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③]"과학기술 개념부터 제대로…궁금증 풀면 노벨상은 덤"
"교육부터 달리하고 STEM 교육으로 국민적 인식개선 필요"

노벨상 이미지.<사진=대덕넷 자료>
노벨상 이미지.<사진=대덕넷 자료>
해외 한인 과학기술인들은 한국의 노벨과학상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과학선진국 연구기관과 기업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 과학자들에게 '한국이 노벨과학상을 타려면'이라는 주제로 애정어린 조언과 충고를 들어봤다. 기명과 무기명(본인 요청)으로 싣는다. 한국 과학을 위해 KOSEN(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 해외 과학자들이 다수 참여해 고견을 전했다.<편집자 주>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머리가 월등하게 좋거나 똑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근대화가 시작된지 150년이 지났고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장인에 대한 충성도, 만족도 등의 분위기를 조성해 왔고요. 일본문화 자체에 프로에 대한 존중심이 있고 사회의 인정도 높습니다."(조희용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소장)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릅니다. 기술은 좀 더 윤택하게 편리하게가 목적이라면 과학은 궁금하다, 알고싶다, 가능할까에서 시작돼죠. 당장 실생활에 필요하지도 않고요. 기술에서 본 과학은 정말 쓰레기같은 일에 돈낭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요. 하지만 쓸모 없던 내용들이 10년, 20년 후 기술의 기반이 되며 과학적 발견을 한 핵심 연구자에게 노벨상이 돌아가게 됩니다. 한국이 지금처럼 과학과 기술을 구분하지 못하고 빨리빨리 정책으로 가면 노벨상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토대부터 제대로 다져야죠."(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원)

"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많은 수상자들이 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얻은 결과가 인류와 과학계에 기여하게 되면서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몇해 전 기초연구를 위해 IBS가 설립돼 기대를 하고 있는데 목적이 기초연구가 아니라 노벨상 수상이라면 머지않아 IBS 지원도 그만둘거라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겠죠."(거대과학 연구 재불 과학자)

노벨과학상 '제로(zero)' 국가, 대한민국에 보내는 해외 한인 과학자들의 우려와 애정어린 조언이다.

해외 한인 과학자들은 노벨과학상이 일본에는 수두룩하고, 한국에는 없는 결과에 대해 자승자박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그동안 성과 중심의 연구정책과 평가, 돈되는 연구만 쫓는 연구행태, 과학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 등 총체적 문제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야 노벨과학상에 근접하며, 노벨과학상 제로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외 한인 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노벨상이 목표가 되면 안된다"고 강조하며 "노벨상은 한 분야를 지속해 연구하며 얻는 결과들이 인류와 과학분야에 기여하고 받는 상으로 조급해하면 절대 안된다. 우선 토양과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 신진연구자 포닥들이 목소리 내고 연구 정년 없어야

"노벨상은 연구자들이 20~30대에 연구해놓은 결과가 20년, 30년 후 상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젊은 신진연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연구할 수 있는 연구환경이 만들어져야겠지요."

"한국은 연구인력을 조기에 정년퇴직 시키며 성과들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막대한 인적 손실이고 젊은 세대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열심히 일하고 훌륭한 연구성과를 내는 연구자는 연령에 상관없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해외 한인 과학자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한국의 연구현실이다. 연구가 과제중심으로 되면서 과제 수주를 제대로 못하는 연구자는 연구활동마저 제대로 할 수 없다. 또 연구하며 그동안 펼쳐온 성과들이 무르익을때면 현장을 떠나야 하는 61세 정년제(정부출연연구기관)로 성과들이 더이상 업그레이드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일과 미국 등에서 포닥을 하고 있는 한인 과학자는 "한국의 연구환경은 숨이 막힌다. 교수님 선배들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것은 생각으로만 그친다"면서 "과제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젊은 연구자들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일갈했다.

프랑스 기업에서 연구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과학자는 "중견 연구자의 경험과 신진연구자의 아이디어가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유럽의 경우 보직이 더 높을수록 더 많이 일하며 젊은 연구자들이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신진연구자들이 기를 펴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에서 7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성권 IBM 연구원은 정년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기업 연구소도 연구 열정이 있고 성과를 내면 연령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는 문화다. 80대 연구자들도 있다. 연구활동이 활발한 연구자를 정년이라는 이유로 내보내는 것은 막대한 인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년문제는 결국 젊은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로 이어진다.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국가적, 사회적 정책과 풍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학 3학년부터 연구 주제 정해 연구 참여

"일본과 한국의 이공계 대학생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한국 대학생들이 취업에 목숨을 거는 동안 일본의 대학생들은 3학년때부터 연구주제를 정해 연구에 참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로 진로를 정해 석사, 박사과정까지 밟게 되죠."

