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용 교수, 수소문 끝 가족 찾아 제안 ···'상' 제정 주도
강 박사 '미 발명가 명예의 전당' 헌액···첫 수상 박병국 서울대 교수·노형동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반도체 대가 강대원 박사를 기리기 위한 상이 제정됐다.<사진=SK하이닉스 블로그 캡쳐>
반도체 대가 강대원 박사를 기리기 위한 상이 제정됐다.<사진=SK하이닉스 블로그 캡쳐>
컴퓨터 조상으로 알려진 에니악은 1946년 완성된 최초의 대형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다. 1만8000여개의 진공관이 사용돼 높이 5.5m, 길이 24.5m로 무게만 30톤에 달했다. 방 하나를 차지해야할 정도로 크기가 어마어마했지만 성능은 계산이 전부였다. 최초의 컴퓨터는 단순한 대형 계산기였다.
 
대형 계산기로 시작했지만 컴퓨터는 현재 군사, 업무, 교육, 연구 등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크기 또한 책상 위 데스크탑에서 들고다닐 수 있는 노트북, 전화 속으로 들어가 휴대도 간편해졌다. 내 손안에 컴퓨터를 실현시키는 기술, 그 안에 '반도체 기술'이 있다.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기초가 되는 모스펫(MOSFET)이라는 기술이 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인 강대원 박사다. 모스펫 기술의 아버지인 셈이다.
 
강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석박사 취득 후 미국 벨 연구소에서 모스펫과 플로팅 게이트를 개발했다. 모스펫은 SK 하이닉스의 메모리장치인 D램, 휴대폰용 통신칩 등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기초가 되는 기술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플로팅 게이트는 메모리칩에 정보를 저장하고 삭제하고 다시 저장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이나 MP3, 디지털카메라에 정보를 저장 및 삭제가 가능한 것도 다 이 기술 덕분이다.
 
미국에서 오랜시간 연구생활을 한 그는 1988년 벨 연구소 은퇴후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해 장기적인 기초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 NEC연구소 창립 사장으로 부임하고, LG전자의 고문을 맡았다. 그러던 1992년 학술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뉴저지 인근공항에서 쓰러져 응급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1세였다.
 
그의 업적은 이미 미국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에디슨과 라이트형제, 알렉산더 그레험 등이 헌정되어있는 미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강대원 박사가 한국인 최초로 2009년 헌액됐다.
 
최근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많은 후배들이 나서고 있다. 한국반도체학술대회도 반도체인들의 자부심을 높이자는 취지로 '강대원상'을 제정했다. 첫 시상은 13일~15일까지 대명비발디파크에서 개최된 '제24회 반도체 학술대회'에서 열렸다.
 
지난 14일 저녁에 열린 시상식에서 첫 수상의 영예는 박병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와 노형동 삼성전자 책임연구원에게 돌아갔다. 강대원 박사의 여동생과 남편이 수상 및 꽃다발을 전했다.
 
한국반도체학술대회 상임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정진용 인하대 교수는 "한국이 배출한 반도체 기술의 대가를 기념함과 동시에 저명한 분 이름의 상을 받음으로써 수상자도 큰 자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17여년간의 노력, 강대원상 제정되다
 
정진용 교수.<사진=한국반도체학술대회 뉴스레터 캡쳐>
정진용 교수.<사진=한국반도체학술대회 뉴스레터 캡쳐>
"반도체 저명한 인사 이름을 딴 상 중 한국인 이름은 없었다. 강대원 박사의 이름을 딴 상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정진용 교수는 강대원상 제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연구자다. 강대원상 제정을 제안한 것도, 연락이 닿지 않았던 강 박사의 가족들을 찾아 설득한 것도 정 교수다.
 
그가 강대원상을 제정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0년도 더 된 2000년 초 일이다. IEEE(국제전기전자학회)에서 일하던 정 교수는 당시 반도체 분야의 저명한 인사 이름으로 된 상이 많이 제정되어있는 반면 한국인 이름이 없는 것을 알게 됐다. IEEE ISSCC에서 아시아 지역 논문상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을 때 강대원 상을 만들 기회가 있었지만 강대원 박사 가족과 연락할 방법이 없어 고배를 마셨다.
 
기회는 한국에서 찾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강 박사의 지인을 만나게 됐다.
 
"고려대 김기석 교수와 강대원 박사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 미국 벨의 랩에서 함께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락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정 교수는 2013년 한국반도체학술대회 상임위원회 비공식 모임에서 강대원상 제정을 제안했다. 이후 정식 논의를 거쳐 2014년 한국에서 생활 중인 여동생 가족과 연락해 강 박사의 부인과 만나 승낙을 얻었다.
 
상 제정과정에 그는 강 박사를 아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의외의 지인이기도 했다. 한국반도체학술대회 상임위원장인 박영준 교수의 부친이 강대원 박사와 가깝게 지내며 어려웠던 6.25 시절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애썼다는 것.
 
그는 "강대원상 제정을 2세분들과 함께 만들 수 있게 돼 인연으로 생각한다"며 "IEEE에서 강대원상을 만들지 못한것이 오히려 한국에서 더 의미있게 만들 수 있게 됐다. 강대원상을 통해 많은 반도체 연구자들이 큰 자부심을 갖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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