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전문가 3인 '표준화된 나노 안전성 기준 마련' 한 목소리"효능과 안전의 균형점 찾고, 사회적 관심 제고해야 해"

 

<사진=윤병철, 디자인=권오현>
<사진=윤병철, 디자인=권오현>
머리카락의 8만 분의 1 크기. 과학의 원리로 만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물질이 있다. 바로 나노다. 아주 미세한 물질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나노는 입자와 효능의 크기가 반비례한다. 나노입자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에 따라 표면 활성화 능력과 효능이 커지는 것이다. 나노 수준으로 매우 작은 입자가 되면, 주변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

과학적 용어로만 사용되던 '나노'가 대중의 급격한 관심을 받게 된 때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살균세탁 하셨나요"라는 콘셉트로 등장한 은나노 세탁기에 이어 은나노 항균 마스크, 은나노 양말까지. 최근엔 자외선 차단제에 활용되는 이산화티타늄(TiO2)와 산화아연(ZnO), 반도체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탄소나노튜브 등 다양한 나노물질이 주목을 받고 있다.

나노제품은 소비자들에게 최첨단기술의 산물로 각인되며, 출시되는 나노제품들은 베스트셀러 자리를 고수했다.

나노에 대한 이슈가 대두될수록 안전성 논란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은나노 세탁기는 수출 직전, 미국으로부터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을 받았고, 결국 수출을 포기해야 했다. 나노입자가 신경세포를 손상하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등 나노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나노물질 자체의 유해성 외, 위해성 정도를 가릴 수 있는 기준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나노 전문가 3인이 '표준화된' 나노 안전성 기준 마련의 중요성에 중지를 모았다. 송남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안전표준센터장, 이중원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이학석사/철학박사), 송경석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바이오융합연구소 박사가 나노소재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첫 걸음으로 '나노 안전성 기준 마련'을 꼽으며 소통했다.

나노안전? 효능과 안전의 균형점 찾아야!
 
송경석 박사 : 국내에서 나노안전성 문제가 대두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시작은 석면 논란이었다. 우리 산업에 큰 기여를 했던 석면은 마찰력, 단열효과에 탁월해 최고의 건축자재로 꼽혔다. 하지만 안전성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게 문제였다. 석면은 특성상 20년 이상 지나서야 노출에 의한 위해성이 발현되는데 한창 사용될 당시에는 그 위험을 인지하지 못 하다가 20~30여 년 전 부터 악성중피종과 같은 폐질환의 위험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송남웅 센터장 : 2000년대 중반, 산업적 측면만 강조해 발생한 석면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나노안전성 평가 연구에 착수하게 됐다. 대표적 나노물질인 탄소나노튜브는 석면과 구조가 비슷하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석면 위해성 분석 결과는 각 기관마다 일치했으나 나노의 경우 나노물질이 독성 내포 유무와 크기와 모양, 측정기관의 실험 방법에 따라 결과가 모두 달랐다. 표준화된(합의된) 나노 안전성 기준이 필요한 이유였다.

송경석 박사 : 초창기에 우리나라 기업의 은나노가 나노 대표물질로 선정된 바가 있다. 이제는 새로운 표준 물질도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송 센터장의 역할이 아닐까?(웃음)

송남웅 센터장 : 유럽, 미국 등 나노기술 선진국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한 2013년 NANOReg 프로젝트도 최근 좋은 성과를 거뒀다. 표준연도 시설과 기술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 선두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표준연 과제를 통해 표준나노물질 3개를 개발했다. 크기분석용 실리카(SiO2) 나노입자 인증표준 물질 2개와 비표면적 측정용 타이타니아(TiO2) 인증표준 물질 1개다. 세포수준의 독성을 평가하는 측정 표준 절차서 6건 개발도 거의 마친 상태다. 절차대로라면 누구나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절차서들은 국제 비교를 통해 절차서 대로 비교 측정을 하고, 검증까지 완료했다.

송경석 박사 : 나노를 이용한 제품의 효능을 중시할수록 안전문제는 제기될 수밖에 없다. 효능성과 안전성의 상관관계에서 그 균형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송남웅 센터장 :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공신력 있는 주체가 '나노는 안전하다'고 인증해주는 것일 거다.  물론 국민들에게 '안심'을 줄 수 는 있다.  하지만 나노가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잠재적' 위해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명확한 검증이 없이 '안심'하라고 만 할 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송경석 박사 : 아직까지 나노제품의 안전성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송남웅 센터장 : 현재까지의 과학적 지식수준으로는 아직 나노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나노물질은 안전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나노의 위험 요소에 대해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기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나노물질에 대한 측정 표준을 만들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보면 된다.

이중원 교수 : 정보의 부재가 혼란을 일으킨다. 나노뿐 아니라 어떤 물질이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제도적, 기술적 관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나노가 기존의 물질들보다 활동성이 높아 잠재적인 유해성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효능과 안전의 균형점을 포착해, 안전하면서도 실용적인 나노제품을 만들면 된다.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내야 하나? 표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표준이 확보되면 그 다음 (어느 수준으로 위해를 끼치는지) 영향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영향평가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을 넘어서는 제품은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다. 안전성에 대한 분석, 표준화, 평가 과정을 통해 기준을 충족할 수 있게 하는 관리가 필요하다.

