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일본 AI 바둑프로그램 '젠'과 러시아서 대국
프로 활동 중 영문학 공부·창업·집필 인공지능 대결까지 '도전하는 삶' 주목

우리나라 바둑계를 대표하는 선수 조혜연 9단이 오는 27일 '유럽바둑 콩그레스'에서 일본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젠'과 대국을 펼친다. <사진=김지영 기자>
우리나라 바둑계를 대표하는 선수 조혜연 9단이 오는 27일 '유럽바둑 콩그레스'에서 일본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젠'과 대국을 펼친다. <사진=김지영 기자>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일본의 AI(인공지능)바둑 소프트웨어 '젠'과 대국을 준비 중인 조혜연 9단의 각오다.
 
조혜연 9단은 최근 제2의 알파고로 불리는 일본 개발 AI바둑 소프트웨어 '젠'의 대국신청을 받아들였다. 두 기사(?)의 대국은 오는 27일 4시 러시아에서 열리는 '유럽바둑 콩그레스'에서 펼쳐진다.
 
조 9단은 11살의 나이로 10개월 만에 최연소로 바둑 프로에 입문했으며, 광저우 아시아 게임에서 여자바둑 국가대표로 출전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바 있다. 20년간 치른 대국 수만 900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둑여제다.
 
그런 그녀가 이번 대국을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 조 9단은 "인공지능과의 대결은 너무나도 원했던 것"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그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을 해설자로 관전하며 경기에 큰 관심을 보인 선수 중 한명이다.
 
"유럽바둑 콩그레스에서 보낸 메일이긴 하지만 'Zen'이라는 이름으로 대국신청이 왔어요. 거절하면 지금 당장은 마음이 편하겠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대국을 하면서 느끼는 체험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겁났습니다."
 
조 9단은 젠과의 대국 전에도 다양한 도전을 하며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선수로 유명하다. 일반전형으로 영문학과 입학했으며, 더바둑 창업과 20여 권의 바둑관련 저서 집필까지 보통 바둑프로와는 조금 다른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 젠과 대국 단 1판 "이세돌 선수와도 만나…어떻게 대국할지 생각 많죠"
 
조혜연 9단과 젠의 대결은 각 20분이다. 초읽기 30초 1회를 준다. 대국은 젠이 두 점을 먼저 놓는 접바둑으로 치러지며, 대국 룰은 일본룰을 따른다. 이세돌 선수가 직접 돌을 집어 경기한 것과 달리 젠과의 대결은 컴퓨터 서버를 통해 진행한다.
 
유럽 측에서 젠과 조 9단의 서버를 준비해 ID도 부여한 상황이다. 대국에는 알파고 손 역할을 했던 아자황 박사가 공식 참관인으로 참석한다.
 
승부는 단 1판이다. 대국 중 젠 성격을 파악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조 9단이 유럽 측에 한 판 더 경기를 치를 수 없는지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한 판이 원칙'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최근 대국을 준비하며 동료 기사들과 잦은 논의를 가졌고 이세돌 9단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또 알파고의 기보를 분석하며 차근히 대회를 준비 중에 있다.
 
조 9단은 "대국이 단 한 판이니 젠의 정교함을 실험할지 가능한 받아들일지 생각이 많다"며 "난이도를 떠나 패싸움(覇)을 고려한 수읽기 전술들이 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럼 조 프로와 대국을 펼치는 젠은 어떤 버전의 프로그램일까. 젠은 도쿄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바둑 소프트웨어로 최근 일본에서 열린 '컴퓨터 바둑 대회' 최종 결승에서 페이스북의 소프트웨어를 꺾고 최종 우승한 바 있다. 이 대회에 구글의 알파고는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9단과 경기를 치를 젠은 사실상 알려진 정보가 없다.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던 소프트웨어는 '젠 6'버전이었지만 이후 '젠 19a'가 경기를 치를 것이라 메일이 왔고, 최근에는 '젠19x'라는 누구도 보지 못한 버전과 대결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결을 치르기로 했던 기존 버전이 아닌 대결은 불합리한 상황. 그러나 그는 "이세돌 선수의 기보가 오픈돼 있었던 반면 알파고는 비공개 연습 5판만 오픈해줬기 때문에 그 대국이야말로 불합리했었다"며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불리한 여건에서도 바둑을 두었기 때문에 바둑계도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경기에 최선을 다할 것과 바둑인으로서 과학기술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알파고의 경기에서 졌으니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에게 이겨야 한다는 생각과 바둑 중심적 사고는 버리고 인공지능에 바둑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는 대국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웃음)."
 
