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 '출연연 과학기술한마당' 행사서 '오픈포럼 이유' 솔직담백 토론
젊은 연구자들 "혁신 위해 스스로 나서서 움직여야"

'이유 있는 혁신' 아젠다 토의 현장.<사진=대덕넷>
'이유 있는 혁신' 아젠다 토의 현장.<사진=대덕넷>
"한국핵융합연? 국가핵융합연?"
"전기연이 몇주년이냐고?"
"ETRI 자체 개발 기술이 뭐더라?"

퀴즈화면이 넘어갈때마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거린다.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주제로 현장 참여형 퀴즈가 시작되면서 무겁던 분위기에서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자연스럽게 옆자리 참석자들과 눈인사가 오가고 이야기꽃도 피운다. 출연연 관련 문제가 각자의 스마트폰에 쉴새없이 올라오며 곳곳에서 "아~" "그렇구나" 등 감탄사가 터진다. 

출연연 혁신을 주제로 과학기술분야 관계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사장 이상천)는 13일 오후 2시부터 세종국책연구단지 대강당에서 출연연 혁신을 위한 고민을 공유하고 의견을 모으는 '오픈포럼 이유' 행사를 열었다.

오픈포럼 이유는 행사가 열리기 한달 전부터 출연연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오픈 토론방을 개설, 출연연 혁신을 주제로 의견을 수렴해 왔다.

이날 행사는 함진호 ETRI 박사의 오픈토론방에서 나온 의견 설명과 출연연 관련 퀴즈문답으로 이어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오픈 토론방 참여자들은 출연연의 역할론 제기의 원인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산, 인력, 조직, 운영 등 각 분야의 의견이 제시했다.

함 박사는 "출연연 혁신 이야기가 지속해 나오고 강조되는 것은 혁신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견은 나왔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고 그런 시점에 와 있다. 오늘 이 자리도 도출된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가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오픈포럼 개최 의의를 설명했다.

'혁신을 말하다' 아젠다 발표에 나선 패널들. 왼쪽부터 ▲김영임 IBS 박사 ▲김유빈 핵융합연 박사 ▲방준성 ETRI 박사 ▲송미영 한의학연 박사 ▲함진호 ETRI 박사 등이다.(순서 가나다순).<사진=대덕넷>
'혁신을 말하다' 아젠다 발표에 나선 패널들. 왼쪽부터 ▲김영임 IBS 박사 ▲김유빈 핵융합연 박사 ▲방준성 ETRI 박사 ▲송미영 한의학연 박사 ▲함진호 ETRI 박사 등이다.(순서 가나다순).<사진=대덕넷>
이어 오픈 토론방의 의견을 바탕으로 송미영 한의학연 박사, 김유빈 핵융합연 박사, 방준성 ETRI 박사, 김영임 IBS 박사가 패널로 나서 출연연 미션, 연구성과, 연구문화, 연구인재에 대해 각각 의견과 출연연 혁신 방안을 피력했다.

출연연 미션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송미영 박사는 "무거운 주제"라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출연연 미션 재정립의 문제는 1980년대 이후 10년 주기로 반복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정권이 바뀔때마다 대두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해마다 출연연 미션 재정립이 언급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왜 이렇게 출연연 미션 재정립 문제가 제기되는 걸까.

송 박사는 이에 대해 "1960년 연구기관 출범 이후 80년대까지는 안정적으로 연구가 이뤄졌지만 이후 출연연 통폐합, PBS 제도, 과학기술혁신부 출범 등 굵직한 문제가 지속해 제기되면서 출연연 미션문제도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1, 2차 오픈 토론방의 의견을 모아보면 출연연은 조직력과 인프라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자발성 결여, 낙하산 인사, 리더 부재, PBS 제도 등 부정적인 요소들로 미션 수행이 어려웠던게 사실"이라면서 "출연연이 대학, 산업체와 역할이 중복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연구성과, 연구문화, 연구인재 등 서로 맞물리는 키워드들과 조화를 이루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연구성과 분야로 주제발표에 나선 김유빈 박사는 "연구자들은 세금으로 연구성과라는 밥을 짓고 있는데 정부와 지원기관 등 두분야에서 날카로운 시어머니가 있다"는 말로 출연연의 현재 상황을 빗대어 설명,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오픈 토론방에서 제시된 출연연의 역할은 혁신, 융합, 산업발전, 신산업발굴, 중기지원, 노벨상, 성가평가, 논문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1960년대까지는 국가재건과 경제성장이라는 한 방향에서 연구하고 지원이 이뤄졌지만 어느 순간 출연연과 지원기관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번지면서 신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이어 "출연연은 예산, 인력, 평가, 운영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를 해결하려면 혁신을 넘어 혁명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문제 해결의 키워드로 '초심'을 들었다.

