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합리적 질서' 4차 종합대화, 9일 국회서 열려
科技법안 개편·사람 위한 정책·과기계 적극 의견 개진·표 쫓는 정치판 반성 등 다양한 의견 나와

9일 열린 '과학기술계 과학정책 종합대화'에서 참석자들은 과학기술기본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사진=박성민 기자>
9일 열린 '과학기술계 과학정책 종합대화'에서 참석자들은 과학기술기본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사진=박성민 기자>
'출연연 조직을 없애겠다', '이렇게 하면 예산 날려버린다', '내일 아침까지 자료 좀 취합해 보내달라.'
 
과학기술계에서 일어난 비합리적 사례들이다. 정부가 바뀔 때 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아왔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예산을 줄이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박근혜 정부 퇴진'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한창 열 때도 그랬다. 모 기관의 보직자들은 '외부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지 말라'는 공지 문자를 받기도 했다. 과학계는 합리적인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네번째 '과학기술계 과학정책 종합대화'에서 홍성주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1차부터 3차까지의 합리적 대화에서 나왔던 이야기와 고민들에 대해 언급하며 과학기술계의 합리적인 질서를 방해하는 이유로 '시대에 뒤떨어진 과학기술정책 기본법'과 '복잡한 한국 과학기술 거버넌스 조직모델'을 꼽았다. 

◆ 국가의 과도한 과학기술정책 개입은 오히려 '화 부른다'
 
홍 박사에 따르면 국가 과학기술정책은 지금까지 국가의 개입이 있었다. 과학기술활동의 결과물을 아무나 가져다 씀으로써 창조활동이 더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하이리스크(고위험)를 다루는 과학기술계의 도전과 불확실을 감당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을 해왔다.

이는 헌법 제22조(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와 제127조(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에 담겨있다.
 
그러나 이 헌법은 1987년 관주도의 경제성장 시절에 만들어졌다. 그는 "당시 과학기술은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기업의 제품을 거의 다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지만 3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기술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127조의 '과학기술 혁신'이라는 말 자체가 '과학기술계에 지속적으로 간섭해도 된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홍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과학기술의 혁신은 과학기술 활동 중 하나임에도 용어의 모호성으로 불필요한 논쟁을 초래하고 있다"며 "혁신을 새로움으로 본다면 과학기술 자체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활동을 포괄하기 때문에 과학기술 혁신이란 무의미한 용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혁신을 개혁과 가치창출로 해석할 경우 (정부에게) 과학기술을 직접 통제하거나 과학기술을 가치창출적 활동으로 강제할 개입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도한 과학기술정책의 국가 개입은 화를 불러일으킨다. 연구개발의 성과가 곧 공무원이 성과가 되는 '명예분산' 효과로 이어지고, PBS 과제는 공무원에 맞춰주면 된다는 인식에서 오는 '도전회피'로 이어지고 있다. 비도전적 과학기술문화와 책임지지 않는 연구개발문화를 조장하며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홍 박사는 새로운 합리적 질서를 위해 과학기술 기본법을 현시대에 맞게 개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기본법상에서 과학기술계 공론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며 "법이 추구하는 개입의 목적을 재설정하고 특히 과학기술은 인풋, 경제를 아웃풋으로 보는 관점의 교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더불어 ▲정부와 관리기관, 산학연 사이의 관계(질서)에 대한 정의 ▲연구개발계의 자율성과 책무, 윤리에 대한 명기 ▲암묵적이고 관행적 정책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 장치 신설(대학원생, 연구보조인력, 비정규직 연구인력 등)을 주문했다.
 
