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재단, '기다림의 미학' 주제 노벨과학상 정책 토론회 개최
김선영 서울대 교수 "과학자 스스로 과학적 문화 만들자" 강조

한국연구재단은 기다림의 미학을 주제로 노벨과학상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 사진은 패널 토론 모습. 왼쪽부터 박배호 건국대 교수, 현택환 서울대 교수,이혜연 연세대 교수, 김상선 한양대 교수(좌장), 김선영 서울대 교수, 박문정 포항공대 교수, 임경순 포항공대 과학문화센터장, 이광복 연구재단 본부장(서울대 교수).<사진=길애경 기자>
한국연구재단은 기다림의 미학을 주제로 노벨과학상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 사진은 패널 토론 모습. 왼쪽부터 박배호 건국대 교수, 현택환 서울대 교수,이혜연 연세대 교수, 김상선 한양대 교수(좌장), 김선영 서울대 교수, 박문정 포항공대 교수, 임경순 포항공대 과학문화센터장, 이광복 연구재단 본부장(서울대 교수).<사진=길애경 기자>
"노벨상 수상자들의 성과를 분석해보면 기초·응용·산업 연구분야와는 상관없다. 오히려 기초연구로 시작해 산업분야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성과들이다. 또 연구 패러다임을 바꾸고 기존 지식의 빠진 블럭을 채우는 성과가 아니라 지식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성과들이다. 한국의 과학계가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분석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성과 특성이다.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조무제)은 27일 오후 2시 대전청사 대강당에서 연구원과 정부 관료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다림의 미학'을 주제로 노벨과학상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는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주제발표와 김상선 한양대 과기정책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박배호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이혜연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임경순 포항공대 과학문화연구센터장, 박문정 포항공대 화학과 교수, 이광복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이름 순서없음)의 패널토론으로 진행됐다.

김선영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을 주제로 노벨상 수상분야와 업적, 수상자들의 특징을 분석해 소개했다.

노벨과학상을 받은 연구의 특성은 무엇일까. 먼저 한 분야의 연구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연구결과다. 또 기초·응용·산업 분야에 관계없이 그동안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며 지식을 확장한 성과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의 발견 경위는 아이디어를 실제 실험을 통해 증명한 것으로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고 단순하다.

김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3~10명 내외의 작은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가 대부분이다. 또 단기적으로는 기초과학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의 발판을 마련한 대들보 역할을 한 연구성과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노벨상 수상을 위해 기초과학에 지원을 많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과학계의 편견"이라며 "노벨상의 상당수는 실용적이고 응용적이다. 노벨화학상은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하고 연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노벨상을 받은 사례를 패러다임 변화, 지식외연확대, 모욕과 인내, 우연한 만남, 열정과 운 등으로 구분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유전자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연구자는 유전자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발표해 처음에는 인정을 못받았다. 40년 후에야 노벨상을 받았다"면서 "이외에도 DNA를 복사할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디테일하게 풀고 순간의 아이디어를 증명한 중합효소연쇄반응(PCR) 등으로 지식의 외연을 확대한 사례도 있지만 이들 중에는 변변한 논문도 없는 연구자도 있다. 한국의 논문 중심 평가정책에 시사점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퇴행성 신경질환의 해석 토대를 마련한 스탠리 프루시너라는 연구자는 그의 연구가 논란이 많다고 모두들 지적했지만 결국 인정 받았다"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20년 30년이 지나서야 성과를 인정받았다"며 지속적인 연구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김선영 교수는 지금의 과기정책과 문화로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가 꼽은 한국 과학계의 문제는 ▲스타과학자 선호 ▲과학계의 반목과 갈등 ▲과학계의 사분오열 ▲논문 중심의 평가로 시니어 연구자 지원 집중 ▲젊은 연구자 위한 지원 인프라 부족 ▲기초과학 중심의 지원 ▲관료의 과학계 미세관리 ▲과도한 감사로 인한 인력 비용 손실 등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스타과학자를 선호하는데 위험한 발상이다. 과학은 축적된 지식의 산물로 어느날 갑자기 나오는게 아니다"라며 "과학계에서는 사회와 세계 과학계를 위한 연구를 하는지, 젊은 연구자들이 창의적으로 연구를 시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지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과학계의 반목과 갈등, 과제 선정때마다 투서와 음해도 문제"라며 "과학자 스스로가 과학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기초과학 중심의 지원과 정부 정책도 문제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우리는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기초과학의 정의와 범위부터 확실히 정해야 한다"며 "기초과학의 범위를 제대로 구분하고 이를 인정하며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하는데 아직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부처간 협업이 안되면서 조급한 성과 요구와 잦은 보직 이동으로 과학기술 정책이 제대로 수립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한 전략으로 ▲개인보다 인프라 우선 투자 ▲선진국 연구소 벤치마킹하기 ▲젊은 연구자 중심의 집중 투자 ▲리더십 ▲정부의 자세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우리는 젊은 연구자인 조교수를 뽑고 지원비 1억원 정도 덜렁 주고 만다"면서 "이들이 인프라 확보에 주력하는라 연구를 하지 못한다. 각 대학에 동물실험실이 있는 곳도 거의 없다. 있어도 운영비를 주지 않아 활용이 안된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선진 연구기관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실험실(LMC)을 벤치마킹 할 것을 제안했다. LMC는 1962년 이래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LMC 연구소의 소장은 52년 역사동안 5명이다. 평균 재임 기간이 10년 이상이다. 연구원 채용 기준도 어느 학술지에 논문을 몇편 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중요하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가를 보며 예산도 5년 단위로 지원한다.

