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청 파일만 7만2000건···'국감때문에' 출연연 한숨만

미방위 24명 중 15명 초선의원· · ·재선이상 의원중 이공계 출신 '0'
일부 보좌관의 무리한 자료요청, 출연연 길들이기 지적도 나와
모 의원이 출연연으로 요청한 요구자료 목록.<자료=출연연 제공>모 의원이 출연연으로 요청한 요구자료 목록.<자료=출연연 제공>

# 2014년부터 2016년 8월까지 기관장이 결제한 자료를 첨부파일까지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규모가 작은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 한해 1000건 정도로 3년 분량이면 3000건 정도다. 각 의원마다 조금씩 요청 내용을 달리해 자료를 요청하고 있는데 24명의 미방위 의원들이 요청한 한개 문항의 자료를 다 합치면 파일만 7만2000건이 넘는다. 이런 자료 요청이 25개 출연연에 모두 왔다고 생각해봐라. 파일형식은 한글과 엑셀로 엄수해주기 바란다고 못을 박아 이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 지난 3년간 출연연 부서별 회의내용과 첨부파일까지 요청한 의원도 있다. 회의 내용, 참석자명단, 회식 상세내역 등을 한글과 엑셀로 작성해 보내달라고 했다. 출연연 회의비라는게 뻔한데 자료 요청의 기준이 없다.

# 모 의원실에서는 최근 5년 동안 국내·외 출장 리스트 뿐만 아니라 세부 보고서까지 요청한다. 단순한 한글 파일임에도 용량은 9G가 훌쩍 넘는다. 심지어 대용량 첨부파일은 USB로 저장해 우편으로 보내달라는 요청까지 이어진다. "상식적으로 모든 파일을 열어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다한 자료 제출과 종이서류 낭비. 20대 새 국정감사 준비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모양새다. 새로운 국회 구성으로 연구현장에서는 변화를 기대했지만, 올해도 각 출연연마다 국정감사 준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대 국회의 진영이 갖춰지고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각 국회의원실마다 9, 10월로 예정된 국정감사 준비로 벌써부터 분주하다. 

24명의 미방위 소속 국회의원 중 15명이 초선의원, 재선과 3선이상 의원 역시 미방위 소속은 처음이다. 

8일 과학기술계 및 출연연 등에 따르면 정부출연기관 홈페이지와 공공기관 알리오 사이트(www.alio.go.kr)만 방문해도 알 수 있는 통계자료까지 출연연에 요청하고 있다.

특히 감사 자료 준비를 맡고 있는 국회의원실의 보좌관과 비서관의 과도한 자료 요청에 정부출연기관 담당자들은 본연의 업무는 접어두고 국감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각 의원실 비서관과 보좌진의 자료 요청 메일이 줄을 잇고 있는데 출연연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면서 "주로 현황위주의 자료 요청이 많고 어느 의원실에서는 업무보고 하라고 불러올리기도 한다. 비서관, 보좌관조차 출연연 길들이기를 하는 것 같다. 의원은 달라지는데 하는 행태는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요청안 하나에 4~5개 세부항목 요구···"업무 마비 수준"

모 의원이 출연연으로 요청한 요구자료 목록.<자료=출연연 제공>모 의원이 출연연으로 요청한 요구자료 목록.<자료=출연연 제공>

-2014~2016년 8월까지 연도별 임원 보수현황(성과급, 판공비 별도구분 필), 세부항목 1)주민번호 기재 2)고액 연봉자부터 꼴찌까지 순서 엑셀작업 필
-2014~2016년 8월까지 연도별 회의관련(엑셀작성, 회의록은 별도 한글 첨부) 세부항목 1)부서별 회의 개최 현황과 상세내역 2)회의 사유 3)회의비 지출상세내역 회의록, 참석자 명단(근거 자료 필)

모 의원실에서 출연연에 보낸 자료 요청의 일부다. 자료 요청항목은 2개지만 세부항목으로 들어가면 7개로 세배가 넘는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이런 자료 요청에 대한 기한도 문제로 지적됐다. 출연연 관계자에 의하면 모 의원실에서 기관장의 1년 행적 자료를 당일 오후 4시30분에 요청하면서 마감기한을 당일 오후 6시30분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A 출연연의 관계자는 초선의원의 국감이 가장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는 "초선의원의 경우 출연연에 대한 이해가 없다보니 자료요청만 과하게 하는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미방위 구성이 거의 다 처음 맡는 분들이다. 두세분만 출연연에 대해 알뿐 나머지는 다 모른다고 봐야 한다. 자료 준비에 엄두가 안난다"고 답답해 했다. 
 
B 출연연 관계자는 "전년도와 비교했을 때보다 요구 자료가 수배는 많아졌음에도 자료 제출 기간은 평균 하루고 길어봤자 3일"이라며 "상식적으로 확인하지도 않을 것 같은 자료를 요청하는 특정 의원도 있다. 과연 이 자료를 다 볼 것이냐는 의심이 들 정도다"고 꼬집었다.

C 출연연 담당자는 "미방위 위원들이 국정감사 자료요구서를 기준만 달리해서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24명의 의원이 각각 원하는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 한 의원이 같은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 정책 국감은 없고 생색내기 현황 자료 요청만

​올해 감사의 핵심은 무엇일까. 출연연 성과를 묻는 것으로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의원실의 질의서를 토대로 본 결과 투입된 연구개발(R&D) 예산과 성과 평가를 묻는 질문이 세부항목까지 빼곡하다. 심지어 연구원 개인별 마일리지 발생 현황 등 예산관리에 집중돼 있다.

20대 국회의 총 국회의원 수는 300명. 그중 초선의원이 여야 합쳐서 123명이다. 미방위 소속 의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24명이며 이중 15명이 초선의원이다. 재선이상 의원 중에는 4선의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다. 하지만 재선이상 의원 중 이공계 출신은 단 한명도 없는 상황이다.

D 출연연의 국감 담당자는 "3년간의 사업 추진 현황부터 연구용역 발주현황까지 사업관련 질의서가 절반을 차지한다"면서 "정책적인 감사는 거의 없다. 매년 수치와 건수 등 현황 중심의 자료 요청으로 연구 현장은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한 관계자는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의 차별이 없다. 어쩌다 연구자 한명이 검찰에 기소되면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이슈로 터뜨려버려 연구자에 대한 인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언론에 보도되면 국정감사에서 재탕, 삼탕으로 이용한다. 무엇을 위한 감사인지 이해가 안된다"며 국정감사의 제대로된 역할을 주문했다.[헬로디디·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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