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그런 공학자에겐 세상 경험이 없더라"

[특별기고]재미 공학자 김창진 UCLA 교수의 조언
글: 지명훈 동아일보 부장(사회부 대전충청취재본부)
- 공학자도 보통 사람의 희망 정서 알아야 
- 사이언스 논문 내고 비즈니스 하는 게 공학자
- 이론과 실용 동떨어진 두개 아니고 보완적인 하나
- 목표 분명하고 큰 그림 못 보면 엉뚱한 연구로 허송세월
-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 한국의 청년들 도전할 의지 없는 게 아니라 도전 격려하는 환경 부재
- 한 사회의 신뢰와 윤리 수준이 기업 성공 갈라
- 수백만 달러 자금 지원도 e메일만으로 가능한 미국

모형 비행기가 힘찬 엔진소리를 내며 창공으로 치솟았습니다. 기체는 이내 궤적을 잡더니 그림 같이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며 날아갑니다. 중학생 창진이는 '아 아'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 기체에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을 오버랩 시켰을지 모릅니다. 그 즈음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리빙스턴은 완벽한 비행 그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갈매기가 결코 먹이만을 위해 하늘을 날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형 비행기 그룹 활동에 창진이는 무척 열심이었습니다. 멤버들은 그걸 다소 의외로 여겼습니다.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중학생이나 다소 거친 공고생들로 채워진 이 모임에 수재인 창진이는 다소 이방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 지방도시는 다들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지난 1970년대 대구의 중·고교생의 방과 후 사회는 두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수재들의 '공부방' 그룹과 공부와 담을 싼 친구들의 '태극당' 그룹이었습니다. 공부방 그룹은 그룹 과외를 받으면서 명문대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 지역 영어 수학 고수들이 눈 꼬리를 치켜든 채 그들을 지도했습니다. 태극당 그룹은 빵집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악명 높은 교외 지도 교사들의 감시망을 따돌리는 것이 그들의 과제였습니다.  

18일 열린 한국기계연구원(원장 임용택)의 '미래기계기술포럼 코리아'에 참석해 '꿈의 공학, 현실의 공학'을 발표한 김창진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분류상 공부방 그룹이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 공부를 잘했을 뿐 아니라 후에 국내 최고의 명문대에 들어갔고 공학 유망주로 미국 유학을 떠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은 그의 공부방 그룹 참여를 허락지 않았습니다. 제3의 그룹인 모형 비행기 모임에 문을 두드린 이유입니다. 그는 "당시 대구에서 공부 잘 했던 학생들은 같은 그룹 과외를 받아 학교가 달라도 서로 잘 알고 지냈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다"며 "하지만 과학자, 엄밀히 말하면 공학자였던 '에디슨'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어린 시절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에게 큰 재산이 됐습니다. 미국에서 교수를 지내면서 회사를 창업하고 운영할 때 그랬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공학 지식 보다는 '인간'과 '관계'에 대한 지식이었습니다. 모형비행기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남을 설득하는 방법도 배워야 했습니다. 모형 비행기를 그럭저럭 만든다 해도 엔진을 달아야 날릴 수 있는데 그 구입비용이 만만치 않아 동료나 선배를 잘 구슬려 빌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김창진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사진=지명훈 부장 제공>김창진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사진=지명훈 부장 제공>
김 교수는 이미 두 번의 비즈니스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처음에는 잉크젯 프린터에 쓰이는 특허를 취득해 변호사의 권유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뒤 다른 기업에 팔아넘기는 비즈니스였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특허를 좋은 조건에 파는 단순한 비즈니스였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는 이어 '일렉트로웨팅(Electrowetting)' 기술을 활용하는 회사를 2003년 제자들과 더불어 창업해 대표로서 2009년까지 운영했습니다. 전기로 표면장력이 바뀌는 현상을 '일렉트로웨팅'이라 부른답니다. 이를 통해 육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작게 구성된 기계와 복합 디바이스에 미세유체를 접목할 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공학적 업적인 이 기술로 김 교수는 2015년 '호암상 공학상'을 받습니다. 

"저는 모형 비행기 모임에서 보통 사람들의 희망과 정서에 익숙해 졌는데 이것을 잘 안다는 것이 공학자로서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을 고안하고 만들고 팔 때 그 대상은 보통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휴대폰 설계를 예로 들어 보죠. 아마도 어떤 공학자는 공학적 우수성을 잘못 해석한 나머지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를 만들어 놓고 만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걸 사용하는 보통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간편한 것을 선호하죠."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십자매를 사육한 경험은 그에게 공학자의 자질을 길러줬습니다. 당시 창진이는 가격이 저렴한 조류였던 '십자매' 한 쌍을 선물 받아 마치 금싸라기처럼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시간을 거르지 않고 먹이를 주고 면밀하게 계획을 짜 번식을 시켰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2학년 때에는 60쌍까지 개체수가 부쩍 불어났다고 합니다. 내다 팔고 번식하기를 반복하면서 사료 값을 충당하고 남을 만큼 돈도 수중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십자매를 길러 대학 등록금도 마련할 수도 있겠다고 어린 창진이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집을 이사하면서 환경 변화 등으로 더 이상 사육이 어려워져 모두 처분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당시 십자매를 1호, 2호 등으로 번호를 매겨 가면서 계획성 있게 사육하고 번식하면서 그 과정을 매일매일 관찰일기로 남긴 경험은 공학자의 가장 소중한 '관찰력'의 기반이 됐습니다.  