2년동안 일본 대학생들과 연구활동을 펼쳤던 김채형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은 교육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들었다.

일본과 한국의 고등학교는 입시위주의 수업으로 비슷한 교육제도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크게 달라진다. 일본의 이공계 대학생은 수학과 물리 기초과학분야 이론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수업도 주입식이 아닌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화다. 학생들이 잘못된 주장을 해도 질타는 없다. 학생들이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게 교수의 역할이다. 그런 문화가 이뤄지며 창의적인 연구성과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김채형 연구원은 "일본 대학생은 학점에 연연하기보다 교수와 자유롭게 토론하며 자신의 진로를 찾아갈 수 있다"면서 "특히 이공계 기초연구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학교 3학년때부터 이미 연구분야를 정하고 연구에 들어간다. 한국의 석사 1, 2년차에 하는 과정을 이미 대학생부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이화학연구소 한 과학자는 "일본의 경우 연구 인프라가 좋아 해외로 나가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해외연구자들을 일본으로 불러 자국의 학생들과 연구하도록 한다. 그러면서 협력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진다"면서 "일본도 경기가 어려워지며 지원을 줄이는게 사실이지만 일본은 이미 100년 넘게 기초과학에 투자를 해왔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재미 원로 과학자는 해외에서 연구하고 있는 한국계 과학자 발굴과 국민적 과학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 오바마 정부는 스템(STEM: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교육을 통해 과학 교육을 강화하고 인재를 육성하며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있다"면서 "한국도 노벨상 시기에만 반짝하는 관심이 아니라 평소 교육을 통해 과학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미국과 전세계의 유수 대학과 연구소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한국계 연구자들도 많다. 그들을 발굴해 지원하며 협력연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낸다면 한국의 노벨상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 과학과 기술 개념부터 정확히…'궁금하다' 풀 수 있는 연구문화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시작부터 다르다. 기술은 특정 분야의 우수성을 높이면서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한다는데 목적이 있다. 반면 과학의 목적은 단순하다. 궁금하다, 알고싶다, 가능할까 등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당장 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되며 돈만 들어가는 연구로 보이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미국에서 박사와 포닥 후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한 과학자는 "세포 안에 혹은 우주 밖에 무언가가 있다고 해보자. 이런 사실은 실생활과 아무런 연관도 없지만 먼 후일 이런 결과들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인류의 삶을 비약적으로 변화시키게 된다"면서 "실생할에 금방 이용되지 않지만 노벨상은 이런 과학적 발견을 한 연구자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노벨상을 기대하지 않고 단순히 알고 싶다를 연구하는 순수한 과학적 자세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한국은 과학과 기술을 동일시하는 풍토부터 버려야 한다. 과학정책도 과학의 개념부터 알고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할 것"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과학자 역시 기술과 과학을 분리해 육성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우리는 특허와 기술을 사거나 베끼기로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로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해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하다"면서 "그 바탕에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과학이 있다. 기초과학에 의한 독창적인 학문 수립과 새로운 발견을 통해 산업이 발전하고 노벨상도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고 역설했다.

한인 1.5세대인 최문영 코네티컷대학(미국) 부총장은 "한국인들이 과학자에게 노벨상을 강조하기보다 지적탐구를 장려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상과 관계없이 열정을 가지고 연구한다. 과학이 인류의 주요한 대상에 대해 새로 이해를 하고 창조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박사와 포닥을 보낸 거대과학 연구자는 과학에 초점을 맞출 것을 조언했다. 그는 "일본 연구자들은 돈되는 과제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궁금한 과학 분야의 주제에 대해 40~50년 연구하면서 기초나 백데이터가 많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새로운 연구가 대를 이어 지속되고 노벨상 수상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희용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한국은 유행에 민감하다. 10월에만 전국민적으로 과학이 이슈가 되고 한 달이 지나면 조용해진다"며 "등수 매기기 문화에 변화할 생각은 뒷전으로, 이는 진정으로 과학강국이 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노벨과학상이 몇 개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진 과학강국들의 문화, 노력 등을 한국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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