김 교수는 젊은 과학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발견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나이는 25세부터 40세였다. 이들은 학위후 포닥을 거치며 독립연구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이들이 연구할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선진국의 유수 대학과 연구소의 핵심 인력은 포닥이다. 국가 예산을 젊은 과학자에게 더 많이 배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과학계 리더십 문제에 대해 김 교수는 "현재 출연연의 경우 기관장 임기가 3년이다. 또 연구실장 소장 학부장 총장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들의 인사권과 예산 배분권이 정부 공무원에 있다"면서 "이처럼 전근대적인 연공서열 문화에서 젊은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노벨상을 받을만한 업적이 나오는 환경이 조성되려면 리더를 제대로 뽑고 그에게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며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선영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사례 중 직접 자신이 박테리아를 먹으면서 연구한 연구자를 소개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김선영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사례 중 직접 자신이 박테리아를 먹으면서 연구한 연구자를 소개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연구토양부터 만들어야"

패널 토론에서도 젊은 연구자 지원, 평가제도 혁신 등 다양안 제안이 나왔다.

박배호 교수는 젊은 연구자 육성을 주장했다. 그는 "건강한 연구생태계를 위해서는 사람이 중요한데 우리는 대학원생, 포닥, 신진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없고 진로도 불안하다"면서 "해외 유명 과학자를 유치하는데 예산을 쓰기보다는 젊은 연구자를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택환 교수는 평가방식의 문제를 지적하며 신임 교수에게 스타트업 펀드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현 교수는 "국내는 대학 교수 임용시에도 논문의 퀄리티보다는 논문 건수를 본다. 10건이 안되면 임용에 지원할 수도 없다"면서 "미국은 신임 조교수에게 10~20억원의 지원된다. 이에 비해 한국 신임 조교수는 1억원 정도를 받는데 시작부터 탱크와 구식소총이 싸우는 꼴"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 나노입자를 15년간 연구하는건 운이 좋은 것이다. 젊은 연구자들이 성공하려면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교수들의 시드머니와 맞물려 연구가 지속될때 노벨상 수상에 가까워질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혜연 교수는 노벨상 수상을 위한 토양 마련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그는 "올림픽은 잘하는 사람에게 집중투자하면 가능하지만 과학은 토양을 마련해 주고 연구자가 즐겁게 오래 연구할 수 있고, 질문이 가능하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 등 연구에 만족할 수 있어야 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다"면서 "의료계는 미국의 정책 시스템이 바꾸면서 의사들이 미국진출이 좌절됐지만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 임상 분야에서는 성공했다. 과학계도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우리나라 의학계는 돈되는 임상연구에 집중하고 기초의학에는 투자하지 않아 임상연구의 기반인 기초의학은 바닥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생리의학분야 노벨상을 위해서는 의대생 중 75%를 연구에 투자하겠다는 학생들에게 3년간 3억5000달러를 지원하는 미국의 제도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젊은 과학자 박문정 교수는 젊은 연구자의 돌아이 기질과 열정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스스로 똘끼와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는데 연구열정이 과제 수주 등 다른데 쏟아지면서 돌아이 기질이 마모되고 무던해졌다"면서 "젊은 과학자들이 뭔가 사고를 칠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30대 초반의 조교수들이 인프라 인력 걱정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플로어 의견에서는 노벨상의 특성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KAIST 석박사 통합과정생은 "연구가 좋아 대학원에 온 학생들이 기꺼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무제 이사장은 이날 인사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바심을 가지고 재촉하면 노벨상은 나오지 않는다"면서 "장기적인 정책으로 창의적인 연구환경을 만들어주면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나올것이다. 기다림의 미학에 모든게 담겨있다. 창의적인 풀뿌리 기초연구자를 적극 발굴, 지원해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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