◆ 영어공부와 창업이유? "바둑 알리고 싶다"
 

조 9단은 영문학 전공, 더바둑 창업, 책 집필 등 다양한 도전을 하는 선수다. 최근에는 남녀노소가 바둑을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출시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조 9단은 영문학 전공, 더바둑 창업, 책 집필 등 다양한 도전을 하는 선수다. 최근에는 남녀노소가 바둑을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출시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조 9단은 어린시절 바둑교실에서 처음 배운 바둑에 흥미를 가졌다. 일주일에 한 번 바둑교실에 갔고 그 외 시간에는 집에서 컴퓨터로 바둑을 뒀다. 컴퓨터에 마우스가 없어 좌표로 바둑을 뒀던 때다.
 
남자들이 취미로 많이 두는 바둑 세계에 조 9단의 '바둑소녀' ID가 신선했는지 대국 신청은 문전성시. 얼굴이나 나이 등을 온라인상에서 알 수 없으니 무림의 고수들과 바둑을 둘 기회도 많았다. 그는 "부모님 세대에는 없었던 기술발달 특혜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바둑 세계에서는 실력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프로에 입단하면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일반전형으로 고려대 영문학과에 입학,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과정도 마쳤다. 영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바둑을 다른 나라에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인이 돼 개인적으로 바둑보급 활동을 시작한 그는 주한미군이나 특전사, 소방관 대상으로 바둑강의를 하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프랑스나 스위스, 태국 등 현지 바둑협회 초청으로 현지바둑지도와 강좌도 실시했다. 그러나 바둑을 제대로 알리려면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사업이다. 조 9단은 지난 2014년 바둑의 문화와 향기 전파를 위해 뜻있는 기업인들과 손잡고 더바둑을 창업했다.
 
"사업이 쉬운 건 아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좋아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만들고 홍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바둑을 두는 분들이 많고, 특히 프로 기사들이 많으니 인적 자원이 풍부하거든요. 바둑인들이 만들어진 자리에는 익숙한데 스스로 자리를 만드는건 익숙하지 않아요. 우리도 바둑두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해야 바둑을 더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창업을 결심했어요."
 
그는 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두가 바둑을 즐겁게 둘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어릴 때는 어린이 바둑교실에서 바둑을 둘 수 있지만 성인이 되면서 기원에 가야는데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이 꺼리기 때문. 강한 의지 없이는 바둑을 배우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 조 9단의 설명이다.
 
그는 "바둑 팬들도 10명 가운데 1~2명 정도만이 여성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성보다 남성비율이 더 높은 것이 공통현상"이라며 "바둑은 남녀 상관없이 머리와 손을 쓰는 굉장히 건강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에 조 9단은 최근 '프로다면기 어플앱'을 출시했다. 급수가 비슷한 일반인끼리 어플을 통해 무료로 바둑을 즐길 수 있으며, 일정한 액수를 지불하면 희망하는 프로기사를 지정한 후 대국도 가능하다.
 
그는 "바쁜 스케줄 등으로 예전같이 바둑을 두기 힘드니 스마트폰에서 카톡을 하듯이 바둑도 시간있을 때 둘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현재 삼성전자와 함께 8월 출시를 목표로 바둑 전용 태블릿 PC '알파탭'을 개발하고 있다.
 
바둑 프로로 활동하며 책을 쓰는 활동도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그는 ▲조혜연 창작사활 ▲관자보 영역본 ▲실전·공략과 안력 ▲프로기사 캠퍼스를 걷다 등 총 20권의 책을 영어, 중국어, 일어 등 4개국언어로 발간한 바 있다.
 
지난 2012년 발간한 프로기사 캠퍼스를 걷다는 수필집은 대학에서의 4년간의 추억과 루이나이웨이 9단과의 일화 등을 직접 썼다.
 
그는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루이 9단에게 여러번 패하며 아픈 마음을 가누지 못해 책을 썼다"라고 웃으며 말하며 "그러나 지면서 많이 배웠고 바둑을 더 잘 알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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