송경석 박사 : 유해물질이 나노제품에서 어떻게 노출되며,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위해한지에 대한 평가와 분석 역시 표준이 이뤄져야 한다.

이중원 교수 : 나노안전은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나노가 ‘유익한 것이냐, 위해한 것이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보다 건전한 논의를 위해 빨리 그 잣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나노제품이 일상의 소모품으로 쓰였다면, 2010년 이후부터 탄소나노튜브가 각광받으며 나노물질은 우리 삶에 혁신을 가져왔다. 나노안전 관리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안전 시스템을 마련해 나노제품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세상에 나오게 될 때를 대비해야 한다.

송경석 박사 : 최근에서야 나노안전성 평가 기준을 만드는데 중지가 모아지고 있다. 표준연이 그 기준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표준연이 할 일이 더 많아지겠다.(웃음)

◆나노는 유해하다? 위해하다?

송경석 박사 : '유해성'과 '위해성' 구분에 주의해야 한다. 나노 관련 기사에 '유해성'이란 단어가 많이 쓰이는데, 이는 'hazard' 개념이다. 반면, '위해성'은 '유해성'에 '노출'이 더해진 상황이다. 유해하더라도 아직 노출되지 않으면 위해한 상태는 아니라는 거다. 유리병 안에 가둬져있는 휘발성을 가진 독성물질을 예로 들자. 그 상태로는 아직 '위해'하지 않다.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에 비로소 '위해성'이란 말을 쓴다.

이중원 교수 : 나노안전을 언급할 때 '유해성', '위험' 이란 표현을 쓴다. 유해성은 앞서 언급했듯이 나노물질 자체가 갖고 있는 성질을 말한다. 나노물질이 자연환경, 인간과 접촉하지 않으면 '아직 위험하지 않은 상태'로 분류된다. 하지만 '유해성'을 가진 나노물질이 나노제품화 돼 인간에게 노출되면 위험은 발현될 것이다. 이것이 앞서 말한 위해성이다.
 

 

참석자 모두 나노안전성 평가 기준을 만드는 데 중지를 모았다.<사진=윤병철 기자>
참석자 모두 나노안전성 평가 기준을 만드는 데 중지를 모았다.<사진=윤병철 기자>

◆나노안전은 양날의 검

이중원 교수 : 나노안전성에 관해 해야 할, 복잡한 일이 많다. 나노물질에 대한 특성연구에서부터 나노제품의 위해성 분석까지. 굉장히 복잡한 형태다. 물론 나노안전성은 나노물질에 대한 유해성 평가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표준화 작업이 필요한데,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돼야 나노제품에 대한 안전성을 논할 때 구체적인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을까?

송남웅 박사 : 나노안전성은 국제적 합의가 중요하다. 모두 함께 나아가는 분위기다. 아마 5년 정도 지난다면 나노물질 독성에 대한 신뢰성 있는 결과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나노제품의 원료물질로 사용되는 소재 차원에서의 독성은 신뢰성 있게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중원 교수 : 연구 지원 규모는 어떠한가, 현재 적정한가?

송남웅 박사 : 1년에 4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현재로서는 연구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나노제품이 문제다. 아시다시피 다양한 형태로 나노물질이 제품에서 이탈락된다. 원래 있던 소재 성질이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이탈락되는 물성평가 단계까지 고려한다면 나노제품의 안전성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10년 후는 내다봐야하지 않을까.

이중원 교수 : 지속적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송남웅 센터장 : 송경석 박사에게 질문이 있다. GLP 인증기관 운영책임자로 있으면서, OECD GLP 가이드라인에서 나노물질 적용에 따른 시험법 중 시험법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송경석 박사 : 흡입독성실험 분야가 대두되어 OECD에서는 이미 보완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하나는 생태독성시험 분야이다. 입자의 특성이 달라 기존 실험방법으로는 실험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리화학적인 특성연구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다양한 분야로 나노과학이 발전하고 있다. 향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위해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떻게 하면 나노융합산업이 안전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이중원 교수 : 미국 NNI(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s)는 나노기술에 관한 모든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나노 연구·개발 및 산업화 관련 기관 곳곳에 영향을 끼치는 최상위 기구다. 매우 체계적이며, 나노에 관한 모든 문제제기와 고민을 이끌어 가는 선도적인 하향식 틀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개발'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나노물질에서 제품에 이르기까지 NNI와 같은 총괄적인 체계 없이 각 부처단위별로 자신에 해당되는 영역에 국한된 개발만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우리나라도 적어도 나노 안전성에 관한 한 체계적인 나노안전정책 수립을 위해 해당 전문가들로 구성된 총괄적인 최상위 기구가 필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 위원회가 존재하고 실무적으로 이를 서포트할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개발과 안전이 균형있게 논의되며, 불필요한 논의도 줄일 수 있다.

또 기술개발에만 몰입하면, 외부에서 안전과 관련한 문제제기가 들어왔을 때 대응하기가 어렵다. 이에 안전에 관한 R&D에 투자하는 제도도 함께 만들어지길 바란다.

송남웅 센터장 : 나노안전성이라는 게 양날의 검이다.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산업(기업)도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다.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민(소비자)의 안전 보장이 선결되어야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표준화된 측정기술로 기업의 규제대응과 이를 통한 안정적 성장과 함께 이를 뒷받침해 줄 안전성 확보를 통한 대중의 보호 양쪽 모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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