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하는 연구가 30년 후 빛을 봐"

출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8월호
[인터뷰]이성규 미국 오하이오대학 석좌교수(글: 남궁 은 박사, 사진: 과총 제공)

"'혁신', '융합'이란 단어가 최근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튼튼한 기초가 있어야만 융합이 가능하고 혁신적인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주제보다 더 멀리 보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연구를 지원하는 제도도 필요할 것입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이부섭·이하 과총)가 지난달 13일 개최한 '과총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Developing Technologies with Long-Lasting Impact Even in a Fast-Paced Technological World(급변하는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술개발)'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이성규 미국 오하이오대학 석좌교수는 "경기침체, 자금부족, 짧은 안목의 과제, 연구실과 강의실 연계 부족 등 미국의 연구 환경도 예전과 같지 않다"며 "하지만 미국은 기초과학이 튼튼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뛰어난 연구결과를 내놓는다"고 밝혔다.

이날 50주년 행사에서는 롤프 디터 호이어 독일물리학회 회장,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다요나스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소장, 아론 치카노버 테크니온공대 교수, 찰스리 잭슨랩 유전체의학연구소 소장 등 과학기술계의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연도 진행됐다.

화학공학계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며 '셰일가스 개발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성규 석좌교수는 아무도 셰일가스에 관심을 두지 않던 1980년대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추출법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이 교수의 연구개발 덕택에 세계 셰일가스 생산은 60% 증가하고 생산 비용은 4분의 1로 줄었다. 많은 석유기업들이 물 대신 이산화탄소로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이 교수의 개발기술을 도입했다.

현재 이 교수는 셰일가스 추출 등과 관련된 미국 특허 34건, 국제특허 87건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셰일가스 개발에 혁신적인 계기를 마련한 초임계 유체기술을 연구, 실용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과학·공학 명예의 전당(ESHF: Engineering & Science Hall of Fame)'에 입회했다.

'과학·공학 명예의 전당'은 '실용 기술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데 이곳 회원으로는 세계적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제록스 복사기를 만든 체스터 칼슨, 반도체를 만든 잭 킬비, 실용 원자로를 제작한 엔리코 페르미 등이 있다.

이 교수와 같이 입회한 인물로는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기를 발명한 마틴 쿠퍼 박사가 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에서 학사·석사를 받은 후 1977년 미국으로 간 이 교수는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4세의 젊은 나이로 미국 애크런대학(1980∼1997년) 석좌교수에 임명됐다.

그 후 미국 미주리대(1997∼2010년)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미국 오하이오대 석좌교수(2010년∼현재)로 재직하고 있으며 오하이오대학의 '지속 가능 에너지 및 신소재 연구소(SEAM)'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이성규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Q. 한국을 찾으신 소감부터 말씀해 달라.

'과총 5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에 기조연설자로 강연을 할 수 있어 영광이다. 1977년 미국으로 떠났는데, 올해로 39년째이다. 한국말로 강의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은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했으며 교육열 또한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사실 39년 전 한국을 떠날 때 한국의 교육환경은 열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돌이켜보면 좋은 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특히 한국에서 배웠던 공자의 교육 철학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며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절대로 잊지 않았던 것이 바로 후학양성이었다.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은 배우기 위한 것이다'. 교육신념이 여기에서 바뀐 적이 없는 것 같다.

Q. 교육철학이 확고하신 것 같다. 후학을 양성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39년 동안 미국에 있었지만 내 교육의 뿌리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신체·정신·사회 등이 조화를 이룬 '전인적 인간(全人的 人間)'에 두고 있다.

1977년 미국으로 떠날 때 내 가방에는 화학공학 서적 몇 권, 그리고 성실과 인내가 담겨져 있었다. 애크런 대학에서 17년, 미주리 대학에서 9년, 미주리 롤라대학에서 4년, 오하이오대학에서 6년 등 총 4개 대학에서 종신교수를 4번 했다.

