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현장 "유행 따르면 이미 늦어···과기정책, 장기적이고 공격적이어야" 

정부가 내년도 정부 주요 연구개발 예산 배분 조정안을 공개했다.<사진=미래부 제공>
정부가 내년도 정부 주요 연구개발 예산 배분 조정안을 공개했다.<사진=미래부 제공>
내년도 국가 R&D 예산 13조원이 'AI·로봇'에 집중투자 된다는 정부의 발표에 과학기술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과학기술 정책과 예산배분은 미래를 예측해 진행돼야 할 국가의 중대사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돼야 하는 것으로 반짝하는 사회적 이슈에 따른 결정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30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 '2017년도 정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따르면 AI(인공지능)-로봇,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등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맞춤형 지원을 강화, 관련 예산을 4707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49.6% 증액됐다. 

핵심기술인 AI 분야 예산은 1656억원으로 80.2% 늘었다. 지능정보·로봇융합서비스(100억원·미래부), 인공지능 융합 로봇시스템(146억원·산업부) 등 로봇기술과 융합프로그램도 신설됐다.

과기예산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것에 대해 연구자들은 환영을 뜻을 비치면서도 일부 사업에 집중되는 모습엔 답답함을 표했다.  

출연연의 K 박사는 "모두가 퍼스트무버(first mover)를 원하지만 유행에 민감한 정책에서 뭐가 나오겠느냐"라며 "연구현장에서는 AI가 빠지면 과제가 안 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유행따라 로드맵을 빨리 바꾸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뭘 할것인지, 이걸 통해 뭘 앞으로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과학기술 정책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TRI L 박사는 "과학자들은 각자 자기분야의 첨단기술을 접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전부터 연구해 온 건데, 정부 정책 관계자들이 이제야 안 것"이라면서 "남들이 다 한걸 뒷북치는 것인데, 그러면서 원천기술을 하라니 지나가는 소가 웃겠다"고 꼬집었다. 

또 한 과학자는 "정부의 이번 예산배분 결정은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인공지능 등에 투자한다는 정부부처 사업이 벌써 30%나 삭감됐다"며 "우주기술 등 특수분야는 정책적으로 하는 게 맞지만 대부분의 과학기술은 유행 따라 하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연연 P 실장도 "올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없었다면 AI에 투자를 전년대비 80% 이상 늘렸을지 의문이 든다. 기초연구란 성과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지 절대 일회성이나 이벤트성의 증액이나 투자가 되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과학기술 투자라는 것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매년 이슈사항에 따라 대폭 증액했다는 식의 언급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내년도 연구 계획을 세웠던 연구자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최근 미래부가 '2017년도 정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 공청회에서 밝힌 예산 배분 방향과 확정안이 다르게 결정났기 때문이다.    

공청회에서 밝힌 중장기 투자전략 9대 기술은 ▲ICT·SW(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IoT) ▲생명·보건의료(신약, 의료기기) ▲에너지·자원(에너지저장, 신재생에너지) ▲소재·나노(탄소·나노소재, 금속) ▲기계·제조(제조기반기술, 로보틱스) ▲농림수산·식품(식품, 축산·수의) ▲우주·항공·해양(항공, 인공위성, 해양·극지) ▲건설·교통(철도교통, 도로교통) ▲환경·기상(기후·대기, 환경보건 및 예측) 등이었다. 

이공계대학 한 연구자는 "불과 얼마 전에 정부가 밝힌 R&D 예산 배분 방향과 이번 확정안은 다른 부분이 많다. 이번 정부의 처사는 R&D를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보려는 정부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학 기술지주 담당 L팀장은 과학기술전략본부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전략본부의 일률적인 예산 10% 감축을 통한 재원 마련은 결국 기존 유사 예산을 줄인 후 포장을 다시 해 다른 사업화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부처 간 협업의 이슈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닌데 구체적인 내용 없는 시스템 마련은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략본부의 컨설팅 기능과 역할도 모호하고 전략 사업이라고 칭하는 로봇 등도 결국은 현재 관점에서의 트렌드를 따르는 것 아닌가"라며 "중장기라하면 현 트렌드와 이래 신수종을 제시하는 것으로 너무 현재 관점에서의 판단은 전략본부의 역할이라고 하기에는 좀 약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한국의 R&D 비전이 무엇인가. 비전이 없기에 전략이 없고, 전략이 부재하기에 현장에서는 우왕좌왕하는 것"이라며 "긴 안목을 보는 과학정책 리더가 존재하도록 국가가 운영되어야 하고, 현장 과학자들도 제대로 된 연구시스템과 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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