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은 여사 KAIST에 1억원 기부···'신중훈 장학기금' 조성
"故 신중훈 교수가 못다한 꿈, 제자들이 이뤄주길"
KAIST 교직원 7월 모금 활동 예정···"하버드대·칼텍에 동참 부탁할 것"

나노과학 분야 천재과학자로 꼽히던 故 신중훈 KAIST 교수의 부인인 홍영은 여사가 7일 오전 대전 KAIST 본원 행정본관 4층 제2회의실에서 1억원의 발전기금 약정식을 가진 후 신성철 총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KAIST 제공>
나노과학 분야 천재과학자로 꼽히던 故 신중훈 KAIST 교수의 부인인 홍영은 여사가 7일 오전 대전 KAIST 본원 행정본관 4층 제2회의실에서 1억원의 발전기금 약정식을 가진 후 신성철 총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KAIST 제공>
"남편이 이루지 못한 꿈을 후배들이 이룰 수 있도록 '신중훈 장학기금'을 조성하게 됐습니다. 공부에 열정을 가진 KAIST 학생들이 남편의 연구를 이어가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국 나노과학기술 분야의 촉망받는 리더 연구자로 손꼽혔으나 작년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48세 젊은 나이에 영면한 故 신중훈 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교수. 그의 부인인 홍영은 여사가 KAIST 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지난 7일 KAIST 본관 4층에서 홍영은 여사의 발전기금 약정식이 열렸다. KAIST는 기부자 뜻에 따라 '신중훈 장학기금'을 조성해 나노과학기술대학원과 물리학과 학생 중 성적 우수 학생을 선발해 내년부터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홍영은 여사는 "고인의 모교인 하버드대학과 캘리포니아공대에도 '신중훈 장학기금' 모금 활동의 취지를 알리고 올해 7월부터 모금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며 "신중훈 교수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신성철 총장은 "평생 연구와 교육에 헌신하신 故 신중훈 교수와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KAIST에 기부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기대를 학교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글로벌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래는 홍영은 여사와의 일문일답.

홍영은 여사가 장학기금 1억원 기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홍영은 여사가 장학기금 1억원 기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Q. 장학기금 1억원 기부 배경은?

지난 2008년 나노기술대학원이 설립된 이후 많은 신임 교수와 학생 등 국내외 연구자들에게는 남편의 사망 소식이 큰 충격이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들이 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남편의 연구 代를 이어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하게 됐습니다.

남편이 하늘나라에 간 이후 주변에서 많은 배려와 도움이 있었습니다. 한국광학회에서는 신중훈 추모 세션도 마련해줬고 추모기념 강의실도 만들어 주신다고 했죠. 항상 감사했던 마음을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Q. 남편 故 신중훈 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특히 정이 많고 사람을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서슴없이 지내며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해왔죠. 운동과 술도 즐겼는데, 일할 땐 일 하고 놀 땐 제대로 노는 성격이었죠.

매년 7월 KAIST 졸업생들을 초대하는 홈커밍 행사를 합니다. 남편이 졸업생들에게 선물로 전해줄 옷들도 직접 준비했죠. 또 작년 부임 20주년을 기념해 물리나노학과 교수님들을 집으로 초대하려고 했죠. 뜻깊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며 교수님 한분한분 일정을 체크하면서 최대한 많이 모일 수 있는 일정을 찾았죠. 순수한 아이처럼 그날을 기다릴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Q. '신중훈 장학기금'에 기대하는 것은?

신중훈 장학기금 증서에는 "훌륭한 인재로서 미래를 위한 사회적 공헌에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문구를 쓰고 싶습니다. 비록 많은 장학금은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사회적 책임 의무를 일러주고 싶습니다. 신성철 KAIST 총장님께서 제안한 부분입니다.

Q. 남편이 몸담은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은 따뜻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고된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남편을 떠나 보내고 과학계가 참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울에 부모님이 계셔서 고향으로 올라가려 생각하다가 결국 대덕에 남아있기로 결심했습니다. 자녀들도 대덕연구단지에 대한 추억이 많고 이보다 따뜻한 과학동네는 없을 것입니다.

Q. 남편과의 대덕에서의 삶은 어땠나?

남편은 과학마을인 대덕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산세도 이쁘고 평화로운 대덕에서 20년을 살았죠. 오래된 집임에도 남편은 항상 해외 연구자들을 집으로 초대했죠. 집의 역사 뿐만 아니라 과학동네에 대한 역사를 발벗고 설명하셨죠. 대덕에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은 선진국의 과학자 삶 못지않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죠.

Q. 기부문화에 대한 생각은?

대덕연구단지에도 '소액기부 팟' 형태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과학계 각 핵심 분야에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할 수 있는 문화가 생기길 바랍니다. 기업·기관·단체 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쉽게 기부해 우리나라 과학계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인식을 줘야 합니다. 기부로 인한 세금혜택을 준다면 기부 문화가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 故 신중훈 교수는?

故 신중훈 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교수.<사진=KAIST 제공>
故 신중훈 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교수.<사진=KAIST 제공>
작년 9월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과제 워크숍에 참석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故 신 교수는 1989년 하버드대에서 학사를 3년 만에, 1994년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석·박사 통합학위를 4년 만에 받았다.

이후 1996년 9월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KAIST 교수임용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로 국내대학에서 가장 젊은 교수로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故 신 교수는 실리콘 포토닉스, 실리콘 나노결정 구조 등 반도체 나노광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수여하는 '올해의 젊은 과학자상'에 이어 2005년 '한국공학상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를 통해 '펠로우십 어워드(2005)'를 비롯해 대통령 표창(2006년), KAIST 공적상(2009), KAIST 연구상(2011년)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특히 故 신 교수가 주도한 연구팀은 여러 각도에서 똑같은 빛깔을 내는 '몰포나비' 날개의 독특한 구조를 재현했다. 별도 전력 없이 외부 빛을 광원으로 사용해 전력소모가 매우 낮으면서도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생체 모방 반사형 디스플레이'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논문은 201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돼 국내외 학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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