"박사과정 때 실험을 많이 해야 했는데 유난히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십자매를 기르던 시절의 경험이 참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당시 형제자매 가운데 남자는 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십자매를 키우는 일은 온통 저의 책임이었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펴야 했지요."

당시를 회고하면서 김 교수는 자신이 그룹 과외를 받아 성적이 'top of the top'이 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줬다고 감사해 합니다. "훌륭한 공학자가 되려면 '세상 경험'을 충분히 해야 합니다"라는 그의 조언은 성취한 자의 사치스러운 후일담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을 할 때의 진지한 표정이 그것을 말해 줬습니다. 

"실제 공부 해보니 공학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견할 만큼 창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공부는 잘 하면 좋긴 하지만 그런 건 어느 정도까지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세상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너무 공부만 한 친구들은 오히려 소진(burn-out) 효과 때문인지 나중에는 오히려 연구를 싫어하기도 했어요."

그는 2014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학자로서도 성공했습니다. 물방울이 우산을 쓴 사람에게서 멀찍이 흘러가도록 한 우산의 개념을 활용해 거의 모든 액체를 밀쳐내는 표면 물질을 만들어낸 것을 담은 논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매우 '학문적'(scientific or fundamental)이면서 ‘실용적’(practical)이라는 평가가 따라 다닙니다. 

사람들은 이런 두 가지 측면을 두루 갖출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두 가지 측면은 오히려 상통할 뿐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우선, 어느 한 분야에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이론을 구축한 사람은 여유를 가지고 이를 상품화 하고 비즈니스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 분야에서 당분간 아무도 추격해 올 수 없으니 차분히 활용도를 고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론적으로 정통해야 실용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최근 김 교수가 마침내 돌파구를 열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배가 항해할 때 저항을 줄이는 기술'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 기술은 2000년 초부터 이미 공학계의 화두로 떠올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죠. 저는 선체와 물 사이에 공기를 두도록 나름의 해법을 발견했습니다. 오랜 동안 이 문제가 풀리지 않은 것은 연구자들이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제의 해법이 보이지 않았을 때 다시 근본적이고 과학적인 차원으로 되돌아가 고민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 기술을 구체적으로 시연해 내기 위해 선체를 구입하는 중"이라며 "이것이 저의 세 번째 비즈니스가 될 예정인데 크게 성공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교수 생활을 하면서 비즈니스의 성공을 꿈 꿀 수 있었던 것은 김 교수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가능했을까요. 전적으로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닙니다. 이런 도전을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창업담은 한국에서는 꿈같은 일처럼 여겨질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앞서 말한 대로 김 교수는 'eletrowetting'을 기반으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창업을 하고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CJKim(김창진)=eletrowetting'로 알려질 정도로 이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공학에서는 10가지 분야를 그럭저럭 잘 하기보다 9가지를 못하더라도 한 가지 분야에서 똑 부러진 업적을 쌓아야 소위 명성과 평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 교수는 창업 당시 자체적으로 1만 달러를 투자하고 나머지 회사 운영 자금 등 수백만 달러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표인 그는 한번도 자금지원을 담당한 정부관리들과 전화 통화조차 할 필요가 없었답니다. 회사의 실무담당자만 몇 번 담당 관리와 통화를 했을 뿐입니다. 자금 신청과 수령 모두 인터넷과 홈페이지, e메일 등 공식적인 창구와 절차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이익을 내고 회사를 팔아넘긴 뒤에도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정부에서 수백만 달러씩 받아 회사를 창업할 경우 성공하면 축하할 만 일이고 실패해도 그저 그런 일일 뿐입니다. 지원 받은 돈을 날렸다고 빚더미에 나 앉을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시간을 손해 봤다는 정도이지요. 다음에 다시 창업하기 위해 정부에 자금을 신청한다 해도 그 이전의 실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정말로 그럴 일은 전혀 없습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아이디어로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창업이 목숨 걸기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사회의 신뢰와 윤리 수준의 간극을 중요한 차이점으로 지적했습니다. "닷컴 붐이 일었을 때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벤처기업들의 부침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실패의 이유는 단지 '기술(technology)' 때문이었습니다. 기술이 부족하면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망한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벤처를 했던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돈을 떼어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물건을 판 뒤 돈 받으러 다니느라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미국에서는 물건을 팔고 돈을 못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계약을 어기는 경우가 없고 그럴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벤처기업들이 대기업에 당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대기업은 힘없는 벤처나 중소기업을 노골적으로 침해했습니다. 소송을 할테면 해보라면서 짓밟아 버리는 거죠."

김 교수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야망이 없다고 나무라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누가 신용불량자가 될 것을 각오하고 창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후배 가운데 창업해 성공한 사례를 한명도 보지 못했다"며 "그래서 그들이 창업 조언을 해오면 한국에서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만류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연구를 하든, 제품을 만들든, 비즈니스를 하든 공학자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조언합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고 했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과학과 공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는 발견이 목적이고 후자는 발명이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공학자는 발견의 지점에서 발명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비즈니스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공학자들이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유행과 시류에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그걸 하면 정부가 돈을 준다는 이유로 다른 걸 연구하던 사람이 갑자기 인공지능(AI)에 매달리는 거죠. 더 중요한 이유는 근본적인 차원의 연구를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 기술과 그 기술이 도달할 목표 등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내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연구를 하게 되는 겁니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지점에서 현재 진행하는 자신의 연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명훈 동아일보 사회부 대전충청취재본부장과 김창진 UCLA 교수.<사진=지명훈 부장 제공>지명훈 동아일보 사회부 대전충청취재본부장과 김창진 UCLA 교수.<사진=지명훈 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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