고양이는 9번 다른 삶을 산다는데 나는 4번 다른 삶을 산 것이다. 수십 년 교수로 생활하면서 한국과 미국 외에는 다른 해외를 가본 적 없으니 '우물 안 개구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확하게 나의 직업은 우물을 지키는 개구리이다. 우물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올챙이 곁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부할 때 '지방학교 훈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는 그게 가능하더라. 미국 대학교들은 교육과 연구가 '50대 50' 비율이 되길 원한다. 때문에 학생 교육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강의부담이 적은 석좌교수이지만 한 학기에 항상 3과목 이상 가르치고 있다.

저학년을 대상으로 화공학 필수과목을 강의할 때 가장 즐겁다. 나 같은 구시대 훈장이 미래세대 리더들에게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 뿌듯한 일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늘 새로움에 자극받는다. 이것은 항상 도전으로 이어진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늘 떠오른다. 내가 돈을 주면서 학생들과의 교감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월급을 받으면서 이 교감을 하니까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학생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특권인 것 같다 .

학교를 여러 번 옮기다보니 항상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한 학교에 있으면 쉬운 길을 생각하게 되고, 기득권도 생기게 되고, 편안한 길도 생기고, 게을러지기 쉽다.

인생에서 4가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는데 첫째 안일해지는 것, 둘째 남에게 의지하는 것, 셋째 남을 시키는 것, 마지막으로 일의 결과에 대한 영광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4번의 대학교수 생활은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Q. 풍부한 매장량, 저렴한 가격의 셰일가스는 장래성이 높은 대체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수십 년 전 교수님의 연구로 셰일가스 생산효율성이 증가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識見)이 있었던 것인가.

이성규 오하이오대 석좌교수가 지난 7월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과총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사진=과총 제공>이성규 오하이오대 석좌교수가 지난 7월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과총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사진=과총 제공>
1980년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에서 '석탄 기체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 내 연구 관련해 연구비뿐 만 아니라 연구기자재도 거의 없었다. 20대 중반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과학자에게 연구비를 선뜻 내주는 기업이나 기관은 없었다.
그때 석탄보다 쉬운 게 셰일가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까지 셰일가스를 연구했다.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어 혼자 뛰는 마라톤 같았다. 테네시주,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지인들이 실험재료를 채취해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 연구결과를 모아 '오일 셰일 테크놀로지'라는 책을 냈는데 당시 123권이 팔렸다. 결국 책이 절판됐다. 하지만 이후 셰일가스가 대체에너지로 급부상하면서 이 책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헌 책을 6300달러에 사간 사람도 있다. 지금은 이 책이 셰일가스 생산의 지침서가 됐다. 현재 나에게 5권이 있는데 이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웃음).

이때 '기술이란 것은 시기가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구를 계속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가난할 때 좋은 연구를 하면 30년 후에 빛을 보지만 여유있을 때 좋은 연구를 하면 1-2년 안에 그것이 끝이 나고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지금 개발된 셰일가스의 기술은 엄청난 양의 모래와 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해야겠더라. '내가 개발했으니 이것의 문제점도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물을 쓰지 않고 모래도 쓰지 않고 지질의 영향도 받지 않는 셰일가스 프로세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아이디어가 성공하면 바다 밑에 매장되어 있는 하이드레이트까지 쓸 수 있을 것이다.

셰일가스도 사랑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탄산가스를 사랑한다. 탄산가스가 나에게 학위를 주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영광을 누리는 데 탄산가스가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탄산가스가 위기에 몰려있다. 옛날 한 선비가 있었는데, 장원급제를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선비는 고향에 있는 가시나무를 보자마자 큰 절을 올렸다. '왜 절을 하시오'라고 물으니 그는 '가시나무에게 빚을 졌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훈장님이 가시나무로 채찍을 만들어 훈육을 했는데 선비는 그것이 무서워 공부를 했고 결국 장원급제를 했다는 것이다.

최근 탄산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이제 내가 탄산가스를 도와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련한 연구 아이템도 생각 중이다.

Q. 초임계 유체 기술은 무엇인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모든 물질은 임계점이 있다. 온도와 압력을 임계점 이상 올리면 물질은 액체도 가스도 아닌 새로운 물성을 지니게 된다. 물을 임계점보다 높이면 소금 같은 성분들은 녹아버리는데 초임계 상태에서는 반대로 침전이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성이 달라지는 현상을 이용하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초임계 기술을 활용해 셰일가스 생산량이 증가됐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맞다. 예전에는 바위에 유기물질이 붙어있는 것을 제대로 분리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 기술을 활용해 분리가 가능해졌다. 이 기술을 토대로 기술 개발자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으며 생산성도 높일 수 있게 됐다.

