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구성원간 소통 활발···"수평 조직 출발점"
KAIST·표준연이어 기계연까지···특구진흥재단도 귀추 주목

과학기술계에 합리적 소통, 대화 바람이 거세다. 정부출연기관 기관장과 이공계특성화 대학의 수장 선임에 앞서 신입연구자, 직원도 기관장 후보자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공청회'가 확산되는 추세다.

그동안 과학기술계는 이사회에서 선택한 수장 선임 결과를 그대로 따르며 '이사회 밀실 선임' '낙하산 인사'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돼 왔다.

하지만 최근 KAIST를 비롯해 몇몇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수장 후보자들의 정견·소신·비전 등을 공개하며 기관 내부 구성원들이 함께 검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나섰다.

KAIST는 강성모 現 총장의 뒤를 이을 제16대 총장 선임에 앞서 후보자들의 소신과 비전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총장 후보자들은 내부 구성원이 직접 검증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정견발표'를 개최했고, 재학생들은 총장 후보자들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후보자를 검증해 왔다.

KAIST 교수협의회는 지난해 10월 27일 제16대 초장 후보로 선정된 경종민·박오옥·이용훈 교수를 대상으로 정견발표를 개최했다. 이후 교수협 회원의 투표로 경종민·이용훈 교수를 선임했다. 또 총장발굴위원회와 일반 공모를 통해 선임된 신성철 교수를 포함에 총 3명의 내부 교수가 최종 총장 후보 3배수에 올랐다.<사진=대덕넷DB>
KAIST 교수협의회는 지난해 10월 27일 제16대 초장 후보로 선정된 경종민·박오옥·이용훈 교수를 대상으로 정견발표를 개최했다. 이후 교수협 회원의 투표로 경종민·이용훈 교수를 선임했다. 또 총장발굴위원회와 일반 공모를 통해 선임된 신성철 교수를 포함에 총 3명의 내부 교수가 최종 총장 후보 3배수에 올랐다.<사진=대덕넷DB>
앞서 KAIST 교수협의회(회장 권인소 교수·이하 교수협)는 지난해 10월 27일 차기 총장 후보로 나선 경종민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박오옥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이용훈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등의 정견발표 시간을 가졌다.

정견발표는 교수협 회원 투표에 앞서 후보자들의 경영소견을 듣고자 마련된 자리로 KAIST 에서도 처음 시도됐다. 후보자들은 처음 시도되는 제도로 어색해하면서도 구성원들에게 소신껏 비전과 계획을 밝혔다. 정견발표 후 다양한 공통·개별 질문에도 응답했다.

이후 교수협은 지난해 11월 1일과 2일 양일간 560명의 교수협 회원 중 493명(투표율 88.04%)이 참여한 회원 투표를 거쳐 후보 3명 중 경종민·이용훈 교수를 선임했다.

교수협을 거쳐 선정된 두 후보 외에 총장발굴위원회와 일반 공모를 통해 신성철 물리학과 교수가 후보 명단에 올랐다. 최종 총장 후보 3배수에 경종민·신성철·이용훈 교수가 압축된 바 있다.

왼쪽은 KAIST 학부총학생회가 총장 후보자에게 보낸 서면질의서 전문. 오른쪽은 재학생들이 차기 총장 자질을 평가하는 영상.<사진=KAIST 학부총학생회 페이스북 캡처>
왼쪽은 KAIST 학부총학생회가 총장 후보자에게 보낸 서면질의서 전문. 오른쪽은 재학생들이 차기 총장 자질을 평가하는 영상.<사진=KAIST 학부총학생회 페이스북 캡처>
연이어 KAIST 재학생들은 3명의 최종 후보자를 직접 검증하는 절차도 거쳤다. KAIST 학부총학생회는 지난 1월 중순께 후보자에게 KAIST 비전을 묻는 '서면 질의서'를 보냈고, 후보자들은 이에 답변했다.

KAIST 학부총학생회는 질의서 답변을 바탕으로 후보자 공약을 논의하며 차기 총장 자질을 평가하는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재학생들은 총장 선출부터 시작해 다양한 학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기 위한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KAIST 이사회는 강성모 총장 임기가 마무리되리 전 21일께 이사회를 열고 제16대 총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강 총장의 임기는 2월 22일까지다.

