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국내 인맥관리 최고 권위자 김기남 씨엔플러스 부사장
공대 졸업 후 대기업, 중견기업 임원, 베스트셀러 저자까지 활동분야 확장

"성공한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인맥 관리'는 그중에서도 핵심이죠. 첫 사회생활부터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소중히 해왔던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김기남 씨엔플러스 부사장)

이름 석자가 적힌 명함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면? 그가 파는 제품이면 믿고 살 수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줄 정도로 인맥관리의 '달인'이 있다. 국내 최고 인간관계 전문가로 꼽히는 그의 인맥은 삼성·LG 임원부터 대학교수, 변호사, 정치인까지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돼 있다.

김기남 씨엔플러스 부사장은 대기업 사원부터 시작해서 중견기업 임원까지 30여년간 전자업계 영업맨으로 활동해 왔다. 대외적으로는 베스트셀러 작가, 인맥관리 최고 강연자, 파워 블로거 등으로 더 유명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도전을 지속하고 있는 김 부사장을 인천 소재의 씨엔플러스(대표 한무근) 본사 사옥에서 만나 성공 비법과 과정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초정밀 커넥터 기술 경쟁력 인정···"인맥 기반으로 위기까지 극복"

지난 ​2003년 설립된 씨엔플러스는 2009년 매출액 287억원에서 2014년 550억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김 부사장의 폭넓은 대인관계가 직·간접적인 도움이 됐다는 평이다. 

주력 제품인 초정밀 커넥터는 몰렉스(Molex), 히로세(Hirose) 등 다국적기업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반도체 산업처럼 정밀하고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분야다. 

커넥터란 전자기기 회로 속 전도체를 연결해 전류와 신호를 전달하는 부품으로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 핸드폰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에 활용된다.

씨엔플러스는 이를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과 일본전산(NIDEC), 소니옵티악(SONY OPTIARC), 히타치(HITACHI), 산요(SANYO)와 같은 글로벌 전자업체에 납품할 정도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인맥 관리'의 달인으로 꼽히는 김기남 씨엔플러스 부사장.<사진=강민구 기자>
'인맥 관리'의 달인으로 꼽히는 김기남 씨엔플러스 부사장.<사진=강민구 기자>
중국산들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부사장의 제안으로 기술적인 난이도가 높은 초정밀 커넥터를 개발하게 됐다.

다국적 기업의 공급가액의 40%를 절감해서 국산화는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에서는 씨엔플러스가 생산용량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격을 낮추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국내 주요 대기업 직원들은 씨엔플러스의 경쟁력을 인정하고 생산용량 증대와 품질향상을 위해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생산을 독려했다. 결국, 씨엔플러스가 성공하면서 다국적기업은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한 때 55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던 회사는 지난 2014년 위기를 겪게 된다.

대기업의 요청으로 PDP 관련 커넥터 생산설비를 확대하던 상황에서 LCD 산업으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김기남 부사장은 "브라운관이 평면 디스플레이로 바뀌어 단종되어도 10여년은 유지되었는데 PDP는 바로 자취를 감추면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PDP 커넥터 부품에 집중했던 것이 한순간에 무산되면서 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토로했다.

위기상황에서 생활가전인 냉장고,에어콘, 세탁기 등의 타 제품 커넥터로 발빠르게 시장을 다변화하면서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는 단계에 있다. 또한, 김 부사장의 인맥의 힘도 컸다.

김 부사장은 "중소기업의 제품 성능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을 본다"면서 "김기남이라는 사람이 약속하면 된다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두루두루 아는 사람이 많아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성공한 영업맨으로···"대기업 인사권까지 확보"

대학교 졸업 이후 신입 공채로 태광산업에 입사한 김 부사장은 태광에로이카 생산부서에 배치됐다. 당시 한일 합작품 개발이 필요하던 상황에서 부서 내 유일한 일본어 능통자였던 그가 영업부서로 배치되어 상품기획을 하게 됐다.   