Q. 산학협동에 관련해 미국 교수들뿐 만 아니라 기업체까지도 교수님께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산학협동을 어떻게 해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나.

우문현답(愚問賢答)을 인용하고 싶다. 산학협동의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산학협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 정열, 성실함이다. 사실 나는 밖으로 다니는 것을 싫어해서 기업체의 연구자들이 직접 연구실로 찾아온다.

미국 기업들은 각 대학별 교수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기업의 우수한 기술자가 교수들을 찾아와 기업에서 하는 일들을 과외선생님처럼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배운 뒤 기업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답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배우면 학생들은 현장에 안 가보고도 현장의 기술을 알게 된다. 교육과 산업 분야에서 모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인용논문이 몇 개이고, 국제적 저널 게재 논문이 몇 개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산학협력에서 중요한 것은 스폰서의 니즈(needs)에 맞는 연구, 학생들의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성심성의껏 할 때 일이 끊이지 않는다.

Q. 순수연구보다 산업 활용도가 높은 연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타이어전문기업 '굿이어타이어'와 함께 개발한 폐타이어활용기술, 제지회사 '킴벌리클라크'와 연구한 기저귀 관련재료, 석유업체 '토탈피나엘프'와 개발한 합성수지 공정 개선 등이 실용성 있는 연구들의 구체적인 예들이다.

사실 나는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학계의 주류라고 말할 수 없었다. 때문에 대형 프로젝트나 세계적 주목을 받는 과제는 하지 않았다. 처음 연구생활을 시작한 애크런대학 주변에는 자동차부품 업체가 많았다. 작은 기업들의 연구를 담당하며 산업현장을 몸소 체험했으며 실력을 키웠다. 이렇게 작은 과제부터 시작했고 점차 반경을 넓혀 다양한 화학공학 분야의 일을 하게 됐다. 성실과 열정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니까 산업계에서 인정을 해주었고 그게 입소문이 나니까 프로젝트도 저절로 늘어나게 됐다.

Q. 이때까지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 어떻게 연구를 수행했는지 말씀해달라.

처음 교수에 임용됐을 때는 12번 연속으로 연구과제 제안서를 거절당했다. 13번째에 이르러서야 미국전력연구소(EPRI)에 제출한 과제로 처음 연구비를 받는 데 성공했다. 공학자는 30년을 앞서서 세상을 내다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때까지 130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하지만 제출한 제안서는 440개에 이른다. 야구선수로치면 겨우 3할 대가 넘는 타자라고 생각했다. 제안서가 거절당할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준비해 도전했다.

최근 큰 프로젝트를 추진한 적이 있다. 2010년 미국 에너지부의 1억 2200만 달러 연구프로젝트에 지원을 했다. 태양에너지가 유일한 에너지 소스였으며 최종적으로 하이드로카본 생산물이 나오게 만들었다. 이는 탄소동화작용과 같은 내용이었는데, 화학플랜트를 이용한 탄소동화작용이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A에서부터 Z까지'란 생각으로 프로젝트는 진행되었으며 100명이 넘는 박사들이 모였다. 3,400만 달러를 매칭펀드로 받았다. 나는 기술파트 100페이지를 썼으며 780시간을 소요했다. 여러 사람의 중의를 모았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낙방했지만 그 과정을 즐겼다. '큰 프로젝트는 유명한 사람 여러 명이 나누기로 하는 것보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땀 흘리고 고민하며,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해야 하는구나' 깨달았다.

Q. 연구 중 찾아온 청각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정적인 교육과 연구를 아직도 하고 계신다.

2005년 어느 날 갑자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이때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 데도 말이다. 2007년에는 다른 쪽 귀마저 들리지 않게 됐다. 청력을 잃게 되는 것보다 다음 학기 수업을 못 하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섰다.

