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과학기술자와 품격

신분제·부정축재·님비···우리 사회 병리적 현상 되풀이
롤 모델과 행동으로 전통 바꿔야···과학계도 성찰을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검사, 판사 출신들의 부도덕한 축재, 고위 공직자의 시대착오(기사링크:"민중은 개·돼지···신분제 공고화해야"), 재벌가의 뒷돈, 예술가의 윤리 문제, 지위를 신분으로 착각하는 사례(기사링크:'종놈' 폭언에 관리소장들 1인 시위), 국회의원실의 전근대적 풍경(기사링크:전근대적 의원실 풍경) 등등 주로 가진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어지럼증을 앓고 있다. 여기에 사드 배치를 포함해 국가 공동체의 안위는 뒷전이고 내 지역은 안된다는 님비 현상 등은 과연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가 하는 착잡함을 갖게 한다.

민주화 이후에 사회가 더 소란스러워진듯 하다. 권위주의 정부 시대와 비교해 그나마 나은 것은 이전에는 기승을 부리던 음모론이 많이 약해진 듯하다. 특정 지역과 특정인을 보호하려 권력이 엉뚱한 방패역을 한다는 소문이 민심을 더욱 화나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요란스럽고 여전히 지저분하기는 하나 당사자들로 문제가 국한된다. 부패가 과거 특정 세력에 의한 구조적인 것에서 최근에는 개인화되가며 앞으로는 좀 더 사회가 성숙해질 수 있겠다는 한줄기 희망도 가져본다.

최근의 소란은 우리들에게 많은 학습거리가 된다. 일련의 사건들을 단순화시키면 세 가지 유형으로 압축할 수 있지 않나 여겨진다. 하나는 권력(지위), 다른 하나는 돈, 그리고 끝은 공동체 의식 부재 혹은 국방은 남의 일이란 의식의 표출이다. 돈과 권력은 결탁하고,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괴물로 모습을 드러낸다.

민중(?) 출신의 국회의원들도 금배지를 달면 어깨에 힘주며 '내가 누군데'란 행세를 한 것도 뇌리에 남아있다. 거기에 각자도생이란 말이 나오듯 공동체는 후순위이다. 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소수이다. 민주화가 됐음에도 왜 신분제가 공공연히 나오고, 1인당 3만 달러 가까운 국가임에도 여전히 모두가 '돈'에 배고픈 것일까? 거기에 왜 국방은 후순위일까?

책은 우리가 갖는 의문을 스스로 풀도록 하는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얼마전 출간된 두 권의 책이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실마리를 준다. 하나는 '두 얼굴의 조선사', 다른 하나는 '상류의 탄생'이다.

우리는 우리를 잘 모른다. 우리들의 DNA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두 개의 변수는 하나는 조선이란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란 나라이다. 두 개의 본질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 둘을 다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모른다. 모르니까 과거를 미화하거나, 향수 비슷한 것을 갖거나 껍데기만 본 것을 같고 사실로 여겨 그것을 본뜨려 한다. 그것이 하나는 신분제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며, 국방이란 것에 대한 자세이다.

먼저 조선에 관해 보자. 일제 시대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생각하고 부정하는 만큼 우리는 조선에 집착한다. 그 조선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세계에서 드문 500년 장수 국가이고, 우리들의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으며, 백성을 존중했다는 아름다운 국가란 이미지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그 반대편에 있는 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그다지 찾아보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편식이고 또다른 왜곡이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고,또 모르는 이면을, 부정적인 면을, 민낯을 전면에 드러나게 한 책이 '두 얼굴의 조선사'(저자 조윤민 작가)이다. 이 책은 사료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조선 사회의 구조가 어떠했으며 동력은 무엇이었고 왜 망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들춰낸다. 

조선은 신분제로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은 그 신분제 때문에 망했다. 조선의 신분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기에,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삶을 일그러뜨리고, 결국은 국가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신분제를 부지불식간에 이야기하고, 자리를 차지하면 행세하는 못된 버릇들이 되살아 난다.

