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新 아이디어에 묻지마 연구비 지원···'통제' 단어 안쓴다"
"최상 연구자 30명 목표···당장 이익보다 미래기술 투자"

국양 삼성재단 이사장은 노벨상 인재 발굴을 위해 '독창적인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재단은 깊이 연구되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집중 지원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국양 삼성재단 이사장은 노벨상 인재 발굴을 위해 '독창적인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재단은 깊이 연구되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집중 지원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열 수 있는 '아이디어' 하나만 보고 과제를 선정합니다. 혈연·지연·학연 등의 각종 '연'을 완벽히 차단했죠. 엄격한 과제 공모에 선정된다면, 그 이후에는 자유로운 연구환경과 연구비를 지원합니다. 우리 재단에서 '통제'라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연구에 실패해도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지난 2013년 8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민간 차원에서 기초과학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규모 장기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삼성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하 삼성재단·이사장 국양)을 설립하고 2022년까지 총 1조500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삼성재단 설립 3년이 지난 현재 총 92건의 과제를 지원하고 있다. 소재·ICT를 포함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에서 지금까지 모두 260여 건의 과제를 지원했다. 

삼성재단 선봉에서 대규모 장기프로젝트를 이끄는 국양 이사장은 2014년 6월부터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국 이사장은 지난 2012년 12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 국내 석학 5명과 함께 삼성재단의 기본 운영원칙과 철학을 만든 인물이다.

삼성재단의 과제 선정 기준은 오롯이 '아이디어'다. 그동안 국내 연구지원은 연구자 성과 중심 지원이었다. 하지만 삼성재단은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연구자에 주목하고 있다.

엄격한 국내 심사와 해외 심사를 거쳐 과제가 선정되면 추후 정량적 평가는 하지 않는다. 연구자에게 형식적인 보고서도 요청하지 않는다. 단지 '모니터링'으로 정성적 평가만 이뤄진다. 연구에 실패해도 연구자에게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국양 이사장은 "민간 기업 차원에서 이 정도 규모의 기초과학 지원 사업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며 "세계적으로 깊이 연구되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피력했다.

◆ "과제 선정에 각종 연줄 '싹뚝'···세상 바꿀 '연구' 주목"

"새로운 것을 안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새로운 연구'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남의 연구'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연구자들이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습니다."

삼성재단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필드를 만들고 있다. 국 이사장은 '새로운 연구'는 곧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에서 비롯된다고 정의한다.  

이런 이유로 삼성재단은 과제선정 과정에서 학연·지연·혈연 등 각종 '연'을 완벽히 배제하고 세상 바꿀 '아이디어'에만 집중한다.

과제 선정부터 철저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유지한다. 과제 선정은 지원자 이름이 가려진 2장짜리 연구계획서를 바탕으로 200여 명의 심사위원이 1박 2일 동안 난상토론을 벌이며 시작된다.

삼성재단은 국내외 석학과 전문가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하고 있다. 연구 독창성과 탁월성 등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심사해 과제를 선정한다.<사진=삼성재단 홈페이지>
삼성재단은 국내외 석학과 전문가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하고 있다. 연구 독창성과 탁월성 등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심사해 과제를 선정한다.<사진=삼성재단 홈페이지>
최종 3단계 평가과정을 거친다. 1차로 걸러진 지원자들은 국내·해외 석학들로부터 2차  발표심사를 받는다. 3차 심사는 미국의 심사위원들에게 서면 발표와 녹화 비디오 자료를 통해 연구계획을 심사받는다.

국 이사장은 "최종 3단계 과정을 거친 아이디어는 미국 대학에서 저명하게 활동할 수 있는 수준의 아이디어"라며 "한국 사회에 팽배하게 자리 잡은 각종 연줄 풍습을 끊고,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만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연구과제 심사에 공을 많이 들인다. 매년 말 국내외 전문 평가위원을 선정하기 위해 공정성과 수월성을 중점으로 고려한다"며 "네이처에 수 편의 논문이 실린 연구자라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면 심사 과정에서 제외된다"고 강조했다.

과제 선정 연구자들에게는 성과 압박을 완전하게 없앴다. 정량적 연구성과 평가도 과감히 버렸다. 논문과 특허 건수도 따지지 않는다. 모니터링을 통해 정성적 평가만 진행된다.

