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창의융합연구센터, 지상에서 우주 환경 구현, 신소재 개발…ESA에서 러브콜
물질 어떻게 생기나?" 극한 환경은 이에 답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연구


"앗! 물방울이 공중에 둥둥! 마술일까, 과학일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창의융합연구센터(센터장 김진희) 연구실에서는 공중 부양 중인 물방울을 볼 수 있다. 동그란 제 형태를 유지하고 둥둥 떠 있는 물방울을 보고 있으면 "우와!"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2010년 표준연이 자체 개발한 정전기 공중부양 장치로 이런 마술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됐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우주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용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창의융합연구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중부양 실험도 그 중 하나다. 창의융합연구센터는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을 구현하고, 제어 및 측정하는 기술 개발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물질 형성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원자력, 핵융합, 항공우주산업 등 21세기형 첨단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해 미래 에너지 핵심 자원 확보를 위해 신소재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우주에서는 지구에서 만들기 어려운 신소재를 개발 할 수도 있어, 국제우주정거장 (ISS) 실험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매 번 우주로 시료를 보내고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지상에서 우주의 극한 환경과 비슷한 조건을 만든 후 물질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극한환경 연구가 전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 "극한환경 연구? 과학의 신대륙 발견하는 기분"

"극한환경에서의 물질 형성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이를 활용해 기존에 없던 신소재 개발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 다양한 물질 생성의 정확한 측정이 필요합니다."

창의융합연구센터 연구원들에게 극한 환경 연구는 마치 과학적 신대륙을 발견해나가는 과정과도 같다. 초고온, 초미세, 초고압, 초고속과 같은 극한환경은 인간이 예측하기 어려워 늘 준비가 필요하다.

이근우 박사팀은 2010년 미국 NASA, 일본 JAXA, 독일 DLR에 이어 정전기 공중부양 장치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공중부양 장치 개발 계기를 묻자, 이 박사는 "표준연에 감사한 일"이라고 운을 떼며 연구과정을 설명했다.

2007년 표준연에서 연구를 시작한 이 박사는 고온 고압 표준을 완성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중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 필요성에 대해 여러 곳에서 강조됐다. 하지만, 기술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해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개발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표준연에서 '한번 해봐라' 한 거죠.(웃음) 박사 학위 시절 NASA에서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공중 부양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1년 반 만에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에 성공했죠."

지금은 레이저, 고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극한환경'을 연구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극한 관련 연구는 황무지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도 ‘복합 극한 환경 연구’만을 궁극적으로 연구하는 곳은 표준연 창의융합연구센터가 유일하다.

2014년에는 3000 ℃ 이상의 초고온의 부양 환경구현과 물성 측정에 성공했다. 지난 달에는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로 수용액(물)을 공중에 띄운 뒤, 물을 증발시켜 준안전 상태의 초과포화 결정을 얻는 데 성공해 또 한 번 학계의 주목받았다.

특히 초고온, 초과포화, 초과냉각 등의 극한 환경에서 원자 및 분자 구조 특성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에 라만· X-선 산란 기술이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일단 실험이 시작돼 초고온 상태에 도달하면 연구자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죠. 부양된 시료에만 집중해요. 공중에 물질을 띄우는 거 못지않게, 공중에서 물질이 흔들리지 못하게 유지해주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물질마다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마치 비행기를 조종하듯 세심하게 다뤄야 합니다."

이 박사는 "2010년 당시에는 진공에서 금속을 띄워 용융하는 것만 가능했는데 지금은 물, 단백질 등까지 띄워 결정을 키울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로 시료를 공중에 띄운다. 시료와 용기의 접촉을 차단한다.<사진=조은정 기자>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로 시료를 공중에 띄운다. 시료와 용기의 접촉을 차단한다.<사진=조은정 기자>

◆유럽항공우주국(ESA)서 러브콜…"완벽한 단백질 결정 분자 본다"

연구 성과로 이 박사팀은 유럽항공우주국(ESA)의 초청까지 받았다. 수용액 속에서 결정을 키우는 것을 본 유럽항공우주국이 바이오 분야 연구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 이 박사팀은 다음 달 이탈리아 토피컬 팀 미팅에 참석할 예정이다. 연구 성과가 유전병 해결을 위한 유전체지도 제작과 같은 바이오 분야 등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우리 몸이 물로 이뤄져 있듯, 단백질 역시 물에서 자랄 수 있어요. 물에 단백질을 넣은 후,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를 통해 초고온 상태에서 물을 증발시키게 되면 결함이 없는 단백질 결정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단백질을 공중에 띄워 벽과 접촉하는 면을 없애면, 대류 현상이 없는 우주에서처럼 질 좋은 단백질 결정체를 구현할 수 있다. 때문에 단백질 분자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 대류가 없는 우주에서는 원자와 분자들이 단백질의 제 위치에 정확히 찾아가  지구 환경에서 만든 단백질 결정체보다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이제까지 지구상에서도 단백질 결정체를 만들 수는 있지만, 크기는 겨우 몇 ㎛(마이크로미터)도 되지 않아 단백질 분석에 용이하지 않았다.

연구 성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10월 24일 게재됐다.

◆ 초고온, 초고압, 초고속, 초미세 연구… "세계적 과학저널에 올해만 4번 소개"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근우 박사.<사진=조은정 기자>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근우 박사.<사진=조은정 기자>
이근우 박사는 "초고온 상태를 제어할 수 있는 정전기 공중 부양 장치 외에도 초고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동적 다이아몬드 모루 장치 (dynamic diamond anvil cell) 기술, 미시세계를 볼 수 있는 열전 원자현미경, 4세대 방사능 가속기를 통해 10의 15승 초의 초고속 상태까지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지구 내부 또는 행성 내부의 초고압 환경에서 물질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서 10만 기압이 넘는 초고압 발생장치와 초고압 환경에서의 물성 측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박사는 "초고압에 의해 수소가 기체가 아닌 액체 및 고체로 있는 목성 또는 토성 등의 행성자원탐사와 지질·지구 현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며 "또 다양한 새로운 구조를 가진 물성을 발견할 수 있어, 신소재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초고속 연구는 극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형성과 변화를 원자시간단위에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이 기술은 4세대 방사광기술이라고 하는 XFEL을 이용하면 물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10^-12 ~ 10^-15 초 내에서 측정할 수 있다.

초고온 및 초고압의 극한 환경에서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나, 이런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물질이 변하는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이런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어 한다. 센터에서는 시간분해산란 기술을 통해 이런 원자단위시간에서 물질이 움직이는 과정을 측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센터는 2013년 세계 최초의 열전현미경을 개발, 원자 수준에서의 열적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열은 거시적 현상이라는 인식때문에, 아주 작은 영역에서 열적 현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온도차에 의해 전기가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해 열전 현미경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원자들을 관찰하고 있다.

이 연구는 올해에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널인 PNAS 뿐 아니라, Scientific Reports에도 4건이나 실렸다. 이는 주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박사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기과제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의미있고, 인류에 도움이 되는 연구에 계속 도전할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단기에 연구 성과를 내야만 하는 현실에서 벗어난, 장기적인 지원과 응원이 필요해요. 우리 연구원들의 역량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 끝까지 믿어주길 바랍니다."

극한 환경에 관한 연구는 극한 환경 구현, 제어 및 측정, 예측과 활용하는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져 우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과학자의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연구 분야다.

 이 박사는 "극한환경 연구는 지금까지 인류가 가보지 못한 길을 탐험하는 것"이라며 연구자가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극한 환경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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