조선시대 신분제의 폐해를 드러내는 대표적 어휘가 하나있다. 혹 '서얼'이란 단어를 아시는가?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이다. 그럼 둘 사이의 구분은 무엇인가? 똑같은 첩의 자식인데 서자는 어미가 양민인 사람, 얼자는 어미가 천민인 사람을 지칭한다. 적자(嫡子)와 서자(庶子)를 구분하는 것도 모자라 서자 가운데서도 서열을 두는 것이다. 조선은 적자 출신의 양반만이 사람으로 인정받고 나머지는 그 사람들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였다.

신분제가 갖는 폐해는 무엇일까? 적자 양반만 빼놓고 모두는 사회적 패자에 속한다. 아무리 재주와 능력이 있어도 꽃 피울 수 없다.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의 재능을 살려야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이 가능한데 특정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소모품이 되어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한정된 사람들만이 특권을 누리고 나머지는 루저가 되면 사회는 활력을 잃게 되고 결국은 공동체도 무너진다. 

조선이 망한 객관적 이유 중의 하나는 지식의 양과 질이다. 사서오경 같은 경전은 갖고 있지만 화석화된 지식이고 근대 사회를 구성하는 법과 제도, 과학, 문물 등에 대한 본질적 지식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위해 설립한 것이 조선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이라는 육영 공원. 1886년 조선을 이끌어가는 우수 관료와 앞으로 지도층이 될 권문세가의 자제들을 학생으로 받아 이들에게 근대 교육을 시켜 공동체를 존속시키겠다는 취지로 발족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는 씁쓸했다. 

처음에는 학업에 열의를 보였으나 수학과 영어 등 낯선 지식을 배우는데 어려움을 느끼다, 등교 시간 등의 엄격한 학사 운영에 적응하지 못해 급기야는 출석을 꺼리고, 학교 안가겠다는 학생을 가마를 태워 보내고, 담뱃대와 책가방 등을 갖고 오는 종을 딸려보내는 등 조선시대판 오렌지 행태가 나오며 학교는 3년만에 슬그머니 문닫았다.(설명링크:육영공원). 3년 동안 입학 인원은 100여명.

양반 자제들 입장에서는 이것을 안 배워도 갖고 있는 재산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굳이 힘들게 배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심정을 갖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된다. 나라는 망해도 신분제로 당장의 기득권은 보장된 만큼 긴장감을 갖고 배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사례가 일본의 근대교육기관인 '적숙'(適塾 -데끼쥬쿠)이다. 육영공원보다 약 반세기 앞서 오사카에 세워진 사설 교육기관으로 당시로서는 첨단 학문인 네덜란드 학문(蘭學)을 배웠다. 1838년 개교해 30년간 지속됐고 3000명이 수학한 것으로 기록된다. 학생들은 대부분이 평민 출신의 고학생으로 서로 가르치고 배웠다. 한 권뿐인 네덜란드어 사전을 보며 공부하러 불이 꺼지는 밤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일본 서구화의 대표적 지식인인 후쿠자와 유키치가(설명링크) 이곳 출신이다. 

신분제를 혁파해야 하는 이유는 출생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천국일지 모르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온갖 제약이 작동하는 지옥이다. 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도 안주하면서 결국은 나태해지게 된다. 육영공원이 실패하고 적숙이 성공한 이유의 하나도 신분제로 기득권이 보장된 사회와 기득권이 없지만 열심히 하면 보다 잘 살 수 있는 사회의 차이라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신분제는 일제 합방과 6.25 이후 민주주의 도입 등을 거치며 사실상 폐지됐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없애지 못하고 남들이 없앴기에 철저한 해체가 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은근히 살아 있다가 생각이 짧고 벼락 출세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들불처럼 번지며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를 막는 유일한 길은 국민 한 명 한 명이 우리가 망한 이유를 되새기고 신분제가 갖고 있는 폐단이 결국 공동체를 망친다는 인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망령된 생각이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선진국은 혁명으로 피를 흘리며 신분제를 없앴으나 우리는 그 과정을 건너 뛰어 그 비용을 뒤늦게 계속 치르는 것이 아닐까?

