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호 벤처기업 '에스앤유프리시젼'···"교수에서 사업가, R&D정책 리더까지"
"국가의 R&D, 기업에 돌려줘 선순환 산업구조 지탱해야"

에스앤유프리시젼 공장 앞마당에는 국내 최초 유기증착장비를 중국에 수출한 기념으로 임직원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사진 백승민 기자>
에스앤유프리시젼 공장 앞마당에는 국내 최초 유기증착장비를 중국에 수출한 기념으로 임직원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사진 백승민 기자>
"1997년 한국경제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기술부족으로 수입대체를 하지 못하고 수출이 부족해 외화가 바닥이 나버린 상황에 1달러라도 수출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시급했다. 그래서 창업을 하게 됐다."

아산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에스앤유프리시젼(대표 박희재)의 공장 앞마당에는 작은 비석이 서 있다. 해외수출 기념 비석이다. 지난 2013년 9월 26일 세워진 이 비석 전면 동판에는 '국내 최초 5.5G 증착장비 해외 출하 기념'이라는 문구가, 그리고 비석 뒷면에는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기술보국(技術報國:기술로 국가에 보답한다)'. 1998년 2월 박희재 대표는 기술보국을 기치로 5평 남짓한 교내 실험실에서 대학원 제자 4명과 함께 서울대 실험실 1호 벤처인 '에스앤유프리시젼'을 창업했다. 창업자금 5000만원. 박 대표의 교수 퇴직금을 담보로 잡고 동료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창업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이 회사는 공작기계 정밀 측정 센서 개발로 시작해 2002년 비접촉식 3차원 나노형상 측정장비(PSIS)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급성장했다. 당시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불량률을 크게 낮춰주는 이 장비로 세계 LCD 검사장비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다. 2003년 78억원이었던 매출은 10년 만인 2013년 1013억원을 달성, 매출의 80% 이상이 수출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에스앤유프리시젼은 지난 2013년 유기발광다이오드 제조에 쓰이는 핵심장비인 유기증착장비를 중국에 첫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대당 수백억 원이 넘는 유기증착장비는 그동안 일본이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지만 에스앤유프리시젼의 가세로 시장 판도가 달라졌다.

◆ 기술은 반드시 시장으로 연결돼야···일본 업계도 "석세스 스토리 데스" 평가

"사업 초반에는 '제품을 팔아야 산다'는 일념으로 철두철미한 세일즈맨으로 임했습니다. 당시 경제상황에서 기술수출만이 국가와 기업의 생존력이라 믿고 직원들과 밤낮없이 해외로 뛰어다녔죠."

박 대표는 첫 제품으로 공작기계의 정밀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개발했지만 실적이 없는 회사에 시장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특히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의 정밀기계는 중국이란 병풍에 둘러쌓여 늘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불신을 신임으로 바꾸기 위해 결국 박 대표는 자신이 영업사원이 돼 해외를 발벗고 뛰어다녔다. '우리는 단순히 물건팔고 사라지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중국과 일본, 미국 등의 해외 영업에 전념했다.

에스앤유프리시젼 본사에는 아직도 박 대표가 첫 수출로 벌어들인 1달러가 액자로 걸려있다.<사진=백승민 기자>
에스앤유프리시젼 본사에는 아직도 박 대표가 첫 수출로 벌어들인 1달러가 액자로 걸려있다.<사진=백승민 기자>

박 대표는 "당시 정밀측정장비를 만드는데 1000만원 가량이 소요됐는데 일본의 기술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2000만원이 넘는 운송비가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다"며 "아무생각이 없었다. 무조건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100kg이 넘는 기계를 분해해 직원들끼리 나눠멨다. 개인짐을 줄이려 달랑 속옷 4벌만 챙겨 무작정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회고했다.

그 전시회 이후 박 대표 일행은 600여통의 이메일과 100번이 넘는 미팅, 일본고객사의 실무자부터 부장, 사장까지 모든 직급별로 일일히 대면해 기술을 입증하고 '석세스 스토리(Success story) 데스'라는 찬사와 함께 일본의 디스플레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에스앤유프리시젼은 1999년 말 감격적인 스웨덴 첫 수출을 계기로 2004년 세계 초정밀 측정 장비 시장의 70%를 공급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며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덕에 수출대금은 100% 외화다.

박 대표는 "첫 수출 대금 1만달러가 통장에 들어오자 바로 1달러를 인출해 액자로 만들었다. 그게 나와 회사의 보물 1호"라고 말한다. 본사에는 아직도 박 대표가 첫 수출로 벌어들인 1달러가 액자로 걸려있다.

박희재 에스앤유프리시젼 대표는 우렁찬 목소리만큼이나 자신의 비즈니스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박 대표는 "꾸준한 연구개발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업영역도 LCD 검사장비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태양광 관련 장비 등으로 확장했다"며 "단순히 기술 개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에스앤유프리시젼 직원의 삶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있다"고 자부했다.

◆ 창업규정 바꾸고, 강제농성 맞서기까지···"내 것은 내가 움직여 벌어야"

에스앤유프리시젼이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교수 신분으로 창업부터 쉽지 않았다. 당시 대학교수가 창업을 한다는 인식이 없었던 터라 대학교수는 창업 후 대표를 할 수 없었고 대학에 사업장을 만들 수도 없었다. 사업자등록증, 공장등록도 마찬가지, 규제부터 풀어야했다.

