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계 합리적 질서 위한 과학정책 대화' 주제 좌담회
"연구비는 국민에게 나온다는 인식…과학 커뮤니케이션 필요"

"최근 국정농단에 따른 시국선언과 관련해 미래부 산하 출연연이나 KAIST에 소속된 사람은 소신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국가에 대해 부정적인 활동을 하면 미래부가 해당 기관 예산을 깎겠다고 했다. 정부가 지원금을 준다는 명목으로 각 기관의 영혼까지 통제하겠다는 의미다."

"민주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연구자들 스스로가 수동적이었다. 우리가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파워를 키워야 한다. 과학계 내부 문제를 인식하면 해결하기 위해 발산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과학계 민주화 방법이 아닐까 한다."

헌정 사상 최대 규모 민심 촛불이 흐르는 가운데 과학기술계 민주화를 통해 진정한 연구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일선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다.

과학기술계 내에 합리적 질서를 만들자는데 중지가 모아지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과학기술계 기관 및 단체들은 지난 15일 대덕넷 교육장에서 '한국 과학기술계 합리적 질서 위한 과학정책 대화'를 주제로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에는 ▲김상규 IBS 박사 ▲김숙경 표준연 박사▲박찬 KISTI 박사 ▲박항 KAIST 부총학생회장 ▲홍성주 STEPI 박사(가나다순)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부터 젊은 연구자, 과학기술 정책 연구자 등 현장의 과학기술인이 참여해 각각의 경험을 공유하고 향후 방향에 대해 제안했다.

좌담회에 앞서 홍성주 박사가 '과학기술계에 민주화가 왜 필요할까?'를 주제로 발제했다.

홍 박사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과학계 민주화가 제기되는가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언급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과학기술계 민주화가 필요한 이유로 정부와 과학기술계의 인식 불일치를 꼽았다. 그는 "연구 생태계는 연구자 중심 네트워킹이 돼야 한다"라며 "과학계를 비롯해 학계, 산업계는 글로벌 지식으로 국제적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부의 시각은 국내로 한정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홍성주 박사가 한국 과학기술 거버넌스 조직 모델을 4개 층위로 구분해 한국 과학기술계 문제점을 지적했다.<사진=홍성주 박사 제공>
홍성주 박사가 한국 과학기술 거버넌스 조직 모델을 4개 층위로 구분해 한국 과학기술계 문제점을 지적했다.<사진=홍성주 박사 제공>
홍 박사는 한국 과학기술 거버넌스 조직 모델을 4개의 층으로 나눠 설명했다. 제1층위는 대통령, 국무총리, 감사원, 검찰, 국회 등이다. 제2층위는 정부부처다. 즉 R&D 수요가 발생하는 층으로 미래부, 기재부, 교육부 등 20여개 부처가 포진해 있다.

제3층위는 정부사업 관리운영 기관이다. STEPI·연구회·KISTEP 등이다. 제4층위는 연구와 혁신의 수행기관인 과학기술계 출연연 25개와 대학, 협회·단체가 속해있다.

홍 박사는 합리적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제4층위의 원활한 네트워킹이 조성돼야 함을 피력했다. 그는 "한국 과학기술 거버넌스 구조는 제1층위부터 제4층위까지 내려오는 지시이행 체계다. 쌍방의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아니다"라며 "위에서는 명령을 내리고, 밑에서는 결과보고를 올리는 체계"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제3층위 정부사업 관리운영 기관 확대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연구개발비가 19조원으로 지속 상승하면서 제4층위 예산관리 범위가 확대됐다"라며 "이런 이유로 제4층위를 관리·감독하는 제3층위 기관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홍 박사는 "제4층위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많아진 것은 명령이 많아진 것이고 보고할 곳도 많아진 것"이라며 "연구자는 연구활동에 몰입할 수 없고 전문성을 살리기 힘든 체계"라고 진단했다.

제1층위와 제4층위의 의사소통 통로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전략회의, 국가과학기술심의회 등을 꼽았다.

그는 "자문위와 같은 상위 조직은 연구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제를 공론화해 제1층위에 전달해야 하지만, 일부 과학기술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의제를 공론처럼 제기한다. 실제 그 의제들은 단기간에 제작되며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현장에서는 정책 의제들이 통보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불통구조의 전형적인 실태"라고 지적했다.  

