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의 빅뱅, 실리콘 밸리 60년
지은이: 주동혁, 출판사: 지성사

지난 60년 동안 반도체, PC와 인터넷 시대를 거쳐
생명과학, 신재료, 항공우주 개발, 첨단 자동차,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첨단기술을 이끄는
실리콘 밸리 과학기술자들의 열정과 도전을 만나다.

◆ 서부 개척시대의 개척 정신과 도전 정신을 계승한 실리콘 밸리의 위대한 탄생

지은이: 주동혁, 출판사: 지성사
지은이: 주동혁, 출판사: 지성사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와 샌프란시스코 반도라는 역사적·지형적 특징이 어떻게 실리콘 밸리의 태동에 기여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살펴보기에 앞서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된 골드러시의 서부 개척시대를 살펴보는 것은 어찌 보면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서부의 개척 정신과 도전 정신은 이후 실리콘 밸리의 과학기술자와 기업가 정신으로 계승되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반도 남단의 샌타클래라(본문에는 '산타클라라'로 표기) 카운티에서 실리콘 밸리가 태동하게 된 것은 1891년에 설립된 스탠포드 대학교 프레더릭 터먼 교수(1924년 부임)가 산학협동을 바탕으로 교수는 물론, 대학원생과 졸업생들에게 지역산업의 발전을 위해 창업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 그리고 기존의 진공관을 대체할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더불어 이를 상업화하기 위해 적당한 지역을 물색하던 윌리엄 쇼클리가 터먼 교수의 권유로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마운틴뷰에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한 것이 그 기반이 되었다.
 
이후 '실리콘 밸리의 대부'라는 칭호를 얻은 터먼 교수는 스탠포드 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생인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를 자신의 연구를 돕게 하면서 그 성과물을 상업화할 수 있도록 팰로앨토(본문에는 '팔로알토'로 표기)에 휼렛패커드(HP) 사를 창업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1973년 우리 정부가 한국과학원(현재 한국과학기술원KIST)을 설립할 때 자문해주기도 했다.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한 쇼클리는 비록 사업에서는 실패했으나 인재 발굴에서 큰 역할을 함으로써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는다. 유달리 자존심과 경쟁심이 강했던 쇼클리의 관리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사직한 노이스와 무어를 비롯한 여덟 명의 인재들이 뉴욕의 사업가 셔먼 페어차일드의 투자로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서 겨우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를 차렸다.

이후 집적회로를 개발해 상업적인 실용화에 성공을 거둔 페어차일드는 영업 이익을 재투자하지 않은 모회사와의 갈등으로 핵심 인력들이 사직하기에 이른다. 그 가운데 노이스와 무어는 인텔을 창업했고, 샌더스를 비롯한 여덟 명이 AMD를 설립함에 따라 본격적인 실리콘 밸리의 탄생을 알렸다.

1970년 이후 페어칠드런에서 파생된 회사들은 손자 격이라는 뜻으로 페어그랜드칠드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페어칠드런과 페어그랜드칠드런을 합쳐 모두 1백여 개의 회사가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생겨났으니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실리콘 밸리의 원조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격변기의 실리콘 밸리, 실리콘 밸리에는 실리콘이 있다? 없다!

끊임없는 반도체의 개발과 발달로 세계의 반도체 시장을 주도한 실리콘 밸리는 PC가 등장함에 따라 활기를 띠는 듯했지만, 국가 지원을 받은 일본 기업들의 적극적이고 무차별한 반도체 공습을 견디지 못해 인텔을 비롯해 반도체 산업을 이끌었던 여러 기업들이 반도체 산업에서 물러서기 시작했다.

반도체 칩에 사용하던 실리콘을 기반으로 성장한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이 칩 생산시설, 다시 말해 웨이퍼 팹wafer fab이라는 반도체 생산 중단하고 칩 설계를 중심으로 사업을 변경하면서 팹리스fabless 업체로 바뀌게 되었다. 실리콘 밸리에 실리콘이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스의 개발을 둘러싼 인텔과 AMD의 30년에 걸친 법정 분쟁과, 반도체 칩 설계와 생산이라는 과정에서 파생된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 업체가 새로이 생겨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한쪽에서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던 PC가 일반인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눈길을 돌렸다.

1977년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로 시작한 래리 엘리슨이 1982년 오라클을 설립했고, 웹 브라우저 모자익을 개발한 앤드리슨과 연쇄 창업가로 명성이 자자한 클라크가 손을 잡고 넷스케이프를 창업하면서 실리콘 밸리에는 인터넷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 인터넷 기술혁명으로 찾아온 닷컴 붐, 그리고 침체기

1957년부터 40여 년 동안 반도체 기술혁명과 컴퓨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술 인재들과 기업 경영자들 그리고 벤처 자금의 집결지로 자리 잡은 실리콘 밸리는 인터넷 산업에 필요한 기반 여건을 이미 갖춘 셈이었다. 넷스케이프라는 불씨에서 수많은 인터넷 관련 회사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전기공학과 박사 과정에 있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는 인터넷 검색에서 자신들이 흥미를 가진 웹 사이트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목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호응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창업하기로 결정하고 1995년 인터넷 검색 엔진의 원조인 야후!를 서니베일에 설립했다.

이듬해 피에르 오미디아가 인터넷 전자 상거래 사이트 이베이를 설립했고, 1998년에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멘로 파크에 구글 창업한 뒤로도 수많은 인터넷 관련 회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봄, 닷컴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수많은 인터넷 관련 회사들이 소멸해 갔다.