박 대표는 고민끝에 A4용지 3장에 규제개혁안을 담아 총리실, 교육부, 국회 등을 쫓아다녔다. 이런 그의 노력으로 1년 반만에 벤처특별법 한 조항에 '대학에 교수, 연구원이 창업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고,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난관은 머지않아 또 찾아왔다. 에스앤유프리시젼은 처음 조그만한 연구실에서 4년 만에 규모를 넓혀 경기 시화공단에 입주, 지난 2013년 아산 테크노밸리에 부지를 매입하고 공장을 건립했다. 부지매입 당시, 저수지 자리를 매입해 지반을 다지려면 10억원 가량의 지반보강용 파이프를 구매해야만 했다. 저수지 위에 거금을 들여 회사 공장을 짓는 과정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박희재 대표는 "아산공장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징가 제트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해서 '마징가 제트공장'이라고도 불린다"며 우스갯소리를 전했다.<사진=백승민 기자>
박희재 대표는 "아산공장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징가 제트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해서 '마징가 제트공장'이라고도 불린다"며 우스갯소리를 전했다.<사진=백승민 기자>
다음 넘어야 할 산은 강제농성이었다. 2차 건설사가 부도를 내며 잠적해 용역대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들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박 대표는 "공장준공 완료와 동시에 생산팀과 연구진을 데리고 아산으로 내려왔지만 강제 농성에 부딪혔다"며 "회사 정문에서 출입을 막고, 하루가 멀다하고 사무실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나중에는 겁도 나지 않았다. 이미 건설대금을 지불한 상태였고 오로지 공장가동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매일 맞섰다"고 추억했다.

박 대표는 회사설립부터 공장준공, 일본과 중국의 진출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늘 한가지를 새기고 있다.

그는 "전문경영인이요? 갖춰진 환경이 아닌 법제부터 공장까지 내 것은 내가 직접 움직여 벌어봐야 한다. 그게 바로 전문 경영인이자 기업가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 국가 R&D, 수요자인 기업 중심으로···"답은 늘 현장에서 찾아야”

박희재 대표는 서울대 공대 교수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을 거쳐 현재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에스앤유프리시젼 대표직을 맡고있다.  

단순히 이름만 올려놓은 명예직이 아니다. 그는 현재 서울대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에스엔유는 지난해 700억원 매출과 28억원의 영업이익을 일궈냈다. 또 지난 3년간 한 해 3조5000억원 규모의 국가 R&D 예산을 관할하며,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글로벌 전문기업화'를 꾀했다.

박희재 대표는 "창업당시 중소기업 현실은 달랐다. 학교에서 기술개발한 성과를 통해 산학협력 과정에 투입됐을때도 당시 중소기업 기술이 정말 영세하고 열악할 뿐 아니라 기술개발 성공의 절박함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며 "현장의 중심에 기술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 대표는 대학과 연구소가 시장에서 정말 필요한 기술개발과 이를 통해 기업이 사업화를 시키는 '히든챔피언'을 육성해나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원이 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 기업과 매칭하고, 정부는 기업의 기술사업화를 세계시장에 내보내는 지원자을 역할을 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시장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R&D 역량이야말로 세계시장에 진출해 그 속에서 혁신적으로 적응하며 대처할 수 있는 '생존역량'이 된다는 것이다.

에스앤유프리시젼 아산공장의 생산라인.<사진=백승민 기자>
에스앤유프리시젼 아산공장의 생산라인.<사진=백승민 기자>
특히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차별화된 핵심역량을 가진 기술력은 현장과 밀접한 관계에서 비롯된다"며 "SCI 논문이 밥먹여주나? 연구자는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내가 전담한 석사생들은 1년동안 에스앤유프리시젼의 실험실과 생산현장을 위주로 지도한다. 연구자는 모든 분야의 현장에서 조력자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매출의 10%이상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하고 있다. 임직원 가운데 석박사급의 연구개발인력이 30여 명을 차지한다. 제품화로 이어지는 연구개발을 위해 현장중심의 경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대표 스스로 본인의 판단과 결정을 따르기보다는 연구개발자나 현장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답은 늘 현장에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굳은 신념이다.

박 대표는 국가 R&D전문가로서 R&D정책에 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칸막이 행정, 전시위주의 연구, 정부기관과 출연연의 갑을관계 행정은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그는 "연구자율성과 책임의식을 강조해 시장·고객과의 끊임없는 소통에서 필요한 기술을 찾아야 한다"며 연구자의 목표의식과 방향설정을 강조했다.

창업 후에도 쉬운일은 하나 없었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시장에 필요한 핵심역량과 창업,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힘든 과정이 많아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박 대표는 "소위 말하는 상위 1%라는 엘리트들이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 찾기에 매달리는 것보다, 생산적인 창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지속적인 R&D와 일자리 창출을 이뤄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창업할 때는 직원이 4명이었지만 지금은 3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협력업체 가운데 매출의 절반을 의존하는 업체가 50여 개에 달해 이들 업체의 종업원을 합치면 모두 2000명 정도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고 뿌듯해 했다.

박희재 에스앤유프리시젼 대표는 서울대 공대 교수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을 거쳐 현재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에스앤유프리시젼 대표직을 맡고있다.<사진=백승민 기자>
박희재 에스앤유프리시젼 대표는 서울대 공대 교수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을 거쳐 현재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에스앤유프리시젼 대표직을 맡고있다.<사진=백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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