를 대상으로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원자로가 6대로 가장 많으면서 인근에 산이 있는 한빛원자력발전소 부근에 지하검출시설을 구축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김 교수는 "100억의 10억 배 되는 숫자의 중성미자가 원자로 하나에서 나온다. 저에게는 그것이 가속기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지사용 허가와 환경단체 이해 등을 얻는 작업과 경쟁상대인 프랑스와 중국 대비 적은 예산 등의 커다란 난관이 눈 앞에 있었다.
 
김 교수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검출시설 부지사용 허가를 얻어내는데만 1년이 걸렸다. 원자력 시설이다보니 군청의 허가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물리학자들이 직접 나서 원전 내부 시설구축 허가와 인근 주민, 환경단체들을 직접 만나 이해시켰다. 쉬지 않고 노력한 결과 우리가 제일 먼저 구축을 완료하고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 직접 측정장비 개발 "존재하지 않는 장비개발, 개척연구로"
 
중성미자 검출 원리를 설명하는 김 교수. 리노 연구진은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설계하고 개발했다. <사진=김지영 기자>중성미자 검출 원리를 설명하는 김 교수. 리노 연구진은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설계하고 개발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사다가 데이터를 측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직접 다 설계하고 개발했다. 있는 장비를 구입해 연구하면 추격연구밖에 못하지만 우리만의 검출기가 있으니 개척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리노 연구진은 중성미자 측정에 앞서 중소기업과 손잡고 측정기를 직접 설계하고 개발했다. 덕분에 장비가 고장 나도 즉각 수리할 수 있으며, 새로운 연구방법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장비를 개선할 수도 있다. 리노연구진 곁에는 24시간 장비기술자들이 함께 상주한다.
 
중성미자 측정 장비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선도연구를 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장비가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데이터들을 모을 수 있었다”며 “존재하지 않는 장비를 개발하는 것은 아무도 해보지 않은 분야를 개척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리노 연구진은 직접 개발한 측정장비로 다양한 성과도 냈다. 2012년 중성미자 3종류(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가 움직이며 다른 종류로 변하는 '변환 특성' 중 1가지 변환확률을 성공적으로 측정한 것이다.
 
지난해 중성미자 진동변환을 발견하고 중성미자 질량의 존재를 처음으로 입증한 카지타 교수와 맥도날드 교수가 세 종류의 변환 확률 중 두 가지를 측정한 업적을 인정받아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최근 리노 연구진은 2013년 1월까지 약 500일간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원자로에서 발생된 중성미자가 검출장비까지 약 1.4km를 날아오는 도중에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바뀐 확률을 2012년 처음 측정한 결과보다 오차를 무려 2배 이상 줄였다.
 
이를 통해 중성미자의 가장 가벼운 질량과 가장 무거운 질량의 차이가 전자 질량의 약 10억 분의 1 정도로 매우 적음을 측정했으며, 정밀 측정을 통해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 에너지 스펙트럼이 그동안 학계에서 통용되던 것과는 다르게 특정 에너지 영역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물리학 난제로 남아있는 중성미자 질량 순서와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 비대칭성을 알아내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대형 우주 중성미자망원경 만들 것…별 중심 활동 볼 수 있어"
 
리노 연구진은 원자력발전소 인근 두곳에 검출기시설을 마련했다.<사진=김수봉 교수팀>리노 연구진은 원자력발전소 인근 두곳에 검출기시설을 마련했다.<사진=김수봉 교수팀>

김 교수는 중성미자 연구를 위한 지하 실험 시설을 나주 금성산에 구축하고 대형 우주 중성미자망원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약 2만 톤의 섬광액체와 약 1만개의 대형 광센서를 이용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 우주 중성미자망원경을 만들고자 한다"며 "초신성 폭발이 10초간의 짧은 순간에 약 6000개의 중성미자를 관측해 중성자별의 탄생과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관측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작년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카지타 교수의 스승인 고시바 교수는 초신성으로부터 10개의 중성미자를 검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대형 우주 중성미자망원경을 만들면 땅 속에서 우주를 보는 망원경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땅 속에서 연구하는 천문학"이라며 "지금은 별의 표면만 볼 수 있지만 중성미자 천문학은 별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일을 초음파 촬영하듯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을 5년 정도 더 수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의 수집과 더 개선된 분석을 통해 실험 오차를 더욱 줄여 중성미자의 변환확률과 질량 차이를 최종 목표인 5%의 오차를 가진 정밀 측정 결과를 얻어낼 계획이다.
 
고시바 교수는 지난 2011년 방한해 한 강연에서 노벨과학상 첫 수상 이후 우리에게 어떻게 활용될지 등의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 그리고 물질의 기원을 찾다보면 우주의 탄생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성미자가 없었다면 수많은 원소도, 원소로 구성된 모든 물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연구가 당장의 이익과는 무관할지라도 생명의 기원을 알아내는 중요한 실마리연구가 국내외에서 꾸준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이나 미국이 1조원 이상씩 투자해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을 풀기위해 노력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리노연구진.<사진=김수봉 교수>리노연구진.<사진=김수봉 교수>

김수봉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앞으로 5년 더 수행하고 6년차부터 우주 별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현상 규명에 돌입할 수 있도록 시험 시설을 나주 금성산에 구축하고 대형 우주 중성미자망원경을 만들 계획이다.<사진=김지영 기자>김수봉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앞으로 5년 더 수행하고 6년차부터 우주 별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현상 규명에 돌입할 수 있도록 시험 시설을 나주 금성산에 구축하고 대형 우주 중성미자망원경을 만들 계획이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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