신분제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 관료제이고, 부에 대한 집착이다. 양반들이라고 신분제 세상에서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유력한 생산 수단인 관직을 갖는 것은 개인의 중요 목표였다. 과거를 보는 목적은 입신양명과 그 다음 따라오는 부귀영화를 위해서였다. 조선 시대 관료들은 허가 받은 폭력배나 다름 없었다. 그 폐해가 식민 시대와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잠시 사그라졌다가 혼란기를 틈타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

관료들에 대해서는 일 안하고 서민들의 피를 빨아 먹는 존재라고 조선 말기에 이 땅을 찾은 이방인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떤 종류의 일도 하지 않는 무가치한 인간 벌레(제이컵 로버트 무스), 이 나라의 심장부를 차지한 채 이 나라의 생피를 빨아 마시는 흡혈귀(어니스트 해치), 관리들은 조세 수취로 백성들을 쥐어짜낸다...정부는 하나의 거대한 강도가 됐다.(조지 클레이턴 포크), 고되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봤자 관리가 그것을 뜯어간다.(아놀드 새비지랜도어), 가난이 최고의 보신책이다, 음식과 옷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면 탐욕적이고 타락한 관리에게 노출된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양반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저 양반이라는 자들은 모두 높이 받들어지고 넉넉한 곳에 처하며, 교만하고 방탕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벼슬하는 것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았다.(량치차오)...'두 얼굴의 조선사'에 실려있는 관리들에 대한 서술이다.

지금의 일부 관료나 검사,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과 국회의원 등의 권력자들에게서 이런 조선시대의 악취가 다시금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조선의 망국에 이른 과정을 다시금 제대로 살펴야 하고, 현재 사회 혼란의 뿌리를 알아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는 특정한 몇사람만이 알아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지난 어두운 역사를 명확히 이해하고 분노하고 불의를 용서하지 않도록 행동하며 각자의 DNA를 바꿔나갈 때 조선 시대 기득권자들의 악행이 우리 시대에 다시 발호할 수 없다.

사드로 님비 현상을 갖게 되는 이유도 조선시대부터 그 뿌리가 있다. 소홀한 국방 의식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를 통해 국방을 해결하며 남의 일로 여겼다. 유일한 경제력을 지닌 계급이며 모든 권력을 가진 양반들이 세금과 군역을 부담하지 않았다. 조선의 양반은 세계 최고의 특권층이다. 서양의 귀족은 전쟁에서 가장 앞장섰다.

하지만 조선의 양반은 평시는 물론이고 전시에는 더더욱이나 군역을 피하려 발버둥쳤다. 가진 자들이 먼저 살려고 기를 쓰니 평민들도 마찬가지 자세를 지니게 된다. 결국 군역이나 국방은 누구도 지기 싫어하는 대상이고, 아무도 나라를 지키려 하지 않으니 결국 망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사드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성주 사람들도 피해만 강조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우리 지역에 안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질 뿐 전체 공동체의 존속은 강건너 불이다. 그러면 나라는 망하는 것이다.

역사는 말한다.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지역은 더더욱이나 지킬 수 없다고.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킨다는 생각을 갖고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모두가 각자 도생을 하고, 너나 없이 돈만이 최고라는 생각이 만연한 나라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책이 '상류의 탄생'(저자 김명훈 작가)이다. 이 책은 미국 생활을 40년 넘게 하며 미국 상류의 품격을 접한 저자가 한국이 알고 있는 미국과 실제 미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리려고 쓴 책이다. 해방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을 다녀와 그 덕에 한국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살아가고 미국의 가치를 안다고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데 사실은 겉 모습만 본 것일뿐 본질은 매우 다르다는 지적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 사람하면 물질만능이 떠오르고 부의 과시가 연상된다. 그런데 저자는 미국의 본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서 드는 사례가 미국 두 번째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다. 대통령을 지냈는데 묘비명에 그 기록이 없다면? 글을 쓰는 필자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왕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며 현충원의 대통령 묘역은 특별히 크고 위치도 다르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 묘비에 그것을 쓰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 생전에 묘비명을 직접 지었고 이대로 묘비를 세웠다. 그 문구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의 제안자, 그리고 버지니아대의 창설자 토머스 제퍼슨, 여기에 잠들다'이다. 대통령을 지냈다는 기록이 없다.(토머스 제퍼슨 재단-묘비링크)

