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형 화학연 박사 새로운 혈액암 후보물질 기술이전 쾌거
"신약물질 발굴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때 결실"

"연구도 잘하고 과제도 잘 따는 비즈니스 능력도 갖췄으면 좋았을텐데 성격이 좀 나빠서 그런지 과제 수주하기가 참 어려웠어요.(웃음) 어렵게 과제를 땄으면 연구라도 잘 진행되면 좋은데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중단되더라고요. 그만뒀냐고요?"

물론 그의 연구는 계속됐다. 첫번째 기술이전 물질은 과제 수주 1년만에 두번째 기술이전 물질은 과제수주 2년만에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으며 연구가 중단되고 말았지만 그의 못된(?) 성격 덕분에 우직하게 한길을 걸으며 국내 제약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쾌거를 거뒀다.

1986년부터 한국화학연구원(원장 이규호)에서 연구를 시작, 올해로 연구자 생활 30년을 맞은 이계형 박사의 이야기다.

화학연은 20일 보령제약과 이계형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새로운 혈액암치료제 후보물질인 'PI3K 저해제' 기술이전 협약식을 가졌다.

PI3K(Phosphoinositide 3-kinase)는 세포 내 신호전달 과정을 조절하는 효소로 세포성장, 증식과 분화, 이동, 생존 등의 여러 기능을 조절한다.

특히 PI3K 는 악성종양에서 과발현돼 암세포의 생존, 증식, 전이에 관여해 이를 저해하면 암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존 제품은 굴지의 제약사에서 내놓았지만 매우 값이 높고 간 독성이 있다. 사실상 일반적인 치료제가 없었던 셈이다.

이계형 박사팀이 개발한 후보물질은 혈액 암세포주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고 체내에서 약이 흡수, 작용, 배출되는 약동력학 면에서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다.

보령제약은 2018년 관련물질에 대한 임상 1상을 예상하고 있다. 기술 이전 금액은 비공개지만 보령제약 측이 물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선급금, 실적기술료, 경상기술료 등 상당한 금액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 과제 1년, 2년만에 중단됐던 연구들 우여곡절 끝에 대박 성과로

이계형 박사는 여전히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하며 후보 물질을 찾는다.<사진=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이계형 박사는 여전히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하며 후보 물질을 찾는다.<사진=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유기화학을 전공한 이계형 박사는 화합물 중 면역 염증 분야로 방향을 정하고 연구에 몰입했다.

그는 "면역 염증관련 질환은 천식, 자가면역질환 분야 등 질환이 많았는데 항체 신약은 너무 고가였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뚜렷한 치료제가 없었다"면서 "누군가 해야할 부분이었고 연구 결과로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연구주제로 정하고 지금까지 한길을 왔다"고 자신의 연구방향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과제 수주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박사는 "1986년 연구원 생활을 시작할때는 100% 정부지원으로 연구에만 몰입하면 됐다"면서 "하지만 PBS 제도가 생기고 어느정도 연차가 되면서 직접 과제를 수주해야하는데 비즈니스 능력(?)이 남들에 비해 부족해서인지 여러 조건들이 엇갈리며 과제 따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다행히 정부 대형과제의 세부과제 책임자를 맡으며 첫번째 과제를 수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1년만에 날아갔다.

"과제 시작한지 1년만에 평가를 받았는데 낙제점을 받았어요. 과제가 그냥 중단됐어요. 정부 과제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니 이해는 하는데 과제를 아예 접을 수가 없었어요. 희망이 있었거든요."

연구 방향을 이미 정한 그는 과제가 중단됐지만 우직하게 자신의 연구에 몰입했다. 

이 박사는 "주위의 도움과 지원으로 직접 실험하며 연구를 지속했다"면서 "천식과 류마티스성 관절염 치료 물질로 인정 받으며 높은 기술료를 받고 기술이전에 성공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두번째 과제는 첫번째 연구성과에서 결실을 거두며 어렵지 않게 수주했다. 하지만 연구진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번에는 2년만에 과제가 중단되고 말았다.

"연구과제를 1년마다 평가하는데 2년째 평가시 동물실험 결과가 미진했어요. 과제가 중단됐지요. 그렇다고 연구를 중단하지는 않았어요. 다행히 연구원 내부과제와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연구비 속에서 연구를 계속했어요."

이 박사는 "2012년 11월부터 시작했는데 만 4년이 조금 안된 시점에 후보물질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면서 "후보물질을 발굴해도 실제 신약물질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활성도가 높으면 독성이 있는 등 여러 원인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가 쉽지않은데 실패했던 경험들도 많은 도움이 되면서 우수한 후보물질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연구비가 없다고 하던 연구를 중단하고 남들이 다 하는 연구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조금만 더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면서 "혹시라도 후배들 중에 연구비가 없다고 하던 연구를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 "자식같은 발굴 물질들, 먼발치에서라도 지원할 것"

"밥먹고 잠잘때를 제외하면 항상 연구분야만을 생각해서인지 얻은 물질들이 자식 같아요. 기술 이전식을 하면 마치 사랑으로 키웠던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허허롭기도 하죠. 앞으로 이전기업에서 임상 2상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입니다."

이 박사는 치료제 후보 물질을 '예쁜 딸'에 비유했다. 그만큼 애정이 크단다. 그의 공식 역할은 기술이전으로 끝나지만 물질이 신약으로 나오기까지는 안전성 검증 등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기술 이전한 PI3K 저해제를 보다 효력과 안전성 측면에서 우수한 약물로 개발하기 위해 후속 공동연구를 협의하고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이 물질은 혈액암 이외에도 다양한 면역관련 질환에 적용가능하다. 새로운 신약 개발의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박사는 "물질을 연구하다보면 파생되는 연구결과도 많다. 이후에도 면역분약 연구를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화학연이 기술이전한 PI3K 저해제는 악성림프종 중 비호지킨성 림프종을 치료할 수 있는 후보물질이다. 관련 환자는 국내에서만 연간 4100명으로 추정되고 전 세계적으로는 42만명 규모다. 시장은 2013년 59억 달러(원화 6조7442억원)에서 2020년 92억 달러(원화 10조5165억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이 박사는 "신약 물질은 다른 연구분야처럼 연구성과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도 있지만 어제까지 볼수 없었던 결과를 오늘 볼 수 있게 되는 경우도 많다"면서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물고 늘어지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화학연구원과 보령제약은 20일 이계형 박사팀이 개발한 혈액암 치료제 후보물질인 'PI3K저해제'에 대한 이전식을 가졌다.<사진=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한국화학연구원과 보령제약은 20일 이계형 박사팀이 개발한 혈액암 치료제 후보물질인 'PI3K저해제'에 대한 이전식을 가졌다.<사진=한국화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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