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원의 영국에서는]브렉시트 그 후 영국은①

브렉시트의 영향은 단지 영국과 유럽에 국한되지 않았다. 세계 질서의 변동과 재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 대선으로 그 경향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16년 6월 23일 영국 국민의 51.9 %가 유럽연합탈퇴(BREXIT) 찬반 투표에서가 탈퇴를 선택했다.

BBC앵커들을 비롯해 잔류를 당연시했던 많은 이들은 탈퇴 결과에 황망해 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거냐는 충격이 한 동안 이어졌다. 유럽에서 태어났는데 어른들이 우리를 유럽에서 쫓아 냈다고 절규하는 젊은 세대들의 분노의 목소리는 특히 높았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점차 노골화되어 간다는 보도도 들렸다.

◆ 브렉시트 결정 후 어려워진 영국경제

탈퇴의 결과는 가혹했다. 환율을 비롯한 제반 경제지표가 급속히 나빠졌고, 산업계 등 각계의 우려는 커졌다. 기업들이 본사를 독일로 옮긴다는 소식도 들린다. 제조업이 많이 사라진 영국이 국가의 부를 형성해온 금융과 교육산업의 기반도 흔들릴 우려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이 파운드화를 유지하면서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연합에 소속돼 있어 유로화를 연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연합에서 탈퇴함으로써 레버리지 수단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금융시장의 중심이 런던에서 독일 프랑크프루트로 이동되고 있다고 한다.

제조업은 사라졌어도 기초과학과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깊은 뿌리와 문화를 유지해 온 영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교육산업을 운영해 왔다.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학비와 생활비가 소요되는 영국으로 각국의 많은 학생들이 온 것은,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과 함께 영국 학계의 축적된 연구성과와 이를 수행하고 있는 우수한 교수진, 연구진들 덕분이었다.

집권 보수당이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대학교 재정 지원을 대폭 감축했고 그 결과 영국 대학교 학비가 무려 200%나 인상되었어도 세계 학생들은 영국을 찾았다.

그러나 유럽연합 탈퇴는 영국의 연구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교육산업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영국의 제한된 연구기금만으로는 부족해 영국의 연구자들은 주로 유럽의 연구기금을 사용해 왔다. 우수한 연구성과와 연구인력을 축적한 영국은 유럽기금사업 참여에 유리하고, 이는 다시 세계 유수 연구인력을 유인하는 기반이 됐다.

그런데 영국의 연구진들이 유럽 연구기금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면 우수한 연구인력들은 흩어질 수 밖에 없다. 영국의 교육산업은 학생들을 유인하기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나쁜 것만 있지 않다. 당분간은 경제적으로 힘들겠지만 유럽의 간섭에서 벗어나면 과거 대영제국의 자존심과 영광을 회복할 수 있고 국민들의 내부결속을 다지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또한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돌연 영국은 유럽의 저가 쇼핑지역으로 각광을 받으며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이 또한 원가 구조상 이것이 오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연합 탈퇴를 어떻게 진행할지는 아직도 의회에서 협의 중이다. 유럽연합과 연결된 사안들이 매우 많아서 각각을 어떻게 조정하고 보완할 것인지를 내부에서 그리고 유럽연합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과정을 주관하고 있는 현 메이(Theresa Mary May) 수상이 강경한 탈퇴(Hard Brexit) 입장을 보일 때마다 환율 등 경제지표가 다시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산업계는 총리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어 탈퇴 과정도 평탄치는 않을 것이라 전망된다.

◆ 브렉시트의 원인은 누적된 양극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에 세계는 물론 영국 국민들도 몹시 놀랐으나 사실 그 원인이 갑자기 형성된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어진 영국의 양극화가 근본 원인으로 언젠가 닥칠 상황이었다.

연구나 금융 등 국제적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국제사회로 기회를 넓히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는 유럽연합의 가치가 높다. 그러나 제조업 붕괴와 빈부 격차의 확대로 대도시 이외 지역 주민들은 유럽연합의 가치를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영국의 양극화는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2013) 수상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1980년대 영국 정치를 주도했던 대처 수상의 경제정책은 영국의 빈부격차와 지역격차를 불러왔고 영국 제조업의 붕괴를 초래했다. 또 국민을 혜택 받는 자와 버림 받은 자로 나누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대처 수상은 화학을 전공하고 정계로 가기 전까지 연구원으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라는 점 보다 최초로 과학을 전공한 수상임을 자랑스러워 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소외된 다수였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영국이 더 잘살게 되었다는데 이들의 삶은 점점 힘들어진 것이다.

제조업 붕괴로 일자리는 줄어가는데, 동유럽과 난민 등 이주해 온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노동시장을 빼앗고 있으며, 이들 때문에 복지 혜택도 줄어들고 있었다. 근래에는 테러의 위협이 빈번해지면서 난민들에 대한 경계는 강화되었지만 소외된 다수의 불안감과 불만이 수십년간 누적돼 왔다.