1980년대에 일본의 반도체 덤핑으로 벌어진 반도체 산업의 위기에 이어 실리콘 밸리는 두 번째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수많은 창업회사가 인수 합병되거나 문을 닫았고 이에 많은 기술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언론에서는 실리콘 밸리가 이 회사들의 잔해가 널린 공동묘지로 변해간다고 표현했다.

닷컴 거품이 꺼진 후 실리콘 밸리의 경기 침체는 약 4년간 계속되었다. 실리콘 밸리에서 감소한 일자리 수는 2001년에는 12만 7천 개였고 2002년부터 감소 추세가 둔해지기는 했으나 2004년까지 일자리는 계속 감소했다. 직장을 잃은 기술자 등 상당수의 실리콘 밸리 주민들이 생활비가 비싼 실리콘 밸리를 떠나거나 아예 캘리포니아를 떠나 다른 주로 이사 갔고 이 때문에 실리콘 밸리는 인구까지 줄어들었다.

미국의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실리콘 밸리의 부동산 경기도 이 기간 동안에 침체기를 겪었다.

◆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첨단기술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굳히다

2000년 초에 일어난 닷컴 거품의 붕괴와 2008년부터 시작된 경제 대불황을 거친 후 실리콘 밸리는 한결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실리콘 밸리는 다양한 분야의 기술 개발을 이끎과 동시에, 모든 첨단기술은 실리콘 밸리를 거쳐 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첨단기술 중심지로서의 입지도 더욱 강해졌다.

그 중심에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 X(2002년)와 테슬라 모터스(2003년)가 있다. 특히 머스크는 미국의 NASA와 계약을 맺고 스페이스 X에서 개발한 팰컨Falcon 9 로켓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드래건 캡슐에 과학자들을 싣고 무사히 국제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그날까지 성공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닷컴 붐이 꺼진 뒤 열병을 한바탕 치른 뒤에도 살아남은 야후, 구글, 이베이 등과 같은 실리콘 밸리의 회사들은 인터넷 시대의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구글과의 경쟁에서 뒤지면서 경영에서 위기를 겪던 야후가 끝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2016년 7월 25일, 미국 최대 통신회사 버라이즌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아무튼 실리콘 밸리의 산업은 반도체, PC, 휴대용 전자기기 등 하드웨어 산업에서 인터넷, 소프트웨어, 정보 서비스, 테슬라를 중심으로 한 첨단 자동차 기술, 인공지능과 로봇, 가상현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서 구글,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등 실리콘 밸리의 대형 회사들과 스타트업 회사들이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리콘 밸리는 청정에너지, 의료기기의 생명공학, 신재료, 항공우주 개발 등의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실리콘 밸리가 2010년대에 다시 전성기를 누리는 기반이 되었다.

앞으로의 실리콘 밸리에 대해 필자는 "반도체, PC와 인터넷 시대를 거치는 동안 실리콘 밸리는 반도체라는 한 가지 기술에 집중했고, 그다음으로 PC에 집중했으며 이어서 인터넷 기술에 집중했다. 말하자면 과거의 실리콘 밸리는 '모두는 하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실리콘 밸리라는 하나의 첨단기술 단지는 모든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원 포 올one for all'인 셈이다. 논리와 표현에 비약이 있을지 모르나 '올 포 원all for one'이 실리콘 밸리의 과거였다면, 이제 '원 포 올'이 실리콘 밸리 미래의 위상"이라고 강조한다.

◆ 실리콘 밸리를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끄는 과학기술자들을 만나다

HP의 휼렛과 패커드, 쇼클리, 노이스, 무어, 클라크, 잡스, 머스크에서 저커버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책에서 자신의 꿈을 실리콘 밸리에서 실현한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을 만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기술자들의 대다수는 스탠포드 대학(원) 출신들이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의 대학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위상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산학협동이라는 목표 아래 우수한 인력을 공급하고 지역사회 발전은 물론, 미국과 세계의 첨단기술을 이끈 업적을 이룬 것은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인적 자원이 흐트러지지 않게 튼실하게 뒷받침해줄 물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 책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11장에서는 하이테크 너드nerd들의 기부활동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너드란 착실하고 공부는 잘하지만 놀 줄 모르고 융통성 없는 학생을 가리키는 말로, 대개 이공계 학생을 너드라고 한다.

따라서 실리콘 밸리를 '너드들의 천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너드들의 기부활동 가운데 비록 실리콘 밸리와는 상관없지만, 실리콘 밸리의 기업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절대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기부활동에 관한 기사는 이미 언론에서 충분히 접했을 터이지만, 실리콘 밸리의 너드 가운데 눈여겨볼 인물은 바로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이다.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에 오른 저커버그는 그 누구보다도 기부활동에 적극적이다. 기업(가)의 기부문화가 우리와는 천양지차인 그들의 태도와 방식이 한없이 부러운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첨단기술 개발에는 모험을 선택하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여기서 모험이란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를 거친 계산된 위험을 뜻한다. 준비를 거친 계산된 위험이므로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없는 실패자로 낙인찍지는 않는다"고 저자가 표현한 이러한 분위기가 실리콘 밸리만이 가지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이 책의 출간으로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 확장과 더불어, 불안한 우리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고민하고 계획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기업인 스타트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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