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 과학의 힘㉙]아날로그 감성으로 디지털 법률 DB 만드는 사람들

디지털 정보화 시대, 디지털 정보는 곧 돈으로 치환되는 시대. 디지털이란 막강한 기능을 탑재한 법령 데이터베이스로 법률 포털 서비스 시장을 석권한 기업이 있다.

1996년 '나라법령정보통신'으로 시작한 나라아이넷(대표 김찬훈)은 누구나 꿈꿨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법률 데이터 디지털 작업을 착수했다.
 
법률 정보의 생명은 정확과 신속, 그리고 공신력이다. 그 법률 정보를 기반으로 각 관공서와 기업의 법무부서는 원활한 행정과 효율적인 법무 행정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까지도 관공서에선 종이로 출판된 법전을 뒤적였다. 공무원들도 관련법 규정을 잘 몰랐고 찾기도 까다로웠다. 그래서 법률 지식은 특수 계층의 권력이자 법을 잘 모르는 시민에게 넘기 힘든 문턱이었다.
 
"법률정보의 대중화가 목표였죠. 법을 적용해야 하는 당위성에 비해 접근성은 턱없이 형편없었어요. 법률 정보의 디지털 작업은 법률 서비스 문턱을 낮추기 위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나라아이넷 김찬훈 대표에게 법률정보의 대중화는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였다. 그렇게 시작한 나라아이넷은 1997년 국내 최초로 법무행정 정보시스템을 개발해 여러 관공서에 적용해 법무행정 전산화의 초석을 닦았다. 이제 둔기로 사용해도 될 만큼 두꺼운 법전을 뒤적이는 관공서는 사라졌다.
 
시민은 물론 담당 공무원도 찾기 어려웠던 대한민국 현행법령, 판례, 각종 법규 DB는 이제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명쾌한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나라아이넷의 법무행정정보 시스템이 구축한 쾌거였다. 서울특별시청과 20여 개의 시·구청이 나라아이넷의 자치법규 시스템과 법무관리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이와 함께 한국조폐공사, 체육진흥공단 등 정부투자기관에 종합법규시스템인 ‘자치법규 및 사규 DB 종합시스템’을 독점으로 공급하고 있다.
 
특히 나라아이넷이 발행한 '법누리'는 대한민국현행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법령용어 사전, 민원사무처리기준 등의 방대한 자료를 CD 1장에 담아 법무 행정의 효율과 관련 업무의 속도를 높였다.

김찬훈 나라아이넷 대표.<사진=안시언 객원 기자>
김찬훈 나라아이넷 대표.<사진=안시언 객원 기자>
◆ 이상한 '나라'의 김 대표와 직원들
 
나라아이넷은 법무행정정보 시스템과 연계해 2015년부터 특허 선행기술조사(상표·디자인 부문)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특허 선행기술조사는 특허 과정에서 심사 기간을 단축하고 심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민간 기업에 위탁하는 사업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법률 서비스와 특허 선행기술조사를 함께 하는 기업은 나라아이넷이 유일하다.
 
2002년 일본 '신일본법규출판사'의 DB 구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일본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 최초였다.
 
20년간 차분히 쌓아 온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업의 정보 시스템의 기획과 개발, 관리까지 하는 SI 사업도 나라아이넷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이처럼 '국내 유일', '국내 최초'란 타이틀이 수식어로 붙어 있는 리걸테크(Legaltech, 법률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답지 않게 사내 분위기는 첫 MT를 즐기는 대학생처럼 활기와 자유가 넘친다.
 
올해 서울에서 대전으로 터를 옮기며 '나라지식센터'로 명명한 나라아이넷 사옥 1층은 커피와 책과 안락한 의자가 있는 쉼터로, 직원을 위해 온전히 꾸몄다.
 
업무 특성상 숫자 표기 하나에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살얼음판 위에서 일해야 하는 그들을 위해 김 대표가 마련한 공간이다. 층마다 외부 휴식 공간을 만들어 언제라도 나가 한숨 돌릴 쉼표 같은 휴식처도 잊지 않았다.
 
출근과 퇴근도 각자 업무 일정에 맞춰 자율적으로 한다. 정년은 75세, 복리 후생과 급여도 동종 계열에서 독보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가 많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월급 인상도 요구하는 겁 없는 직원이 상주하는 곳이 나라아이넷이다.
 
그러나 독립된 업무를 책임감 있게 하는 완수하는 직원들. 이들이 김찬훈 대표의 가장 큰 자랑이자 경쟁 무기다.
 
◆ 아날로그 감성으로 디지털 법률 DB 만드는 사람들
 

"위기도 있었죠. 법률 법무행정 정보시스템을 CD로 제작해서 처음 관공서로 납품을 하는데 90년대 후반 당시 관공서 컴퓨터에 CD-ROM을 장착한 컴퓨터 보급이 거의 안 되어 있었던 거예요. 데이터 입력 비용만 10억 들어갔어요. 게다가 IMF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고. 보급할 수 없는 CD만 바라보며 직원들을 마냥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헤어졌죠. 그때."
 
함께 밥을 먹었던 친구 같은 직원 60명을 한순간 잃어야 했다. 회사 인근 카페에서 해고 회의를 했다. 커피잔을 기울이며 후일 '함께 다시 하자'라는 김 대표의 약속을 그들은 철석같이 믿어줬다. 몇 달간 속이 아파서 밥을 넘길 수 없었다.
 
잠시 헤어졌던 그들은 긴 세월을 건너 지금 나라아이넷의 직원으로, 외주 용역 사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수차례 수감되고 옥고를 치르면서도 신념을 꺾지 않았던 청년 김찬훈을 믿어 준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시 모여 일하는 현장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흐른다. 방대하고 복잡한 법령을 디지털 자료로 세심하게 세공하는 작업은 냉정한 머리로 해야 한다. 김 대표는 '저렇게 일해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초집중 상태라며 혀를 찼다.
 
그러나 그들의 실책은 관공서와 기업의 연쇄 실책으로 연결되고 결국 일반 시민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기에 빙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업무 후엔 퇴근도 안 하고 슬그머니 맥주 캔을 꺼내 회사 로비를 선술집으로 만들어 버린다며 김 대표는 허허 웃는다.
 
"인연이 그래요. 그래서 사람이 중요하죠. 일본에서 자주 가던 스타벅스 직원이 지금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제가 함께 일하자고 권했죠. (웃음) 앞으로 이 사람들과 함께 할 게 많아요. 법률·특허를 전문으로 신문도 제작하고 ‘나라연구원’을 설립해 법률과 사회 문화 쪽에 힘쓸 예정이에요. 우리가 하고 있는 법률 서비스가 각 지자체와 기업의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으면서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나라아이넷.<사진=나라아이넷 제공>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나라아이넷.<사진=나라아이넷 제공>
 ※'지식재산-과학의 힘' 기획연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대전시의 예산을 지원받은 '지식재산서비스 서비스 혁신역량 강화사업'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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