그는 출연연의 미션은 국가에서 필요한 연구이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비전은 국가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출연연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하는 연구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 색깔이나 프레임 속의 주제가 아니라 국가가 해야하는 아젠다를 중심으로 Why, What, How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방준성 박사는 연구문화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그는 "현재 연구문화의 문제는 익히 알려진 관료주의, 과도한 경쟁, 단기평가, 줄세우기 등이 있다"면서 "이런 문제는 서로 언페어하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 개선이 쉽지 않고 정답도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합리적인 공간에서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는 문화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 박사는 "우리는 보상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보상을 권력과 결부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도 보상이 될 수 있다"면서 "완벽한 대인관계 갈등 해소법이 없듯 연구도 마찬가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을 인정하고 박수치는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김영임 박사는 연구인재에 대해 짚었다. 그동안 연구문제에 대해 많은 진단이 있었지만 연구주체인 연구자의 논의는 소홀했다. 또 과기정책으로 해외우수인재 유치와 확보가 지속적으로 제안되며 현장의 연구자들은 스스로 자부심이 결여됐다. 그러면서 연구자들 스스로 인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무한경쟁 체계인데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옆사람을 끌어내리는 것이 경쟁으로 보이고 있다"고 꼬집으며 협업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김영임 박사가 말하는 협업은 단순히 함께 일하는 과정을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의 협업이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과제 중심의 협업을 해왔다. 앞으로는 가치창출의 협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는 소통이 있다"면서 "혼자 멀리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사람, 연구 분야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도 사람이 중심이 돼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성과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뢰 문화 핵심 키?···연구자 스스로 권리 주체돼야"

오픈 토의는 현장 플로어 질문뿐만 아니라 온라인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사진=대덕넷>
오픈 토의는 현장 플로어 질문뿐만 아니라 온라인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사진=대덕넷>

패널 발표에 이어 패널과 참석자 전원이 자유롭게 토의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오픈 토의는 현장 플로어 질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의견들의 요지는 '연구자 스스로 권리 주체가 돼야 한다' 것으로 모아졌다. 패널로 참석한 김유빈 박사는 "출연연은 국가의 R&D 투자 목적을 명확히 알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라며 "방향을 모를 때 권리의 주체가 정부로 바뀐다"고 언급했다.

그는 "확실한 목적성을 출연연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권리 주체가 돼야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목적성을 가질 수 있다"라며 "정부가 출연연을 믿어주고 꾸준히 지켜보는 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을 통해 출연연 R&D 체계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이 올라왔다. 이에 함진호 박사는 성가평가 체계를 설명하며 "ETRI는 작년 말부터 계량적 평가를 모두 없앴다"라며 "처음에는 혼란이 왔지만 현재는 많이 정착됐다. 감동 스토리 평가가 되고 있다"고 답했다.

플로어에서 한 연구자는 '젊은 연구자의 아이디어 활성화 시스템 부재'를 언급했다. 그는 "젊은 연구자들은 아이디어가 많지만, 이를 구현하기까지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새로운 시스템이 아닌 기존 시스템만 따라가다 보니 아이디어 활성화가 부족해지고 있다. 연구현장에 다양한 기회가 분배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김영임 박사는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를 통해 한걸음 나가야 하지만, 과학계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대한 결과에만 집착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라며 "시도조차 못하는 문화에서 노벨상 수상을 논하면 안된다"고 직언했다.

김유빈 박사는 대형 과제의 관료 책임제를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대형연구과제를 각계 전문가들이 20년 전부터 계획을 세운다"라며 "철저하게 전문가들이 책임을 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한국은 관료가 대형과제를 책임진다. 과제가 중간에 잘못되거나 방향이 틀리면 바로 중단해야 되지만, 관료 책임을 묻기 때문에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라며 "전문가들이 대형과제를 기획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준성 박사는 동료 간 신뢰하는 연구문화를 강조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다"라며 "동료 연구자 간 웃으면서 인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 먼저 실천해야 한다. 상대를 바라볼 때 부모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자"고 주문했다.

송미영 박사는 "연구자 스스로가 권리 주체가 되고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픈된 토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라며 "과학계의 오픈 토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의견을 공유하고 활성화되는 문화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한편 '다름이 모여 대한민국 희망을 열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신용현·송희경·이상민 국회의원과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25개 출연연 기관장과 연구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영상=윤병철 대덕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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