이들의 불편함을 왜곡해 표출시킨 것은 영국의 극우파 정치인들이었다. 독립당(Independent Party) 과 일부 보수당 정치인들은 그러한 불편함의 원인이 유럽연합 가입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의 규정 때문에 외국인 이주를 받아야 하니 영국 국민들은 더 힘들어지고 영국은 점점 무력해진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대중적 지지를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도 탈퇴를 기대하지 않았고 탈퇴 결과를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캐머런 (David William Donald Cameron) 보수당 총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국민투표를 강행함으로써 자신도 사임하게 되었고 유럽연합에서 특별했던 영국의 지위도 상실되었다.

◆ 대영제국 신화의 허상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했던 이들은 유럽연합의 탈퇴로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유럽의 간섭에서 벗어나면 장기적으로는 과거처럼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미국과 영국 등 소위 선진국들의 주도로 세계화가 세차게 진행되어 왔다. 이는 날로 강화되고 있어, 이를 거스르면서 고립된 국가가 세계화된 시장과 경쟁하여 세계를 주도한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동이 자유로운 현대에서 국가간 빈부의 격차는 가난한 나라에게만 재앙이 아닌 듯 하다. 가난이 극심하면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이주를 시도하며, 기왕 위험을 감수하고 이주하려면 가급적 부유한 지역으로 가려고 한다.

그로 인해 부유한 지역에는 가난한 곳에서 온 이주민들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일자리, 복지, 치안, 문화충돌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사회적 갈등도 증가하게 된다.

결국 부유한 곳일수록 빈부격차의 영향을 받는 정도는 커진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부유함의 원인이 다른 곳의 빈곤을 대가로 한 것일 경우 책임도 커질 것이다.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영제국의 영화를 다시 찾자고 하지만, 과거 영국과 유럽 제국들은 그들의 식민지에서의 자원체굴 및 불평등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러한 식민지 확보경쟁이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선조들이 제국의 영광을 창출했던 부는 결국 그들의 식민지에 고통과 빈곤 그리고 갈등을 남겼고 이것이 오늘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난민을 양산하는 원인이 됐다.

자로 그은 듯 직선으로 만들어진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선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당시 아프리카는 국가 개념 없이 부족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일방적인 국경 설정은 한 부족을 여러 국가로 나누거나 여러 부족을 하나의 국가로 편입시키면서 부족간 갈등을 유발시켰다.

특히 식민지 지배를 위해 소수 부족이 다수부족을 지배하도록 함으로써 부족간의 극심한 갈등과 살상이 이어져 왔고 그 지역민들은 이 같은 갈등을 피해 험난한 이주를 선택하기도 했다.

또한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미국과 영국 등 동맹국들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과 중동지역에서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IS를 탄생시켰고, 시리아 난민들을 양산하게 됐다. 이제는 그 IS의 테러조직과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와 유럽 각 국가의 심대한 골치거리가 된 것이다.

결국 영국은 선조가 외상으로 받은 혜택을 후손들이 갚아야 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선조들의 화려함을 치장했던 외상값을 후손들이 갚아야 하니 한편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상값은 외면하면서 대영제국 신화의 재현을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실현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은 영국과 비교된다. 영국과 달리 독일은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이긴 하나 식민지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유럽 이외의 국가들에게는 역사적 채무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난민을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독일에서 여러 사건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독일이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적극 수용하며 선진 국가로서의 책임을 이행하고 있어, 향후 난민들이 독일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 고립주의와 세계화는 양립할 수 있을까?

앞서 기술하였듯이 근래 영국과 미국의 고립주의는 스스로 주도했던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세계화에서 단물이 더 이상 없으니 세계화로 피해를 본 이들을 앞세워 고립주의를 택하려는 듯 하다.

그러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21세기에 고립주의가 생존할 수 있을까? 제조업이 붕괴된 영국이 세계를 시장으로 넘나드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나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영국의 고립주의는 망하는 길이 될까?

아직 정확히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렇다고 고립주의가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특히 우리의 관심사인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우리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영국의 고립주의가 주는 시사점은 여럿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 볼 예정이다.

◆ 김도원 박사는
김도원 박사.김도원 박사.

영국에 거주 중인 김도원 박사는 브렉시트 등 유럽의 다양한 이슈들을 한인 과학기술자의 관점으로 해석해 전달할 예정입니다. 특히 이슈들이 우리나라와 과학기술, 과학기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나름의 시각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혹시 독자들께서도 관심이 가는 주제나 이슈를 전달해 주시면 적극 반영해 글을 작성 할 예정입니다.

김도원 박사는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친 후 에너지 화학기업에서 15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영국 University of East Anglia 에서 환경과학 박사학위를, 그리고 영국 Lord Ashcroft International Business School에서 경영학 석사 (MBA)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영국 Cambridge에 위치한 TransScientia 에서 컨설턴트로 있으며 유럽의 한인과학기술자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 이어 올해 다시 EKC(Europe-Korea Conference) 프로그램에 대한 총괄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2014년부터 유럽에너지환경한인전문가포럼 (K4EF) 을 운영하면서 유럽에 흩어져 있는 한인 에너지환경전문가들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유럽의 한인과학기술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동반성장을 위한 적정기술협회(I-DREAM)의 창립 멤버로 아프리카 지원 프로젝트와 농업에 기반한 자립형 생태산업마을을 아프리카에 조성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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