처음에는 약물로 치료를 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재활치료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늘에서 내린 벌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학생들이 부축해줘서 겨우 강단에 올라서기도 했다. 강의를 하고 나니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의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이 안 들려 난감할 때도 많았다. 강의실 앞에서부터 두 번째 줄을 넘어서는 질문들은 들리지 않아 답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여 있는 미국사회 문화가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학생들은 뒷자리 질문내용을 앞자리까지 전달해줬다. 그리고 학생들은 연구실로 찾아와 전화도 받아주었고, 전화회의를 할 때 학교 측에서는 중간 전달하는 사람을 보내 회의내용을 전달해주기도 했다. 들리지 않아 괴로울 때는 연구를 할 때 겪었던 수많은 실패들과 그 실패를 경험할 때 '이것은 극복할 수 있다'는 다짐들을 생각했다.

청각장애도 극복할 수 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지금도 아직 어지럼증이 남아있다. 여성들의 높은 음색은 못 알아듣는다. 입모양, 주제, 주변 상황을 보면서 내용들을 짐작한다. 하지만 밥 먹고 하는일이 연구라서 큰 지장은 없다. 나는 절대로 강의를 빼먹지 않는다. 학회도 1년에 한 번만 나간다. 학생 챙겨야지, 논문 봐줘야지, 연구해야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선생이 밖으로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좀 여유가 있을 때는 집에서 교육용 교재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 궁리한다. 첫 번째 대학교 총장은 '교수가 학교에서 교과서를 집필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 그 뒤로 교육용 교재는 꼭 집에서 쓰고 있다.

Q. 아무래도 세계적인 석학이다 보니 한국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도 질문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노벨상 수상자가 신문에 발표났을 때 관심이 있을 뿐 평상시에는 무관심하다.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올라가면 노벨상 수상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면 심사위원들의 마음 속에 '한국이 대단한 나라구나'라는 인식이 생긴다. 노벨상 수상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위원회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위상, 국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Q.한국에서는 취업난 때문인지 뛰어난 인재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여전하다.

인구비율로 보면 한국의 이공계 인력은 미국보다 많다. 하지만 한국은 큰 연구, 큰 이름을 좇아간다. 미국 이공계 학생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에 오는 학생들은 정말로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다. 이공계를 택한 학생들은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한다. 내 실험실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우수한 학점을 받고 있다. 학생들 중 11명은 내가 미주리대학에서 오하이오대학으로 옮겨올 때 같이 왔다. 그 전 애크런대학에서 미주리대학으로 옮길 때 15명의 학생들이 함께 왔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진짜 열심히 지도해야겠구나'하고 다짐한다.

Q. 현재 한국 정부의 R&D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잘되고 있는 시스템은 고치면 안 된다. 잘하고 있는 사람을 성가시게하는 '파괴적 개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을 무조건 따르라고 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되고 있는 일을 더 잘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R&D 혁신방향은 정부 주도로 가아하지만 너무 한쪽에 치우치면 균형발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예전과 달리 최근 한국 R&D투자나 연구시설은 좋아진 것 같다.

그리고 인문학의 중요성도 강조돼야 한다. 역사와 세상을 보는 방법, 가족의 중요성, 사회조직원이 되는 법 등은 모든 인문학을 통해 배운다. 교육은 리더를 기르는 것인데 여러 가지 소양들이 모여야만 리더가 될 수 있다.

Q. 앞으로의 연구계획에 대해 말씀해달라.

미래학자들은 당장 3년 후에는 무엇이 없어지고 5년 후에는 또 다른 무엇이 대세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주 신문을 보니까 미국 가솔린의 소모량이 올해 가장 높게 나왔다. 3년 안에 가솔린이 없어진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현재 에너지에서의 플렉서빌리티(flexibility)를 보고 있다. 메탄올 이코노미, 하이드로젠 이코노미, 카본 이코노미 등 한꺼번에 뭉쳐질 수 있는 에너지 플렉서빌리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긴 안목을 가지고 연구를 했으면 한다"고 조언하며 "한국은 다른 어느나라보다 스승과 제자의 연결고리가 단단하고 끈끈하다. 이것이 한국의 과학기술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자료 출처: 과총 과학과 기술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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