토머스 제퍼슨이나 그에 앞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등 미국 건국의 기초자들이 롤 모델로 삼은 인물이 로마 시대의 킨키나투스이다. 농장을 운영하던 그는 어느 날 로마가 함락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과 6개월간 독재관에 임명됐다는 전갈을 받는다. 처음에는 출사하기를 주저했으나 원로들의 삼고초려로 마지못해 임명을 수락하고, 로마 군단을 지휘하여 적을 불과 몇 주만에 물리친다. 그리고 나서 무한 권력의 독재관 임기가 아직 한참 남았음에도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가 일한다.(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키나투스 설명링크(Lucius Quinctius Cincinnatus)

이를 롤 모델로 워싱턴은 왕으로 추대하겠다는 제의를 물리치고 농장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이나 권력자들도 대통령이나 장관, 의원 등등을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명예직으로 알고 근무한 다음 이전 자신의 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이 가진 권력을 기반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과 우리는 환경과 가치관 등등이 달라 똑같은 잣대를 갖고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인들의 상류는 돈이 제일의 목표가 아니라고. 그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더 중점을 두고 어느 정도 먹고 살 것이 마련되면 전문성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번영에 더 큰 가치를 두고 행동하는 것이 미국의 본질이라고.

최근 과총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성규 오하이오대 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미국에서 지방대학으로만 4번 옮기고, 400여건의 제안서 가운데 100여건만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본인이 실험 장비 제작에서부터 교육, 연구, 저술 등등을 혼자 다해야 하고, 청력 장애마저 와서 인공 와우 수술을 해야 하는 등 온갖 고난을 겪은 역정을 이야기한다. 그 어려움을 겪으며 셰일가스 발굴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 미국이 세계적 산유국으로 발돋움하게 했고, 연구 공로로 노벨상 이상으로 명예를 인정하는 미국 과학공학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한다. 쉬는 시간 없이 연구했고, 학생들을 온 열정을 갖고 가르쳤으며, 프로젝트를 받으면 120%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그러다보니 미국 사회가 인정하게 됐다고.

신분제와 돈, 권력, 국방, 성실 등의 최근 단어는 과학계와 큰 관련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도 이제는 실험실 밖과 연계를 맺어야 한다. 지금 한국 과학이 투자대비 성과가 없다고 지적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험실과 사회가 상당히 유리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든 프로젝트만 있으면 되고, 적당히 연구비 있으면 그것 갖고 장비 사고, 해외 한 두번 나가고, 회의비로 밥 먹고...일부 과학자가 그러는 것이겠지만 과학계 또한 사회의 잘못된 행태가 되풀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과학자도 이제는 '품격'을 생각해야 한다. 연구자로서의 기본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바람직한 롤 모델을 찾아 미래를 위한 전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이 과학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도록 공부하고, 점검하고, 더욱 본질을 다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독서와 토론이 유용하고 그런 가운데 최근의 현상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자료로 '두 얼굴의 조선사'와 '상류의 탄생'이란 책을 소개했다. 여기에 우리 과학을 보다 이해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는 차원에서 '어떻게 일본 과학은 노벨 과학상을 탔는가'(저자 김범성 교수)도 일독하면 좋을 것으로 본다.

남탓하고, 환경탓하기 보다는 어렵지만 인류를 위한 진보를 이루려 꾸진히 연구에 매진하는 품격 있는 과학자가 우리 주변에 분명히 계실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분께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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