한국기계연구원은 13일 내부 직원 50여명을 대상으로 3배수로 선정된 신임 원장 후보들과 간담회 시간을 마련했다.<사진=박성민 기자>
한국기계연구원은 13일 내부 직원 50여명을 대상으로 3배수로 선정된 신임 원장 후보들과 간담회 시간을 마련했다.<사진=박성민 기자>
정부출연연구기관도 기관장 선임에 앞서 후보자 검증에 가세하는 추세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지난 13일 본관에서 50여명의 내부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7대 원장 후보로 선정된 김석준·김완두·박천홍 박사의 소신을 들을 수 있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신임 원장 후보들과의 내부 직원 간담회는 기계연 역사상 처음이다. 처음 시도되는 간담회인 만큼 직원들의 참여가 높았다. 간담회를 주최한 연구원발전협의회와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사전에 준비한 공통 질문을 바탕으로 후보자들과 대화·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김석준 후보는 '팀 중심 연구소 활성화'를 내세웠다. 연구소 핵심을 자유도가 높은 팀 중심으로 만들고 융합연구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팀 중심으로 조직 될 때 주요사업을 창의·원천 과제로 대폭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팀 리더도 국가 공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리더십 전문가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완두 후보는 'GWP(Great Work Place) 문화'를 강조했다. 그는 "사회에서 개인별 자기혁신을 이루라고 요구하고 있다"라며 "조직 내 신뢰도를 높이고,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세우며 융합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 자기 혁신을 이루는 조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천홍 후보는 '대형과제 기획·수행·성과 인프라 체계 구축'을 꼽았다. 그는 "기업들이 인정하는 로드맵을 갖추고 연구 수월성을 보여줘야 할 때"라며 "기업·대학과 경쟁하는 구조가 아닌 협력 구조로 대형과제 성과창출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 후보는 '신임 원장 후보자와 직원 간담회'에 대해 신선한 시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기관의 미래 방향을 내부 직원들과 예측·준비·공감할 수 있는 고귀한 자리"였다며 "각 후보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소통의 출발이다"고 평가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내부 직원은 "후보자들이 발표한 정견은 내부 직원들과의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라며 "신임 원장 선임에 있어 이사회에서 선택하는 결과에만 따르는 문화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소회했다.

한편, 기계연 신임 원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는 2월말께 열릴 예정이다.

한국표준연구원은 지난해 12월 14일 세명의 원장 후보를 초청해 내부 연구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사진=대덕넷DB>
한국표준연구원은 지난해 12월 14일 세명의 원장 후보를 초청해 내부 연구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사진=대덕넷DB>
한국표준과학연구원도 지난달 17일 임명된 박상열 원장 선임에 앞서 3배수 후보들의 정책을 설명하는 내부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표준연 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와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표준연 지부, 표준연 바른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14일 원내 행정동 대강당에서 세명의 원장 후보를 초청해 내부 연구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간담회는 120여명의 내부 연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별도의 자료 없이 즉석에서 질문하고 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준연의 사명과 정체를 비롯해 불합리한 제도·처우 개선책까지 다양한 질의에 후보자들은 성심성의껏 응답했다.

후보자들의 평소 고민의 깊이가 그대로 전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표준연 출신인 후보들도 서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은 대덕특구 구성원들이 특구진흥재단의 미션과 방향에 대해 좌담회를 하는 모습. 오른쪽은 '세계적 R&D 클러스터 생태계 조성 위한 청원서'의 전문.<사진=대덕넷DB>
왼쪽은 대덕특구 구성원들이 특구진흥재단의 미션과 방향에 대해 좌담회를 하는 모습. 오른쪽은 '세계적 R&D 클러스터 생태계 조성 위한 청원서'의 전문.<사진=대덕넷DB>
이런 가운데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이사장 선임에 앞서 공청회 개최 여부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대덕특구 구성원들은 지난해 12월 특구진흥재단이 미션을 바로 세우고 세계적 R&D 클러스터 생태계 조성을 위한 청원서를 작성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이사장 후보 3인의 대덕특구 생태계 조성 계획을 듣는 공청회 개최 ▲이사장 선임에 앞서 구성원의 의견 및 결정 일부 반영 등이 주요 골자다.

청원서는 지난 1일 미래창조과학방속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됐다. 소위원회에서 의원 중 과반수가 찬성 의결했고 추후 미방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 과학자는 "그동안 과학기술계 수장 선정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총의를 반영하는 것은 어려웠다"라며 "혁신 주체들이 적합한 인물을 검증함으로써 각 기관의 정체성 확립과 역할을 정당하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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