태광에로이카는 부도난 천일사별표전축을 인수했는데, 주축 엔지니어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자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70% 이상의 점유율은 온데간데 없었다. 인켈(Inkel), 롯데, 파이오니아(Pioneer), 아남 네셔널, 한국샤프, 금성, 삼성 등이 시장을 점유했고, 태광은 최하위 수준이었다. 

김 부사장은 영업부에서 인재를 영입을 개발부에 제안했고, 해당 부서에서 난색을 표하자 대표 승인을 거쳐 직접 나섰다. 6개월부터 1년 후 우수한 인재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고, 40명에 가까운 직원을 확보하자 좋은 제품이 나왔고, 결국 업계 선두권을 유지하게 됐다.

김 부사장은 "5년만에 신입사원이 개발부 전직원 인사권을 갖게 됐으며, 대리 2년만에 과장으로 진급했다"면서 "당시 김기남에게 영입 제의를 못 받은 직원이면 무능하다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유통망 확보에도 관심이 많았다. 단순히 오디오만 직접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LG, 삼성 등 대기업의 VCR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형식으로 판매에 나섰다.

당시 판매 유통경로가 대리점이 유일하던 상황에서 태광산업이 보유한 제품을 판매하니 회사 내외부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해당 관계자와의 인연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훗날 커넥터 사업을 하는데 귀중한 자산이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현장경험으로만 도서 집필···"존경받는 '을(乙)로"

김 부사장은 매일 새벽 4시 전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그는 하루도 빠짐 없이 성실하게 살아 온 인생이 인맥 관리에 많은 도움이 됐다.  

김 부사장의 6번째 저서인 '어떻게 살까?'는 행복한 노후조건을 위해 저자의 경험과 주변인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다룬 사례들을 다뤘다. 지인이었던 한 중견기업 대표가 삼성전자 퇴직 후 우울증을 겪고, 부인과 자식에게 소외되었던 때를 회상하면서 베이비부머세대의 고통을 담게 됐다.

그는 제 2의 인생을 안정적으로 준비 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언을 하기 위해 은퇴자를 위한 연수와 교육을 받았으며, 은퇴설계사 자격증까지 받으면서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냈다.

현재 김 부사장은 대기업, 증권가 등에서 외부 강연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 그는 삼성그룹 홍보실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인간관계 최고 권위자로 꼽혀 멘토링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회사 발전에 이끌면서 직장인을 위한 서적을 계속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저는 전형적인 공대생으로 그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경험을 기초자료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7권 모두 참고서적 없이 현장 경험만을 다뤘습니다. 외부활동은 회사 영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데 존경받는 '을(乙)'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직장생활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해 쓸 계획입니다."

김기남 부사장이 집필한 주요 서적.<사진=교보문고 캡쳐>
김기남 부사장이 집필한 주요 서적.<사진=교보문고 캡쳐>
◆ 김기남 부사장은?

김기남 부사장은 금오공고, 영남대 전자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재직 시 태광에로이카를 국내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이후 씨엔플러스에서 커넥터 시장을 개척하고 잇다. 지난 30여년간 전자업계의 영업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정부기관, 대기업 등에서 자기계발과 인맥관리 분야에서 꾸준한 강의 활동과 도서 집필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삼성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맥관리 멘토 활동을 수행하는 등 인맥관리 분야 전문가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맥관리 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인맥 관리의 기술(2008)'을 비롯, '성과를 내는 기술(2010)', '서른, 인맥이 필요할 때(2012)', '위대한 직원이 위대한 기업을 만든다(2012)', '실전, 중소기업 성공전략(2013)' 등이 있다.

김 부사장은 2010년 '중소기업인의 날' 중소기업청장상, 2011년 '제6회 전자 IT의 날' 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상했으며, 국가에서 각분야 전문가를 관리하는 '국가인재 DB'에 등재(2013)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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