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원자력, "미처 보지 못한 그림자 이제야 보았다"

[인터뷰]하재주 신임 원자력연 원장, '안전·소통·연구개발·경영' 중심 변화의지 표명
"사용후핵연료, 하나로 내진설계, 폐기물 반환 등 국민적 불안감 해결 위한 약속 이행" 
인터뷰=김요셉 기자·정리=박은희 기자 kugu99@hellodd.com 입력 : 2017.04.20|수정 : 2017.04.24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 원자력정책개발국장으로 최근까지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던 하재주 원장은 부임과 동시에 연구원 변화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사진=박은희 기자>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 원자력정책개발국장으로 최근까지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던 하재주 원장은 부임과 동시에 연구원 변화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사진=박은희 기자>

'사용후 핵연료', '하나로 내진설계', '폐기물 반환' 등으로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에서 수장 자리에 올랐다. 연구원 설립 이래 최대 위기와 마주한 현실에서 빼든 카드는 '혁신'이다. 58년 역사의 연구원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신임 원장. 

취임 후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를 최근 원장실에서 만났다. 활짝 열린 원장실에서는 새로운 기준으로 재건에 들어간 연구원의 변화가 감지됐다. 

"상황이 엄중한 상태"라며 입을 뗀 하 원장은 "빛만 보며 달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한 그림자를 이제야 보았다. 빛을 볼 때 그림자도 같이 보아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경험했다"며 "이제 기회가 왔다"고 변화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 대규모 인사 단행···"새 기준으로 원자력연 다시 세울 것" 

지난달 20일 취임한 하 원장은 아직 거처도 마련하지 못한 채 바쁜 나날을 맞고 있다. 원자력연 내부에 관행으로 자리 잡은 안전 불감증을 비롯해 실추된 연구원 이미지 등 안팎에서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은 탓이다. 

그가 지난 10일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것도 그 이유다.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릴 것이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능력과 저력을 믿습니다. 58년 된 건물이니 보수보다는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과거의 잘못을 모두 털고 가고자 합니다."  

하 원장은 새로운 기준(New Standard)을 적용해 연구원을 재건축 할 것이라 강조했다. 재건축하는 연구원은 여러 기준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기준으로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재주 원장 이력. <디자인=남선>하재주 원장 이력. <디자인=남선>
우선 조직을 대폭 축소했다. 부서가 56개에서 46개로 줄었고, 보직자의 23%를 감축했다.  

전략사업부원장과 연구개발부원장 산하 중심이던 것을 부원장을 한 명으로 줄이고 산하 조직도 두지 않았다. 부원장은 군사를 부리지 않고 온전히 원장을 지원사격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연구부서는 '원자력안전·환경연구소', '핵연료주기기술연구소', '방사선과학연구소', '첨단방사선연구소' 등 4개 분야, 행정부서는 '경영기획본부', '안전관리본부', '소통협력본부' 등 3개 분야로 '4소장 3본부장' 체계로 구성했다.  

'환경'을 연구소 이름 앞에 붙였다. 새로운 시도로 원자력 안전에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통'을 강조하기 위해 소통협력부를 본부급으로 격상했다. 또 소통정책실을 별도로 신설해 소통 체계화를 위한 정책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하 원장은 "조직 하나에서 10~20년을 일한다는 것은 시너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통합을 통해 함께 일하다 보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안전관리본부장은 적임자가 없어 원장 겸직으로 했다. 완전히 틀이 잡히기 전까지는 직접 지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장급은 직원들이 직접 뽑도록 했다. 돌격대장인 부장을 잘 따르기 위해서는 부서원의 참여가 중요한 만큼 투표를 진행했다.

하 원장은 투표 결과를 공개하는 대신 조직과 인사에 대한 견해를 장문의 편지로 게시판에 올렸다. "직원들이 부서장을 직접 뽑으니 재미있어 했어요. 하지만 팀 내 갈등의 원인으로도 될 수 있어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풀어냈습니다. 직원들이 제 생각을 공감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안전·소통·연구개발·경영'···"익명게시판에 모두 써라"

기로에 놓인 연구원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58년 역사의 원자력연을 새기준으로 재건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기로에 놓인 연구원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58년 역사의 원자력연을 새기준으로 재건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안전 없이 연구 없고, 혁신 없이 미래 없고, 전략 없이 효과적인 성과 없고, 생산성 없이 효율도 없습니다. 그래서 소통해야 하고, 투명해야 하고, 동기부여 돼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다 아는 얘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안전', '소통', '연구개발', '경영'은 이번 혁신에 핵심 키워드다. 