홍 박사는 "과학기술계가 민주화 이슈를 제기할 때 강력히 움직이지 않으면 반대 담론이 커질 수 있다"라며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가 아닌 과학기술계와 정부가 효과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단계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주제 발표 후 참석자들의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 상위부처마다 다른 시스템, 과제 따라 영혼까지 통제?

"연구개발 관련 정부 부처는 미래부와 산업부 두 곳만으로도 충분한데 지금은 환경부, 식약처 등 많아졌다. 문제는 부처마다 평가 시스템이 너무 다르고 불합리한 관리로 사업관리팀 인력이 두손두발 다 들고 나가기도 했다."

홍 박사의 한국과학기술 거버넌스 모델 설명에 참여자들은 "상위부처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제각각인 시스템으로 과제를 진행하기조차 어렵다"는 경험을 토로했다.

박항 부총학생회장은 "최근 총학생회 차원에서 시국선언을 진행하는데 학교 관계자가 찾아와 시국선언 중단을 요청했다"면서 "이유가 미래부에서 예산을 깎겠다며 시국선언 중단을 통제받은 것이다. KAIST도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으니 소신껏 운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총장과 이사장 선임에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해달라고 제안했지만 규정상 학생참여는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면서 "구성원이 참여하지 않는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구성원으로서 학생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참여인데 지금은 배제가 중심"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출연기관도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숙경 박사는 "출연연도 정부의 지원을 받다보니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시국선언에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지식인사회인데 자율성과 자신감이 부족하다.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사기가 많이 저하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찬 박사는 연구비 배분 룰 체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제가 시스템에 의해 배분된다면 선정이 안돼도 그 이유를 알아서 이해 할텐데 지금은 정부에 잘못보이면 떨어지는 상황"이라면서 "정부의 연구비 배분 룰을 체계화하면 현장에서도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 "기초연구 인력이 줄고 있다. 40~50대에도 포닥으로 연구를 하고 있을 정도로 기초연구분야에 비정규직이 많다. 그러다가 그들이 하나둘 안보이기 시작한다. 정규직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기초과학을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분야에도 후배가 거의 없다. 기초과학의 가장 큰 문제다. 일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현재 상황을 우려했다.

김상규 박사 역시 기초연구인력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식물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 분야도 후속세대가 자리를 잡고 연구하기가 힘들다"면서 "기초과학에 투입되는 연구비도 부족해서 중견연구자와 이제 막 시작하는 연구자간 연구비 경쟁을 하거나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비가 있는 응용 관련 프로젝트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 상황이 아쉽다 "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김숙경 박사는 기관장 임기 문제를 꼽았다. 김 박사는 "한국은 기관장 임기가 3년으로 짧아 기관을 소신껏 운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우리는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보직자도 대부분 바뀌는데 일본과 중국은 꿋꿋하게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다이나믹하다고 말하지만 진지하게 보고 있지않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장의 이야기에 대해 참석자들은 "우리는 정부에서 예산을 주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영혼까지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연구비의 주체가 대학은 교수 출연연은 정부?

"지인 중 대학원생이 있는데 과제에 참여할 경우 월급을 주는 교수가 시스템이고 사장이 된다. 교수가 얼마를 주는가에 따라 생활이 궁핍하기도 하고 풍요롭기도 해진다. 그런데 연구에 참여하고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적어도 다른 랩과 비교해 많다며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이에 대해 홍 박사는 "우리는 시스템안에 익숙해지면서 안주하는게 아닐까. 과학도들은 어릴때부터 수학 과학 영어는 잘했지만 시민으로서 교육은 받지 않는다. 국가에 봉사하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소명의식은 있지만 시민의식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공계특성화대학에 재학중이었던 학생과의 상담 경험을 소개했다. 홍 박사는 "그 학생은 과학고를 다니고 이공계특성화대에 들어왔지만 경영학에 관심이 많아 편입을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하는 이유가 그동안 혜택을 계속 받으며 공부를 했는데 과학계를 벗어나 비용을 지불하고 공부를 할 것인지 심리적, 정신적으로 위축돼 있었다"면서 "결과는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잘 하고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시스템에 익숙해지면서 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탁상행정 문제도 제기됐다. 김숙경 박사는 "부처에서 포닥과 같은 비정규직 연구인력을 지나치게 빡빡하게 체크한다. 현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단순히 그동안 선발한 연구인력보다 줄인 숫자를 정한다"면서 "예산은 올랐는데 인력을 줄이면 답이 안나온다. 일부에서는 담당 사무관의 과도한 행정적 요구로 보고업무만 늘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는 결국 연구자와 정부간의 신뢰 문제다. 연구자는 힘들다고하고 정부는 못믿겠다. 잘해라는 입장차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규 박사는 독일에서의 경험을 소개했다. 김 박사에 의하면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전신인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도 2차세계대전 이전에는 정부에서만 지원금을 받으면서 유태인 생체실험 등 있을 수 없는 연구를 하기도 했다. 전쟁 후 연구자들이 연구소가 국가에 종속되면 해서는 안될 일도 해야한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예산제도를 주정부 50, 지방정부 50으로 바꾸면서 지금은 연구 주제 자체에는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독일 통일 후에는 동독에 연구소를 지었지만 서독의 연구자들이 가지 않으면서 외국에서 디렉터를 모셔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글로벌화의 계기가 됐다"면서 "우리도 그런 계기를 기다려야 하는건지 의문이 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제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막스플랑크는 디렉터에게 전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때문에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가 완벽하다.

