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는 앞 방, 장비는 뒷 방···"과학자는 늘 테크니션과"

[연구장비 국산화⑤]'느리지만 제대로' 연구자와 테크니션 오랜 팀워크 신뢰↑
하랄 잘란트대 교수 "원하는 연구실현 위해 장비 직접 개발해야"
독일 자브리켄에 위치한 잘란트주립대.<사진=김지영 기자>독일 자브리켄에 위치한 잘란트주립대.<사진=김지영 기자>

독일 자브리켄에 위치한 잘란트주립대학의 한 연구실. 연구를 하던 학생들이 스케치를 들고 연구실 바로 앞 공작실 문을 두드린다. 학생들이 가져온 스케치는 공작실 엔지니어와의 대화소재다. 연구자가 생각한대로 연구장비나 연구기기로 구현할 수 있는지 논의 후 컴퓨터를 통해 도면을 제작하고 구현한다. 이렇게 공작실을 찾는 것은 학생이나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연구장비 스케치→도면제작→실제구현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에 비하면 최종 장비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이 빠르지는 않다. 공작실에서 이제 막 가공이 끝난 부품을 볼 수 있었는데 이 부품 하나를 만드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단다.
 
한국에 비하면 모든 것이 다소 느린 독일이지만 같은 건물 내에서 일하는 연구자와 엔지니어의 오랜 팀워크는 연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로 다져졌다. 연구장비를 개발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개조하며 오랫동안 사용하는 비결은 엔지니어가 연구자들의 든든한 동반자역할을 맡는다.
 
하랄 물리화학과 교수. 그는 공작실 엔지니어와 연료전지성능 측정장지오 스프레이 장비를 개발했다. 그의 연구실 바로 옆에 엔지니어가 상주해있다. 두 사람은 언제든지 장비에 대해 논의하고 수리 및 개발할 수 있다.  <사진=김지영 기자>하랄 물리화학과 교수. 그는 공작실 엔지니어와 연료전지성능 측정장지오 스프레이 장비를 개발했다. 그의 연구실 바로 옆에 엔지니어가 상주해있다. 두 사람은 언제든지 장비에 대해 논의하고 수리 및 개발할 수 있다. <사진=김지영 기자>
잘란트주립대학의 하랄(harald natter) 물리화학교수는 공작실의 엔지니어와 함께 연료전지성능측정장치와 스프레이 장비 버전 1, 버전 2를 개발한 바 있다. 스프레이 장비는 3D프린터기를 개조한 것으로 연료전지 제작과정 중 카본을 균일하게 뿌릴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에는 붓이나 스프레이 등으로 카본을 칠했는데 균일하고 고루 뿌려지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하랄 교수는 "연구에 맞는 장비가 시중에 판매되지 않아 직접 개조하게 됐다"며 "이 기계들은 엔지니어와 상담해 도면을 만들고 직접 제작한 것이다. 사용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엔지니어들과 상의해 꾸준히 개선한다. 엔지니어가 없으면 만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개조한 장비는 연구개발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판매는 하지 않지만 공동연구를 하는 타 기관의 연구실에 제공하기도 한다. 하랄 교수는 "현재 인근 연구소에 같은 장비를 제공해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외부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전체 예산의 60%가 장비개발에 투자됐으며 장비개발도 성과로서 인정을 받았다.
 
학과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랄 교수가 소속된 물리화학과는 연구장비 개발을 위한 교육과정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연구장비나 장치 등을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위한 기본 교육은 필수다.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컴퓨터공학은 필수 과목"이라며 "박사과정생이되면 조금 더 세밀하게 소프트웨어를 조절하고 개발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연구장비 개발 전문 교육은 없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직접 장비나 장치를 개발해 박사과정 논문을 쓴다. 하랄 교수는 "학생 논문 중 80%는 장치개발 이야기고 나머지 20%는 그 장치를 통해 어떤 분석이 가능했는지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 학과 학생 중 한명은 자동차 배기가스 촉매를 측정·분석하기 위해 장치를 직접 개발했다. 이 내용을 논문에 담은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랄 교수는 "연구자와 학생이 장비 전체를 개발하기는 어렵지만 자기 연구를 위해 어느 정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자들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 그 생각을 구현하는 것이 기존 장비로 가능하다면 좋지만 기초연구 등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면서 "장비를 모두 만들지 않더라도 연구자가 개선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에서도 연구자들이 장비를 잘 활용할 수 있고 개발할 수 있도록 테마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의 안드레아스 만츠 교수는 분석화학자이지만 학생들을 교육할 때 장비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만츠교수는 랩온어칩(Lab on a chip, 손톱만한 크기의 칩 하나로 실험실에서 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기술 선구자로 DNA를 수만 배 증폭하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장비 등을 연구목적으로 개발한 바 있다.
 
만츠 교수는 "분석화학하는 입장에서 모든 장비를 개발하고 개선해서 쓸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되도록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서 쓸 수 있도록 교육한다"며 "그들이 대학원생이 됐을 때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며,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자기분야의 필요한 기능이나 기술을 키우는데도 장비개발은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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