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간다⑤]이문용 지제이엠 대표의 이유있는 도전
플렉서블 OLED 생산 원천기술 확보
대만·중국·일본 등 해외시장 개척···모든 장비 직접 설계·제작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OLED 플렉서블 생산기술 개발. 주변에서는 듣자마자 뜯어 말렸고 미친 짓이라고 혹평했다. 한 두푼 투자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미래를 봤다.

나이도 어리고 학벌, 네트워크, 자금 등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 없는 한 벤처기업이 대기업도 힘든 원천 장비기술 개발을 위한 과감한 도전에 성공했다. 

천안에 소재한 지제이엠(대표 이문용)은 최근 한국기계연구원과 협력해 국내 최초로 조명과 디스플레이 등 다양하게 활용되는 OLED를 보다 간단한 공정으로 만들 수 있는 롤투롤 플렉서블(Roll-to-Roll Flexible) OLED 생산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지제이엠은 OLED 증착원 핵심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으로 국내 대학 연구실에 연구용 증착장비를 납품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만, 일본, 중국 등 해외에 증착원을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OLED 증착원 핵심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 지제이엠 전경.<사진=강민구 기자>
OLED 증착원 핵심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 지제이엠 전경.<사진=강민구 기자>
◆ 기계연 기술 활용 OLED 생산공정 기술 개발···"웨어러블 등 소자 활용 가능성 높아"

1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라 영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기술력과 시설은 여느 중견기업 부럽지 않다. 또 회의실, 세미나실, 연구실을 둘러보며 확인한 각종 장비와 설비들이 쟁쟁하다. 

지제이엠에서 핵심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정재훈·김민석 지제이엠 연구원과 권신 기계연 박사는 롤투롤 플렉서블(Roll-to-Roll Flexible) OLED 생산기술 개발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기존 기계연이 보유한 롤투롤 인쇄전자 기술을, 지제이엠이 구축한 OLED 생산공정에 적용했다. 직접 설계·제작한 롤투롤 진공증착 장비를 활용해 롤 형태의 필름에 OLED 발광 유기층과 금속 전극층을 차례대로 증착하면서 하나의 챔버 안에서 유연한 OLED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생산 가능한 OLED 제품은 1∼수 백 나노미터(㎚) 수준의 매우 얇은 다층의 유기, 무기 박막으로 구성되며 각 층은 진공 열증착 공정을 통해서 제조된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권신 박사가 상주하며 각종 자문을 수행했다. 연구진은 처음 시도하는 기술에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첫 샘플이 나왔지만 불이 켜지지 않았다. 유리에서 발광되는 기술과 필름에서 발광시키는 기술은 차이가 있었다. 연구진들은 3개월에 걸친 시도 끝에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까지 유연한 OLED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했다. 유리판에 필름을 붙인 다음 그 위에 증착과정을 거치며 OLED를 만들고 다시 그 유리판에서 필름을 분리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국내 대기업에서 출시한 스마트폰에 활용된 한 쪽면만 휘어진 디스플레이도 이같은 방식으로 유리에 필름을 부착하거나 코팅한 다음 증착장비를 순환하며 OLED를 만들고 유리에서 다시 OLED를 분리하는 공정을 활용했다. 필요한 단계에 따라 여러 개의 증착장비가 추가로 필요할 뿐 아니라 필름을 부착하고 분리하는 추가 공정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진이 생산에 성공한 300mm 소자.<사진=한국기계연구원 제공>
연구진이 생산에 성공한 300mm 소자.<사진=한국기계연구원 제공>
개발된 기술을 적용하면 진공상태의 챔버 안에 롤 형태로 감겨있는 필름을 흐르게 한 뒤 그 위에 원하는 유기층과 무기층을 연속적으로 증착시키는 ‘다층 증착’ 공정으로 OLED를 제작할 수 있다. 제작에 필요한 시간과 설비가 대폭 감소해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도 유연한 OLED를 제작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기존 LED와 달리 점이 아닌 면 단위의 제작이 가능하고, 유연한 성질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스마트 TV, IoT 장치, 조명산업 등에 활용될 수 있다.

현재 롤투롤 OLED 연구는 전세계로 확장해 살펴봐도 일부 국가에서만 수행하고 있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와 본 아르데네 기업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3년부터 후지필름, 히타치화학, 도레이 등 13개 연구기관, 기업이 참가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국가적 차원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14년 OLED 시장조사업체 유비산업리서치(UBI Research)에 따르면 오는 2020년 OLED 조명의 시장규모는 45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디스플레이 분야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IDTechEX'에서도 플라스틱·유연 디스플레이 시장이 오는 2020년 16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는 등 발전 가능성이 높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Organic Light Emitting Diode)는 유기 화합물에 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자체발광현상을 이용하여 만든 디스플레이 소자를 의미한다. 반응속도가 LCD 대비 1000배 이상 빠르고, 박막 공정이 가능해 차세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로 주목받고 있다.