국 이사장은 현재 과제 성공률이 10% 미만 수준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2020년까지 과제 성공률을 25%로 끌어올리고 싶다"며 "3~5년의 삼성재단 연구비 지원을 마친 성공 과제는 이후에도 외부펀드, 모태펀드, 회사설립 등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 직원역량 최고 전문가 수준···과제 연구자와 소통으로 '모니터링 평가'"

"연구자들의 과제를 관리하는 삼성재단 직원들의 역량이 다른 재단 직원들보다 우수합니다. 어떠한 과제라도 연구자 수준으로 꿰뚫고 있죠. 그만큼 진행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연구자와 커뮤니케이션하며 모니터링 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 이사장이 삼성재단 연구 과제 관리자들의 우수한 역량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국 이사장이 삼성재단 연구 과제 관리자들의 우수한 역량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국 이사장은 삼성재단이 정성적 모니터링이 가능한 비결을 내부 직원의 우수한 역량으로 꼽았다.

삼성재단의 연구과제 관리자(PD)는 총 10명 내외다. 한 명의 연구과제 관리자가 약 15개의 과제를 관리하고 있다.

국 이사장은 "직원 한 명 한 명이 각 과제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며 "연구자와 과제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으므로 모니터링 평가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학을 전공한 연구과제 관리자가 재료공학, IT, 물리,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활동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며 "과제의 진행 상황, 연구자 심리, 정성적 성과 등을 모두 꿰뚫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재단에서는 '통제'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연구자에게 보여주기식 성과 행정 자료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국 이사장은 과제 참여 연구자에게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그는 "연구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연구 수행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연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문화가 형성돼야 연구자들은 힘을 얻을 것"이라며 "김연아 선수나 조성진 피아니스트처럼 끝까지 밀고 나가 1등 하는 사례들이 나타난다면 차세대들에게 그 자신감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최상의 연구자 30명 목표···'딜리션 테스트'로 노벨상 가까이"

"연구과제가 종료되면 각 연구자에게 '딜리션 테스트'를 활용할 예정입니다. 연구자의 업적을 가상으로 지워봤을 때 그 산업계가 무너진다면, 그 연구자는 최상의 연구자입니다."

국 이사장은 "노벨상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딜리션테스트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사진=박성민 기자>
국 이사장은 "노벨상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딜리션테스트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사진=박성민 기자>
삼성재단은 '딜리션 테스트'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삼성재단 과제로 산업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해 최상의 연구자를 가려내겠다는 목적이다.

국 이사장은 10년 동안 300여 개의 딜리션테스트를 계획 중이다. 그중 10% 수준인 30명 정도가 딜리션 테스트에 성공한다면, 2명 정도는 아주 먼 훗날이라도 노벨상을 받을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그는 "지원시스템과 연구자들의 몰입도는 충분하다. 이제는 시간문제다"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 30개가 나온다면 그중 적어도 2명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제에 선발된 연구자에게 삼성재단이 주는 대우도 남다르다. 과제 선정 연구자들에게 뫼비우스 띠 모양의 기념패를 증정한다. 그들에게 '혹독한 삼성재단 과제 선정자'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국 이사장은 "국내외 석학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큰 자부심이 될 것"이라며 "연구비 액수를 떠나서 자부심으로 만드는 '연구자 열정'이 삼성재단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삼성재단 과제에 선발된 연구자에게 증정하는 기념패 모습.<사진=삼성재단 제공>
삼성재단 과제에 선발된 연구자에게 증정하는 기념패 모습.<사진=삼성재단 제공>

국 이사장은 지난 1897년 전자를 발견한 영국 실험물리학자 조셉 존 톰슨의 일대기를 설명했다. 그는 "톰슨의 제자 7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30명 정도가 로얄아카데미 왕립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며 "톰슨의 말 한마디가 비상했을 것이다. 제자들이 자유롭게 과학을 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국 이사장은 "삼성재단이나 서경배 과학재단 등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재단들이 끊임없이 탄생해야 한다"며 "톰슨이 주는 교훈처럼 국내 연구자들에게 마음껏 과학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 이사장은 "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기초연구"라며 "10~20년 뒤를 바라보며 연구자가 성과를 못냈다고 비난하지 말고 끝까지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와 사회 모두가 "연구자들을 믿어야 한다"고 과학계에 대한 국가사회적 신뢰를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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