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ETRI, KAIST서 '명사초청' 강연···'통념을 깨는 과학자들' 주제 철학적 사고 필요 강조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 석좌교수가 지난 23일 ETRI에서 '통념을 깨는 과학자들'을 주제로 발표했다.<사진=박은희 기자>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 석좌교수가 지난 23일 ETRI에서 '통념을 깨는 과학자들'을 주제로 발표했다.<사진=박은희 기자>
"자유로운 생각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옛 과학자들은 절망적인 몸부림에서 창의성을 발휘했다."

"색다른 생각을 하려면 색다르게 살아야 한다. 창의력이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원주의를 인정해야 한다."

과학철학 대가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 석좌교수가 창의성 교육 현실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 23일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마련한 '명사초청 강연'에 초대된 그는 "창의성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많다. 창의성 태교까지 생각하고, 창의성을 기르겠다고 학원을 다닌다. 창의성 없게 창의성을 기르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통념을 깨는 과학자들'을 주제로 한 이날 강의에서 장 교수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과학사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창의성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다. 창의성을 발휘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냈는지 살펴보면 된다"며 "과학사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장 교수가 창의적 인물로 손꼽은 과학사의 주인공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년).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공격하는 천동설 추종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탑의 논증'을 동력학적으로 설명하는 등 지동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관성의 개념'도 새롭게 만들어 냈다. 

그는 "탑에서 공을 떨어뜨린다. 지구가 돈다면 공은 직전이 아닌 저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천동설의 주장이었다. 지동설을 반증하는 논리다. 갈릴레이는 탑의 논증을 두 단계로 걸쳐 격파했다"며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공유하는 운동은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이는 운동이 실제의 운동이라 성급히 결론짓지 말라고 반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이는 임시적 방편에 불과했기에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관성의 원리'를 새롭게 내세워 지동설을 보호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창의성을 발휘한 옛 과학자들을 보면 진정한 창의성을 알 수 있다며 과학사의 이해가 중요함을 강조했다.<사진=ETRI 제공>
장 교수는 창의성을 발휘한 옛 과학자들을 보면 진정한 창의성을 알 수 있다며 과학사의 이해가 중요함을 강조했다.<사진=ETRI 제공>
장 교수는 갈릴레이를 통해 진정한 창의성을 논했다. 그는 "보통 창의성하면 제약 없이 자유로운 생각에서 창의성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갈릴레이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며 "닥친 과제에서 이를 해결하려는 절망적인 몸부림에서 창의성이 발휘됐다. 과학사를 길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갈릴레이처럼 아는 사실과도 일부러 다른 이론적 생각을 해보라고 권한다. 또 잘 알려진 모델을 엉뚱한 곳에 적용하거나, 서로 상충되는 아이디어를 동시에 적용하거나, 모순이라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장 교수는 "빛의 파동설이 처음 나왔을 때 다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파동은 바다에서 물결을 보고 한 개념인데 갑자기 빛도 파동이라고 하는 것은 은유적인 사고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얼마나 창의적이었는지는 아무도 생각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에도 '다원주의' 관점이 필요함도 주문했다. 다원주의는 한 분야 내에서도 여러 가지를 발달시키고 유지하는 것. 장 교수는 "창의성은 훈련을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색다른 생각을 하려면 색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내비게이션을 예로 들었다. 인공위성이 원자시계를 돌려 보내주는 GPS 신호를 받는 내비게이션은 위성을 조종하는 원리는 뉴턴의 역학, 원자시계를 작동하는 것은 양자역학, 그 원자시계가 지구중력장에서 받는 간섭은 상대성이론이 필요하다. 

장 교수는 "여러 가지를 하면 집중이 되지 않아 능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시적으로 효율이 저하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능률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과학,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올바른 지식"

장하석 교수는 23일 오후 KAIST 대강당에서 '과학철학과 과학교육’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사진=백승민 기자>
장하석 교수는 23일 오후 KAIST 대강당에서 '과학철학과 과학교육’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사진=백승민 기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과학에도 철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장하석 교수는 이날 오후 KAIST 대강당에서 '과학철학과 과학교육'이란 주제로 강연을 이어나갔다. 강연에서 장 교수는 한때 기초과학자를 꿈꿨지만 과학 철학자가 된 자신을 '실패한 과학자'라고 소개하며 실패한 과학자가 바라는 올바른 과학교육에 대해 소개했다.

장 교수는 "과학도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호기심과 질문이 기본인데 대부분의 과학교육은 정답이 이미 나와 있는 실험과 이론적인 문제풀기가 전부"라며 "우리가 배우는 과학의 공식이나 기초원리가 어디서 나왔으며 그것을 왜 믿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인 과학지식인 '정상과학'만 배워서는 아주 특출한 사람이 아닐 경우 깊은 창의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창의성이 솟아나는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려면 각자 서로 다른 다양한 경험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장 교수는 이어 ▲과학교육은 정상과학으로 밖에 할 수없을까? ▲과학도가 아닌 학생은 왜 정상과학 교육을 받아야 하나? ▲지나친 정상과학 교육은 창의성을 말살하지 않을까? 등의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장 교수는 "정상과학은 고정적인 패러다임이란 상자 안에 학습자를 억지로 넣으려는 노력"이라며 "정상과학은 과학도가 아닌 사람에게는 더 이상 강요할 필요가 없다. 일반인에게 과학을 사랑할 수 있는 동기조차도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지식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탐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깊이 배워야 한다.

'물은 1기압일 때 항상 100도에서 끓는가?', '건전지는 어떻게 발명 됐으며 어떻게 전기가 발생되는가?' 등의 의문을 가지고 과거 역사 속 과학자들이 탐구했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과학과 철학을 융합하는 방법이다.

장 교수는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이란 없고 지식을 가장 잘 획득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도 없다"며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관점과 필요에 따라 질문 자체도 달라지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대답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끝으로 "과학은 유일무이한 진리를 추구하고 또 그러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멋진 학문이다"며 "같은 분야 내에서도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시에 여러 방향의 지식을 추구함에 따라 인간의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하고 자연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연 후 가진 장 교수 인터뷰에서는 기후변화 등 찬반 논쟁, 토론 등이 필요한 주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이 없는 한국 과학계에 대한 사견을 물었다. 그는 홍성욱 서울대 교수의 저서를 언급하며 "한국은 서양 과학을 수입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 저변부터 무언가를 할지 토론할 쟁점을 만들지 못했다"며 "과학문화분야도 톱다운식으로 짧은 시간에 이뤄지다 보니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