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23일 천문연서 강연···'과학 소통 및 대중강연 노하우' 주제
이 관장 "대중의 변화 읽어야"···"양적 아닌 질적 대중화 지향"

이정모 신임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 23일 천문연을 찾아 '과학 소통 및 대중강연 노하우'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천문연 제공>
이정모 신임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 23일 천문연을 찾아 '과학 소통 및 대중강연 노하우'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천문연 제공>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시도는 오래됐다. 하지만 쉽게 설명하는 것만 강조하니 거기서 끝이다. 대중화를 하려다 과학의 본질이 사라진다. 왜 과학을 끌어 내리려고만 하는가? 대중을 끌어 올릴 방법은 없는가?"

스스로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Science Communicator)'라 일컫는 이정모 신임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과학 대중화를 위해 찾은 대덕에서 내뱉은 첫마디는 과학 대중화가 과학의 본질을 없애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한국천문연구원(원장 한인우)이 마련한 '과학 소통 및 대중강연 노하우'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다. 이 관장은 과학 교실에 참가한 딸의 경험을 예로들며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과학교실에 다녀온 딸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배웠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데 '유레카' 단어의 뜻은 말하면서도 부력의 원리는 알지 못했다"며 "과학을 무조건 쉽게만 설명하려니 과학 주변의 일화들만 이야기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과학 대중화를 위해 과학을 끌어 내리기만 한다. 출판사도 수식 없는 과학책을 요구한다. 대중이 이해를 못하니 수식을 빼달라고 한다"며 "과학의 본질은 빠지고 유레카만 남는다. 과학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닌 대중을 끌어 올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중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과학 대중화, 대중 과학화'를 왜 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장은 "과학의 대중화는 끊임없이 해왔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고등학생이되면 과학과 멀어진다. 대중화는 계속하지만 대상만 바뀌고 제대로 된 대중화는 되지 않는다"며 "대중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면을 봐야 한다. 과학 대중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양적 아닌 질적 대중화 지향해야" 

이 관장은 이날 과학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사진=천문연 제공>
이 관장은 이날 과학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사진=천문연 제공>
과학관련 기관에서 펼치고 있는 행사 개막식은 개선돼야 할 우선사항으로 꼽았다. 행사 진행자들이 의전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중심이 돼야 할 프로그램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는 "상당수 과학행사의 공통점이 개막식에 90% 이상의 에너지를 쓴다. 사실 프로그램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해외 과학 페스티벌을 보면 개막식 없이 진행되는 행사가 많다. 대중들은 개막식에 관심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대중에 대응해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중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프로그램을 꾸며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장은 "요즘 대중은 10년 전 대중과 다르다. 전문가 뺨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려면 프로그램도 다양화 돼야 한다"며 "휴먼라이브러리 행사를 펼친 적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5~6명의 신청자들이 주인공과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한다. 소규모로 진행하다 보니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의 과학책을 통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참가자들이 선정된 책을 모두 읽고 참가를 했다. 대중의 관심을 정확히 파악하면 대중 스스로가 관심을 보인다"고 피력했다. 

대중을 믿어야 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과학자들이 너무 친절하다. 모든 것을 다 알려주려 한다. 사실 강연 와서 모든 것을 다 알아갈 필요는 없다. 포인트는 세가지 정도면 충분하다. 10가지를 이야기하면 오히려 기억하지 못한다"며 "더 공부해야지 더 찾아봐야지 하는 도전 과제를 주어야 한다. 대중들이 과학을 더 알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과학 대중화의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성과를 위해 많은 사람에게 맞춘 프로그램이 아닌 소수의 사람이라도 변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 관장은 "천문과학의 역사, 고천문학 시리즈 강연을 진행하며 단체 접수를 받지 않았다. 단체로 오면 억지로 오는 이들이 많다. 소수의 대상자, 참석하기 불편한 시간과 장소 일수록 오히려 참여자들은 더 적극적이다. 정말로 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꼭 강연으로 해야 하나?"

천문연 연구자, 일반인 등이 이 관장의 강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사진=천문연 제공>
천문연 연구자, 일반인 등이 이 관장의 강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사진=천문연 제공>
"소행성을 주제로 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다. 주제가 어려우니 질문도 힘들어 했다. 하지만 대담을 시작하자 질문은 쏟아졌다. 참석자 모두가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배치도 중요하다."

이 관장은 강연식 진행에서 벗어난 다양한 과학행사 진행을 주문했다. 공연, 탐험 등 다양한 방법에 재미를 더하면 과학 대중화로 가는 길이 좀 더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빠와 함께 달 보기 프로그램이 진행했는데 인기가 최고였다. 달을 보는 것보다 부자가 밤에 산을 오르며 쌓은 추억에 아빠들이 특히 좋아했다"며 "한 프로그램은 강연이 끝나고 치킨집에서 애프터 시간을 가졌는데 치킨집에 가고 싶어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다(웃음)"고 말했다. 

사이언스 트럭(Science truck), 랩 어택(Lab attack), 공룡 알에서 하룻밤 자기, 소백산 천문대에서 오버라이트 등도 방법으로 제시했다. 사이언스 트럭은 과학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 직접 찾아가 과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하며, 랩 어택은 연구 공간에서 연구자의 일상을 경험해 보는 기회를 갖는 프로그램이다. 

이 관장은 "천문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며 "토크 콘서트, 공연 등 다양함을 추구해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과학관의 역할도 강조했다.
"현재 유치원, 초등학교 학생들이 과학관의 주된 관람객이다. 정작 그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엔 과학관을 오지 않는다. 과학관을 보며 나와 상관없는 곳이라 여기게 된다. 과학관이 그냥 보는 곳(Seeing)아닌 하는 곳(Doing)이 되어야 한다. 과학관은 50만명이 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10만명이 5번 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방문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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