홍 박사는 "과학기술정책대화를 매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나온 말이 과학기술의 책무와 윤리였다. 공공기관에는 자율이라는 말이 있으나 과학기술에는 없다. 연구개발계의 자율성과 책무 윤리에 대한 명기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1987년 질서에서 살고 있었다. 계속되는 논의로 2017년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야 할 희망이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표 얻기 위한 과학공약 벗어나야 VS 과학자들 의견 적극 개진해야

패널 왼쪽부터 김진두 과학기자협회 회장,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 양수석 연총 회장, 용홍택 미래부 과기정책관, 윤태웅 ESC 대표, 정우성 아태이론물리센터장, 홍성주 STEPI 박사.<사진=박성민 기자>
패널 왼쪽부터 김진두 과학기자협회 회장,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 양수석 연총 회장, 용홍택 미래부 과기정책관, 윤태웅 ESC 대표, 정우성 아태이론물리센터장, 홍성주 STEPI 박사.<사진=박성민 기자>
 "'과기계는 여야가 없다'라는 발언이 좋은 것일까. 이제 과학기술계도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한다."
 
"표만 끌어오는 과학기술정책이 과학기술계의 퇴보를 가져왔다. 지도자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주제발표에 이은 정책대화에서 헌법상 과학기술법의 개정 필요성에 패널, 플로어 참석자 모두 공감을 표했다. 또 법이 바뀔때까지 과학기술인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다수의 목소리가 나왔다.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학기술계는 적극적으로 정치계에 바라는 바를 개진하고, 정부에 기관이 아닌 사람에게 투자하는 방향의 지원을 요청했다.
 
문 의원에 따르면 집권한 당이 현장 연구자들에게 과학기술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지만 한결같이 '과기계에 여야는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과학기술계가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해야한다는 한마음으로 달려왔기 때문임을 이해하지만 집권한 당이 만들어가기 위한 비전과 철학에 '과학기술정책을 어떻게 실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 것은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와 중립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위기가 안타깝다.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달라"며 "헌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 등에도 과학기술계가 요구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그는 국가 R&D를 기업, 대학, 출연연으로 나눠 투자하는 게 아니라 과학기술인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방점을 옮길 것을 강조했다.
 
양수석 연총 회장은 정치계가 과학기술을 진정으로 생각하기를 청했다. 그는 "정치가 표로 연결되는 과학기술정책만 다루고 있다. 과학기술을 어떻게 수립해 정치와 사회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또 그는 "과학기술은 창조예술이다. 과학기술의 자율과 창의성을 살리지않으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창의력을 위해 과학기술을 관리의 대상이 아닌 지원 개념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진두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은 인기를 위한 정책이 아닌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책을 세울 수 있는 대통령 검증 기회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그에 따르면 과학기술 수단사회에서 중심사회로 바뀔 기회가 있었지만 과학이 교육과 녹색에 얽매여 끝나버렸다. 그 많던 과학기술 프로젝트도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토론과 노력이 없었다. 이공계 대통령의 탄생에 과학기술계가 크게 기대했지만 결국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그는 "대선후보들이 캠프를 만드는데 과학기술인을 섭외하지만 결국 표만 끌어오는 정책만 만든 결과가 과학기술계를 오히려 퇴보시켰다. 앞으로는 대선 후보의 과학기술에 대한 생각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대선후보에게 비전 정책 듣는 자리 만들고 의견 모아 과기단체와 함께 준비하는 것이 과학기술에 애정을 가진 대통령 뽑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들의 발언에 STEPI 한 연구자는 "과학기술을 창조예술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성격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로서 관리하고 기획, 보호하는 부분이 간과된 것 같다"며 "과학기술 활동도 일이라고 보고 불합리성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기계 불합리성은 10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과기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높여야하는데 그 부분의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며 "사회역할에서 과학기술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수용해나갈지, 정권바뀔때마다 R&D 투자만 늘리자고 하는데 제도의 합리적 사고는 무엇인지 등의 고민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오늘 발제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심플하게 볼 필요가 있다"며 "문 의원이 연구 애로사항을 과학계에 물었을 때 답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개인에게 물어보면 답이 올 것"이라고 제안했다.

플로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번 합리적대화 참석자들은 과학기술기본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사진=박성민 기자>
플로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번 합리적대화 참석자들은 과학기술기본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사진=박성민 기자>
 
◆ 정부·과기계 '사람 중심' 공감
 
"합리적 과학기술계가 되기 전 젊은 과학기술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15년 전 젊은 과학자였던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도 젊은 과학자로 불린다. 사람의 변화가 없다는 것. 이것이 과학기술계의 현실이다."
 