하 원장은 안전과 관련한 조직과 제도, 절차 등은 이미 갖추고 있다며 '사각지대'에 대한 관리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미 갖추고 있는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면 아마도 90%는 관리가 될 것이다. 조직을 보강해 제도를 강화하면 5%를 더 관리할 수 있다"며 "하지만 마지막 나머지 5%는 채우기가 힘들다. 문제는 여기서 터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제보를 격려하고, 제보는 경영진이 반드시 책임지고 해결할 계획이다. "독일에서 5분 정도 길가에 주차했는데 주차위반 딱지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냥 그러면 안 된다는 자연스런 인식 때문이었죠. 선의의 제보가 존중받으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게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겁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익명게시판'을 부활시켰다. 

그는 "조직라인을 통해 못하는 말이나 익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익명게시판을 이용하면 된다. 답변이 없으면 원장실로 직접 오면 된다"며 "익명게시판이 제대로 안 될시 폐쇄하면 그만이지만 좋은 뜻으로 시작했으니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소통 전담 부서도 신설했다. 일이 터지거나 아쉬울 때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기관의 임무인 연구개발은 가시적인 성과에서 가치 있는 성과로 기준이 바뀐다. 하 원장은 "학문의 가치는 학계에서, 실용적인 가치는 수요자에게 충분히 설명해 인정받아야 한다"며 "연구개발을 빠르고 값싸게 하느냐의 문제에서는 국제협력이 해결책이 될 수 있기에 관련 프로그램을 적극 발굴해 활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과 관련해서는 '변화와 도전'을 필수 무기로 삼을 계획이다. 수직단계를 줄이고 관련 분야 간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직도 재정비 했다. "쓸데없고 비효율적인 일은 모두 없앨 것입니다. 적은 인력과 짧은 근무시간으로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고 남은 시간은 직원들의 가정에 돌려 줄 것입니다."

◆ 원자력 안전 소통에 주력···"잔머리 굴리지 않고 솔직하게"

 하 원장은 "원자력연 인근에 위치한 동네로 이사해 지역민의 입장에서 연구원을 바라보겠다"고 밝혔다. <사진=박은희 기자> 하 원장은 "원자력연 인근에 위치한 동네로 이사해 지역민의 입장에서 연구원을 바라보겠다"고 밝혔다. <사진=박은희 기자>

"국민에게 깊은 실망과 우려를 끼친 사태에 대해 책임을 공감합니다.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의 문제를 떠나 국민들이 화가 많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면 종합적인 대책과 함께 국민 여러분께 정식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 

핵폐기물 무단 방출에 대해서는 사과의 뜻을 다시금 밝히며 향후 대책에 대해서도 명확히 할 것을 강조했다. 지역민들의 불안감은 원자력연 동네 주민으로 살면서 풀어나갈 생각이다.  

그는 "파리에서 온지 얼마 안 돼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다. 연구원에서 가장 가까운 관평동에 집을 구하려 한다"며 "반상회도 가고 지역민과 함께 할 것이다. 원장이 여기서 살고 있으니 지역민들도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에 대해서는 해결법을 위한 기술 개발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하 원장은 "사용후 핵연료는 미래를 위한 옵션이다.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공학적인 수준까지 가능한지 봐야 하고 경제성까지도 확보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당장 필요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 아니다. 최소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래 원자력연에 대한 지향점은 분명했다. 미래 에너지 솔루션으로 부인할 수 없는 만큼 단점을 보완해 안정성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사람은 많고 에너지 자원은 부족한 나라입니다.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 사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바람도 햇빛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신재생 에너지만으로 미래 에너지를 대처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에 대해 완벽하지 않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정확한 사실로 국민을 이해시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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