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대덕넷, 11월 상상력포럼D 행사 개최
김동원 과학사 학자 '한국에서의 과학기술 이미지를 통해 본 문제점과 해결책' 강연

"과학과 기술이 한국에서 문화의 일부분일까?"
"과학자와 기술자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이는 최근의 이공계기피 현상과 관련이 있는가?"

과학기술史 학자 김동원 前 KAIST 문화과학대 학장이 한국과학계에 던진 핵심 질문이다.

IBS(기초과학연구원·원장 김두철)와 대덕넷은 21일 UST 사이언스홀에서 '한국에서의 과학기술의 이미지를 통해 본 문제점과 해결책'을 주제로 11월 상상력포럼을 열었다.   

최근 국내외 혼란과 위기속 한국 과학기술계의 문제점과 실태를 조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김 교수 "한국, 유교 영향으로 과거 중시···탐사 등 미래지향적 변화 필요"

이날 연사자로 나선 김동원 교수는 영화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을 예로 들며 "영화 속의 워프 등의 기술을 통해 미국 내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등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 영화들은 전세계에서 흥행한반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개봉 성적이 초라했으며, 공상과학소설에 대한 관심도 저조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일본, 중국, 북한 등의 사례를 한국의 상황과 비교·대조해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1930년대부터 공상과학소설 작가가 배출됐으며, 중국에서도 1980년대 이후 관련 책, 영화 등이 질이 낮아도 계속 출시되고 영문으로 번역되어 미국 등에 출간되기도 했다"면서 "대만에서도 SF 역사를 묶어놓은 책이 발간되는 등 중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도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있으며, 자생적인 공상과학소설을 장려하고 있다. 김 교수는 북한공상과학소설의 특징으로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봄 ▲과학기술에 대한 정확성 요구 ▲새로운 과학기술 이미지는 사용 ▲해양, 우주 등으로의 탐험과 탐사 중시 등을 꼽았다.

김동원 前 KAIST 문화과학대학장.<사진=대덕넷>
김동원 前 KAIST 문화과학대학장.<사진=대덕넷>
그에 따르면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체제하에서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것을 장려하고 있으며, 주체사상 등 정치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애국심과 과학기술의 실용적 응용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학교에서 공상과학소설을 읽도록 권장하며,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대우가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난 1950년대 말부터 공상과학소설이 출간되기 시작했으나 비주류에 머물렀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한국 SF소설의 특징으로 ▲미래지향적 내용 없이 현재 문화를 반영 ▲과학과 기술 내용 부족 ▲탐험, 모험 정신이 없음 ▲미래를 비관적으로 묘사 등을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 1950년대 말부터 공상과학소설이 나오기 시작했으나 아직도 정통 문단에서는 인정을 못 받고 있다"면서 "한국공상과학소설의 특징은 미래에 대한 내용이나, 해양 등의 탐사, 개척 등의 내용이 보이지 않으며, 지구 멸망 등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과학기술이 문화로 정착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로 강한 유교적 편견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선비문화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유교문화가 사농공상으로 분류하며 과학기술의 문화적인 통합을 저해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유교문화로 인해 과학기술인은 상대적으로 천시받았다. 도자기를 만들던 도공은 조선에서 이름도 전해지지 못한채 하층민으로 간주됐다.  

김 교수는 "유교적 유토피아가 미래에 대한 관념 없이 과거(주나라)에 존재하며, 이러한 문화가 탐험, 탐사와 같은 미래에 대한 개척정신을 저해했다"면서 "이웃 일본에서는 실질적으로 최상류층 자제들이 과학계에서 일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집권층이 과학계를 천시하고 탐험과 개척이 주는 이미지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비 문화로 인해 실험하고 실천하는 것 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공상과학소설 등을 통한 미래 지향적인 내용 보다는 역사 등에만 강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지도과정에서도 이러한 부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 학생들을 지도하면 공대학생들이 철학과, 사회학과 등에 수업을 들으러 오곤 했는데 최근에는 그러한 경우가 거의 없고, 학생들이 A+ 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가 말하는 것을 달달 외우고, 교수의 의견과 반대되는 내용은 쓰지 않는다"면서 "21세기에 필요한 과학기술인은 창조적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과학자를 이성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 상황에서 과학계의 적극적인 소통과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영웅과학자(Hero Scientist)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과학과 기술이 문화의 일부분이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일본과 중국에서는 과학기술이 자신들의 문화의 일부로 인식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외국서 수입해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와 과학계의 적극적인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는 작가, 시나리오 작가들이 실제로 과학자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면서 편견을 갖고 쓰는 경우가 많은 것이며, 심각한 문제인데 알려고도 안한다. 과학기술자도 이에 대한 문제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지속적으로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언론 등 미디어의 역할론도 부각됐다. 김 교수는 "소설가가 사망하면 크게 보도하는 반면 과학자가 사망해도 거의 보도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과학자가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취급 받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과학계 종사자들이 과학기술을 너무 심각하게 보면서 과학활동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면서 "한국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가 없는 것은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과학계 "형식·제도 아닌 문화 만들 계기 필요"

강연 후 참석자들도 김 교수의 강연에 공감을 표하며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출연연에서 온 연구자는 과학기술계에 미친 유교의 영향과 알파고 등 새로운 기술이 소개됐을때 과학자들의 역할을 질문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 뒤집을 기회가 없었다. 중국의 경우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배하면서 충격을 받아 뒤엎어야한다는 계기가 있었지만 한국은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것을 세운 적이 없다"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때 실패 원인이 무엇인지 백서가 필요한데 실패에 대한 기록이 없고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실수와 실패가 반복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과거 50년, 500년전 역사를 바로잡기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다. 하지만 50년 후 과학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컨텐츠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을 연구하는 출연연의 과학자가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 등을 들며 난상토론의 필요성을 제안하자 김 교수는 "난상토론이 꼭 바른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과학정책은 손을 들어서 결정되지 않는다"면서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형식보다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 교수의 의견이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학계는 그런 목소리가 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선생도 그런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리서치랩의 리더나 디렉터도 그런 사람이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에서 온 참석자는 과학계의 정치 불신과 외면, 지방이 아닌 중앙정부 중심의 편견을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질문에 공감한다. 과학기술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차이가 있다. 미국은 과학자가 연구를 주도적으로 하고 나중에 정부지원제도가 생겼지만 한국은 정부 주도하에 과학기술이 형성됐다"면서 "한국에서 정부 예산이 아닌 개인 자금으로 과학기술을 할 연구자가 몇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과학하는 사람이 늘어야 노벨상이 나오고 문화도 형성된다. 지금은 의무로 하는게 더 많다. 지금부터라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대덕넷은 빛나는 조연상 관련 추천을 받고 있다. 빛나는 조연은 ▲분석과 조사, 실험으로 연구를 뒷받침하는 '테크니션' ▲연구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시설담당자' ▲과학문화확산과 지역사회에 공헌한 봉사자 등 과학기술계와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면 오는 30일까지 누구나 추천 가능하다. 

빛나는 조연은 추천자를 대상으로 심사 후 다음 달 21일 열리는 상상력포럼에서 시상할 예정이다. 관련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며, 자세한 문의는 대덕넷(042-861-5483)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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