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이 꽃피운 새로운 지식과 사상들
저자: 장대익, 출판사: 바다출판사

저자: 장대익, 출판사: 바다출판사
저자: 장대익, 출판사: 바다출판사
◆유전자 기계를 넘어서 밈 기계로
동물, 인간, 인공물을 모두 포함하는 일반 복제자 이론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는 곧 인간이란 왜 그토록 독특한 존재가 되었나에 대한 대답이다. 다윈 이후의 생물학자부터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동물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동물과의 차별선상에서 인간을 탐구해왔다.

이들이 인간에 가르쳐준 중요한 통찰 중 첫 번째는 인간이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간이 '밈의 생존 기계'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후세에게 비단 유전자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진화시킨 정교한 모방 능력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비유전적으로 후세에 전달함으로써 인간 고유의 사회성과 문화를 발달시키고 문명의 폭발을 이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대익 교수는 유전적 측면의 적합도와 밈적 측면의 적합도를 모두 고려함으로써 인간 본성의 보편성과 독특성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안한다. 바로 진화 인간학은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탐구로,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영장류학, 뇌과학 등의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여기서 제시된 '일반 복제자 이론'은 진화 인간학의 요체로 진화학을 동물을 넘어 인간과 인공물에게까지 확장시킨 이론이다.

장대익 교수는 기존의 복제자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밈적 적합도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일반 복제자 이론의 필요성을 제창하고 더 나아가 영장류학과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들어 본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또한 본 이론이 기존 인문학과 연결되는 지점을 밝힌 후, 두 학문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살피며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다가가기 위해 더 개선되어야 할 점을 논의한다. 진화 인간학을 통해 우리는 생물 종으로서의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를 지배한 문명을 형성한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도 폭넓게 사유할 수 있다.

◆인문학의 새로운 진화
사회학에서 종교학, 도덕 심리학, 혁신론까지

진화 인간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진화론은 생물학을 넘어 학문의 전 범위로 확장되어 각 학문의 성격과 방법론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서양철학의 토대가 됐던 본질주의의 토양을 갈아엎은 진화생물학,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제시하는 진화심리학, 인간의 독특한 사회성을 조망하는 영장류학과 사회심리학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영장류학에서는 인간의 사촌종이라 할 수 있는 침팬지와 인간의 행동을 비교하고 인간의 사회성의 진화적 기원을 추적하여 인간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 가령 로빈 던바의 '사회적 뇌' 이론은 인간의 신피질비 크기에 기초해 인간의 사회 집단 크기가 150명 정도라고 예측하고, 이 정도 크기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대화와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에게 특이하게 발달한 흰 공막에 주목한 영장류학자들은 눈에 잘 띄는 흰 공막 때문에 인간은 서로의 눈동자를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해 의미 있는 협력 시그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모두 인간의 사회성이 어디서 연원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심리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치의 생물학적 기원을 밝힘으로써 각 학문의 근본 전제를 재검토하는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성학(性學)은 우리의 성적 행동이 어디서 연원했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진화론의 양육 투자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즉 자손에게 더 많이 투자한 성(인간의 경우는 여성)은 짝 선택에 보다 까다로운 반면, 그렇지 않은 성은 짝짓기를 위해 치열한 동성 간 경쟁을 벌인다. 이러한 경향은 왜 그토록 많은 남성들이 포르노를 즐겨 보는 반면 여성들은 로맨스 소설을 더 선호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도덕성의 근원과 심리, 몸과 마음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도 진화론은 색다른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도덕심리학자들은 최근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근거로 도덕적 판단 상황에서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관찰한 후,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이나 직관이 이성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직관이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면, 도덕 판단을 이성의 문제로만 보았던 전통적 도덕 심리학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진화론은 경영의 화두인 '혁신의 원리'를 찾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지난 40억 년 동안 자연은 그야말로 혁신의 공간이었다. 박테리아의 출현에서부터 다세포 생물의 탄생, 인류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점진적 진화만으로는 얻기 힘든 혁신의 산물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도 자연으로부터 혁신의 원리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장대익 교수는 이보디보(evo-devo)를 통해 진화적 혁신의 원리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사회학에서 종교학, 도덕 심리학, 혁신론까지,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진화 인간학이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서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논의함으로써 21세기 인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이종교배를 실천하다

왜 과학인가? 과학이 '사실들의 학문'을 넘어서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학문'이 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과학의 역할에 의구심을 표하며 과학적 틀로 인간을 재단하는 것을 꺼린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우생학과 핵전쟁의 공포가 남아 있어 과학이 인간 사회에 직접 개입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과학은 우주와 자연은 물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계속 생산해왔고, 이제 과학이 생산한 사실들에 따라 가치의 형태도 변모하고 있다. 이토록 달라진 상황에서 과학을 계속 배척할 수만 있을까?

장대익은 이 책에서 과학이 가치에 대한 학문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하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과학적 세계관은 합리적 추론과 검증, 정차를 통해 우리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틀이며,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믿을 만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인문학은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가? 융합의 필요성을 외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은 극히 드물다. 융합의 결과물 또한 단순히 두 학문을 포개놓기만 한 경우가 많아 새로운 창조물을 기대했던 독자들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진정한 융합이 있기 위해서는, 융합하려는 두 학문의 가장 근본에 있는 학문적 DNA를 발굴해 그 수준에서 혼합하는 이종교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학과 인문학의 이종교배를 가능하게 하는 코드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 본성'이라고 장대익 교수는 답한다.

인문학은 물론 과학(여기서는 진화학)은 결국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해 두 학문이 어떻게 답해왔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진정한 융합에 이를 수 있다.

즉 인문학이 조망한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에 과학은 실증적 데이터로 대답하고, 과학이 인간 본성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이 인문학에 실로 중요한 통찰을 던지는 과정에서 두 학문 간의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장대익 교수가 시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글: 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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