권신 박사는 "롤투롤 진공증착 장비를 이용하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 플렉서블 OLED를 기존 공정보다 훨씬 간단하고 단순한 공정만으로도 연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며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는 국내 연구개발이 정체되어 있고 중국의 추격이 가파른 만큼 기술격차를 확보하고 우위를 점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핵심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권 박사는 "실제 디스플레이 제품에 사용되는 빨강, 녹색, 파랑 개별 화소를 제작할 수 있는 미세 패턴 마스크 얼라인 기술을 포함해 개발 중에 있다"며 "이 기술이 완성되면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로의 적용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온에서 증착원을 코팅하는 장비(왼쪽)과 정제 장비(오른쪽). 모든 장비는 지제이엠 연구진이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사진=강민구 기자>
고온에서 증착원을 코팅하는 장비(왼쪽)과 정제 장비(오른쪽). 모든 장비는 지제이엠 연구진이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사진=강민구 기자>

김민석 지제이엠 연구원이 직접 설계하고 개발한 롤투롤 진공증착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김민석 지제이엠 연구원이 직접 설계하고 개발한 롤투롤 진공증착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지만 직원과 성과 내기 시작···히든챔피언 될 것"  

"사실 저는 고졸 출신이에요. 대기업 출신도 아니고 대학 졸업장이 있는 것도 아니죠.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네트워크도 없었습니다. 국내 시장은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시작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지제이엠을 이끌고 있는 이문용 대표는 지난 2007년 회사를 차렸다. 처음 사업 아이템은 프린터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은행 대출을 받아 컨테이너에 사무실을 구하고 직원 2명과 함께 잉크를 충전하는 등 재생토너를 중점적으로 공급했다. 그런데 관련 부품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 들면서 하루에 버는 돈이 3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을 접을 무렵 이 대표는 우연히 OLED 기술을 접할 수 있었다. 기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 분야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택했다. 

처음 시작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에게 OLED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을리 만무했다. 이 대표는 연구소, 대학 등의 연구진에 직접 전화를 걸고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지식을 쌓아갔다. 고졸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문전 박대를 당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럼에도 끈기를 갖고 기술개발 투자와 연구를 지속했다.

무엇보다 김민석 연구원, 정재훈 연구원 등 전문 연구자들을 속속 합류시키면서 OLED 분야에 대한 사업적 체계를 완성시켜 나갈 수 있었다. 이 대표는 현재까지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직원들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저는 아직도 전문지식이 부족해요. 연구진들이 잘할 수 있도록 백업하는 것이 제 역할이죠. 함께 해온 동료들이 회사에서 밤새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줘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입구 오른쪽의 'Innovation, Creating, Thinking' 문구와 왼쪽의 'OLED, Solar' 문구가 적혀있는 것이 흥미롭다.<사진=강민구 기자>
사무실로 올라가는 입구 오른쪽의 'Innovation, Creating, Thinking' 문구와 왼쪽의 'OLED, Solar' 문구가 적혀있는 것이 흥미롭다.<사진=강민구 기자>
직원 10여명 남짓한 작은 회사이지만 모든 장비 기술개발은 직접 한다. 대기업과 달리 정보나 네트워크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원하는 장비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던 것이 오히려 회사의 경쟁력이 됐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탄생한 진공증착장비 개발 등을 계기로 단기간 내 기술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번 기계연과의 연구개발 과정에서도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진화된 제품을 완성하게 됐다. 

"인적 네트워크나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연구진들이 직접했습니다. R&D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은 했지만 과감한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얻어지는 경험이 컸습니다."

아직까지 주변 대기업 등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이에 대해 연연해 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경쟁해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철저히 시장에 순응하는 전략을 택했을 뿐이죠. 우리가 만든 기술과 제품이 최고인줄 알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소비자가 답이었고 조건을 맞췄던 것이 해외 시장 판로를 개척하는데 힘이 되었습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에 대해서도 과분하다는 입장이다. 외국과 달리 한국은 좋은 조건에서 지원받을 기회가 많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국가에서 중소기업에 대해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으며 외국에 비해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창업 초기에 지원제도를 몰라서 활용하지 못했었지만 최근에는 필요한 정책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5년에서 10여년 함께 해온 직원들과는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다. 각자 본인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충실한다. 현재 매출액 규모는 15억원 수준이지만 연구개발과 해외 판로를 지속적으로 개척하며 세계적인 히든챔피언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도전이다. 이 대표는 이번 성과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기반으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동안 문제에 닥치면 피하지 않았습니다. 회피하기 보다는 해결하려고 노력했죠. 이번 성과의 의미는 일반 중소기업에서 하기 어려운 성과를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얻은 자신감을 기반으로 앞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통하는 히든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과감한 도전을 하고 있는 이문용 지제이엠 대표.<사진=강민구 기자>
과감한 도전을 하고 있는 이문용 지제이엠 대표.<사진=강민구 기자>

정재훈 지제이엠 연구원, 권신 기계연 박사, 이문용 지제이엠 대표, 김민석 지제이엠 연구원.(왼쪽부터)<사진=강민구 기자>
정재훈 지제이엠 연구원, 권신 기계연 박사, 이문용 지제이엠 대표, 김민석 지제이엠 연구원.(왼쪽부터)<사진=강민구 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