김 박사는 "연구소 예산에는 이를 감시할 행정인력 선발도 포함돼 있다. 때문에 디렉터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당장 인사조치를 하지 않지만 연구비를 중단할 수도 있다"면서 "독일은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예산이 이상하게 쓰이거나 잘못 쓰이면 바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박항 부총학생회장은 학교내 문화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신진 교수 중에는 학생들과 코웍관계로 연구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럴경우 자칫 교수사회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어 그 가치관에 맞추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문제는 이런 시스템에서 어떻게 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지. 실질적으로 구성원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 과학계도 시민의식 갖춰야

"우리가 만약 과학자 헌장을 만든다면 연구자와 과학도에 대한 지원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첫번째로 넣어야 한다. 교수나 관료가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인문계 교수들은 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말할 때가 많다. 과제를 사유하지 말라고 말이다. 과학계도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과학계의 '시민의식'과 '국민과의 적극 소통'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김상규 박사는 "독일은 연구비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인식과 함께 일반 국민들도 과학에 대해 관심이 높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연구소가 있다는데 자부심도 크다"면서 "막스플랑크 연구소에는 일년에 한번 잡지가 나오는데 구독 대상에 일반 국민도 포함된다. 박사과정생은 대중에게 자신의 연구분야를 소개하는 이벤트를 꼭 해야하는 항목이 있다. 연구소들은 일반인에게 연구소를 공개해 지역과 연구소가 같이 축제를 연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막스플랑크에는 과학자와 대중을 잇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있다. 이들은 과학자 출신인데 연구자의 제안서를 컨설팅하고 대중과의 소통도 적극 지원하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박항 부총학생회장은 과학자로서의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에는 대부분의 교수님이 열심히 하시지만 일부는 학원강사와 다를바가 없다.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정도로 철학이 없다"면서 "과학도로서 사회적 책임도 중요한데 자신의 분야를 소개하는 세미나에 가보면 자신의 언어로 PT를 읽는 수준이다. 대중이 이를 알기는 어려울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과학고 과기대에서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 공부는 미흡했던게 사실이다. 철학을 가진 과학자의 롤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성주 박사는 "한국 과기계도 최형섭 전장관처럼 연구철학과 소신을 지키며 연구자의 덕목을 만든 분이 있다. 우리도 과학기술의 전통을 세우고, 과학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과학 현장에서 정책의제에 대한 관여 기회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구소마다 있는 홍보실도 우수연구자나 연구성과에 대해 일반인에게 설명할 정도의 능력있는 사람이 요구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번 좌담회에 이어 1차 토크콘서트는 다음달 13일 포스텍에서 2차 토크콘서트는 다음달 19일 GIST에서 3차 토크콘서트는 2월 2일 KAIST에서 마지막 종합 토론회는 2월 9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진행된다.

공동 주최는 다음과 같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한국연구재단 ▲IBS(기초과학연구원)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GIST(광주과학기술원)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대덕클럽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KAIST 학부 총학생회 ▲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 ▲벽돌한장 ▲ 과학기술정책연구회 ▲YTN Science ▲대덕넷 등.(순서 무순)

※이번 '전국 순회 과학정책 대화'와 함께 뜻을 하길 원하는 협의체와 기관은 언제든지 연락(010-3423-3586, joesmy@hellodd.com) 주시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기대합니다.

과학계 합리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 과학기술인 5명은 지난 15일 대덕넷 교육장에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사진=대덕넷>
과학계 합리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 과학기술인 5명은 지난 15일 대덕넷 교육장에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사진=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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