정우성 아태이론물리센터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젊은 과학자로 토론에 나왔다. 그런데 15년 전 토론자로 나섰을 때도 가장 젊은 과학자였다. 사람의 변화가 없는 것, 이것이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라며 "스포츠와 과학기술 논문을 빅데이터로 비교했을 때 나온 '성공 법칙'은 초기에 많은 기회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기술계에는 내가 15년 전 젊은 과학자였던 것처럼 신진연구자가 없다"라며 신진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정책과 헌법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것이 우리 과학기술은 산업경제 프레임에 그대로 갇혀있다는 것"이라며 헌법 개헌 등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윤태웅 ESC 대표는 "30년 전 이야기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헌법 개헌에 동의한다"며 "과학과 기술을 분리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 그는 합리적인 과학기술계가 되기 위해 "과학기술인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특히 젊은 연구자의 일생에 관심을 두고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정답을 찾아가자"고 덧붙였다.
 
용홍택 미래부 과학기술정책관은 과학기술 정책 키워드로 사람, 분권, 연결을 강조했다. 사람은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을 중심으로 주도적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프로젝트를 내놓고 가장 잘하는 사람을 선정하지만 거꾸로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을 먼저 뽑고 그 사람이 가장 잘 하는 프로젝트 중심의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 정책관은 이어 "기초연구의 경우 하나하나 정부가 관리하는 것은 선진형 연구와 맞지 않는다. 연구원에게 맡겨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연구전문관리기관의 분권을 통해 선진형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결에 대해서 그는 "초연결시대 사회가 주체가 되는 시대다. 올해 부처 간 연결을 통해 매칭펀드와 제도를 내놓는 일관된 R&D를 할 것"이라며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과 출연연, 대기업, 스타트업의 연결도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플로어에서 유명희 KIST 책임연구원은 "과학자 중 미쳐서 하는 사람을 내버려두는 사회가 돼야한다"며 "정답은 현장에 있다. 지금 테크니션이 많이 부족하다. 박사를 늘리기보다 테크니션, 그리고 자기 일에 만족하는 사람이 과기계에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도 플로어에서 과학기술법이 바뀌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신체가 건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향기가 난다. 제대하고 복학한 아들이 대학 4학년인데 땀범벅일때도 향기가 난다"면서 "과학계도 그렇다고 본다. 물리적 나이가 젊어야 쑥쑥 돌아갈 수 있는데 우리는 공적으로 막힌데가 있다. 현장 돌아가게 묶음예산 주고 큰 방향만 잡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실험실이 돌아가야하지 않을까. 실패의 벽에 부딪혀도, 방향이 보이지 않더라도 뛰다보면 답이 있을 것이다. 과기계의 합리적 질서의 키워드 속에 이런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 한 여성과학자는 "공감가는 말들이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라면서도 "그래도 신선했던 것은 지난 토론의 학생 발언이다. (지난 토론에서 KAIST 학생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지난 기사 참고) 그 이야기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이 이런 자리에 참석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한 지역이 아닌 전국을 돌면서 대화를 열었던 것이 좋은 이야기를 드러나게 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화 형식의 토론의 장이 계속 이뤄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한편 이날 토론은 대덕벤처 케이시크(대표 김영렬)에서 개발한 퀴즈설문앱 '땡기지'를 통해 참석자에게 실시간 설문조사를 공유하며 과학계가 나가야할 방향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한국 과학계를 가장 잘 지원할 것 같은 대선주자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위를  안철수 국민의당 전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과학기술기본법의 개정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참여자 대부분(84.2%)이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 과학계 합리적 질서를 위한 과학정책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참석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전원 100%가 그렇다고 답변, 소통의 중요성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헌법상 과학기술기본법 개정 여부를 묻는 현장의 '땡기지' 앱 질문에 참석자의 84.2%가 그렇다고 답변했다.<사진=대덕넷>
헌법상 과학기술기본법 개정 여부를 묻는 현장의 '땡기지' 앱 질문에 참석자의 84.2%가 그렇다고 답변했다.<사진=대덕넷>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